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만나러 간다
철물점의 부품 이름 같은 베를린
동서를 가르듯 ㄹ과 ㄹ 사이를 가르는
자음과 모음을 용접하면 베를린이 된다
단단한 이름에서 쇳내가 난다
베를린에선 베토벤, 베버, 베베른, 베르크, 베를 짜는 페넬로페까지
한꺼번에 열차에 실려 온다
느닷없이 칼국수처럼 내리는 비를 맞는 도시
풀어지는 빗줄기에
분주한 도마질 소리
마지못해 젓가락을 들던 일요일의 점심이 떠오르고
식은 그릇을 물리고
둘러앉은 상을 접기도 전에
비가 그친다
울창한 기억의 숲 위로 해가 뜨고
버스를 타고 미술관으로 노천카페로 은행으로
그새 마른 바짓가랑이에서 ㄹ을 털어낸다
이를테면 ㄹ이 거꾸로 걸리거나 멀리 달아나
나사 빠진 도시가 될 수도 있으련만
기차가 중앙역을 출발한다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자음이 풍부한 철로 위로 나뒹구는 휴지와 페트병
가로등 아래 검은 옷의 남자
날개를 꺾은 채 머리를 숙이고 있다
레일에서 들려오는 ㄹ, ㄹ, ㄹ, 베를린에 가까운 말
기차가 이 도시의 첫여름을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