혈액종양과 선생님을 떠올릴 때 기억나는 첫마디다.
솔직히, 그때까지는 내가 진짜 암환자인지
실감하지 못했고 현실 부정의 시기였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진짜 빠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교수님의 "미는 게 낫다"는 조언도
애써 흘려듣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솔직히 말해,
빡빡이 하고 싶은 20살이 얼마나 있을까?
항암으로 인한 탈모는
보통 2~3차 항암부터 시작된다고 했는데,
4차까지도 머리숱이 거의 그대로였다.
아픈 건 둘째 치고,
겉모습이라도 평범해 보여서 그저 행복했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더라.
결국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들 거다.
한 가닥씩이 아니라,
청소가 어려울 만큼 우수수 빠진다.
흡사 대형견 털갈이 같았다.
그제야 항암 전에 "미는 게 낫다"던
교수님의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미용실은 근처도 지나가지 않았다.
머리를 밀러 가면 이유를 또 설명해야 할 것 같았고,
그럼 또 불쌍하게 보겠지.
밀고 나면, 겉모습까지 암환자가 되겠지.
그 모든 게 싫었다.
그냥, 부정하고 싶었다.
그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버티며 항암을 이어갔고,
머리카락은 점점 더 빠져
결국 닭털 몇 가닥 붙은 달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런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든 건,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같은 일상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친구들은 이제 대학을 다니며 머리를 하고,
새 옷을 사 입고, 심지어 연애도 하며 행복을 자랑한다.
반면, 나는 누가 봐도 빡빡이다. 암환자다.
현실은 달랐지만, 그 시절 나는 지고 싶지 않았다.
학교 이야기를 해도 공감하는 척했고,
친구들이 건강을 걱정해 주면
“하루 종일 먹고 쉬니까 괜찮아”라며 웃었다.
또 집에서는 세수할 때 머리까지 씻으며
“나는 지구환경 지킴이야!” 이런 개그도 쳤다.
무슨 정신으로 개그를 치냐고?
그땐 통원 항암을 진행 중이었다.
2회가 1사이클인 항암을 2주마다
하루씩 맞았고, 총 6사이클을 진행했다.
항암도 했고, 휴학도 했고,
몸도 안 좋으니 결국 집에만 있게 됐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항상 집에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도 거기 있었다.
이런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억지로 짜낸 개그뿐이었다.
그것도,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이었고
마음을 지키는 방식이라면 그랬다.
통원 항암 시절의 나는 날 선 동물처럼 혹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게, 마음을 지키는 방법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타인의 위로는 불쌍함이 아니라
응원에서 시작된다는 걸.
혼자 버텼다고 믿었던 시간에도,
누군가는 늘 옆에 있었다는 걸.
그리고 내가 애써 포장한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그 모든 걸 14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하나씩, 천천히 배워갔다.
부모님, 동생, 교수님, 간호 선생님, 병동의 이모·삼촌.
모두의 사랑이 있었기에 이제는 이상한 자존심보다
함께하는 순간들에 더 마음이 간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요즘은 대학생들의 취업을 돕기도 하고,
소상공인도 도우며 받은 사랑을 나누려 애쓰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비로소 14년 전의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주 이 시간엔 14년 전,
첫 재발과 병동 생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해지길 바라며, 이번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