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울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그저 누워만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그 시기를 "투병"이라 부르겠지만,
난 감정이 없는 실험체가 된 기분이었다.
생후 3개월 시절부터 반복된 병원 생활.
나는 자주 아팠고, 누워 있었고, 견디고 있었다.
그때 아빠는 지인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 딸은 로보트라서 점점 튼튼해져요"
그 말은 묘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고장 나고, 수리받고, 강화되는 나를 로보라 부른 건,
어쩌면 아빠뿐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는 감정을 숨기고, 통증을 견디고,
다시 살아내기까지의 시간을 천천히 되짚어보려 한다.
나는 어떻게 다시 사람으로 작동하게 되었는가.
그 15년의 여정을 한 장 한 장 써 내려가 보고자 한다.
대학에 입학한 후, 치아교정을 위해 발치를 하게 됐다.
당시엔 그저 “생니를 왜 뽑지?” 같은 걱정뿐이었다.
그런데 발치 다음 날, 이상하게 목이 뻐근했다.
만져보니 주먹만 한 혹이 만져졌다.
원래도 몸이 약했던 나는 곧장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비인후과 교수님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나쁜 아이일 수 있어요. 약을 열흘 먹고도 가라앉지 않으면 조직검사가 필요합니다.”
스무 살의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약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 어라? 남아 있네…
예정된 날짜에 다시 진료를 받으러 갔고,
조직검사 결과는 ‘혈액종양과 전과’를 불러왔다.
혈액종양과 교수님이 내게 말했다.
“림프종입니다.”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님프? 그리스로마신화?
당황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다시 설명하셨다.
“혈액암의 일종이에요.”
내가 아무리 허약해도, 암환자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진짜 대박사건이었다.
솔직히 멍했다. 슬펐지만, 그걸 표현하진 못했다.
그땐 이상하게도 “티 내면 지는 거야”라는 자존심이 있었다.
집에 와서 엄마가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떡볶이 사 먹고 올게.”
그 말 끝에 나는 도망치듯 방을 나섰다.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00이는 알고 있는 거야?”
그 소리를 듣고 ‘아, 난 티 안 냈구나’ 하고 안도했다.
아마 내가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 것 같다.
이게 내가 스스로를 지키고,
부모님을 덜 슬프게 하는 최선이라 아직도 믿고 있다.
이렇게 자존심으로 버틴 나는 병원생활을 하며
함께하는 법을 배우고, 나누는 감정을 익혀간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머리카락은 포기했지만
자존심은 여전히 지키고 싶었던 내 병동 일기를
풀어보려 한다.
02. 머리카락은 포기했지만, 마음은 지켰어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