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7번째 영화
감독: 정이삭, 출연: 스티븐 연(제이콥), 한예리(모니카), 윤여정(순자), 앨런 김(데이빗), 노엘 조(앤), 윌 패튼(폴)
줄거리: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데…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개봉 당시에는 보지 못하고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마음 졸이다 추석에서야 보게 되었다. 사전 정보가 없어 기대 없이 봤는데 소소한 것이 주는 울림이 얼마나 크던지, 복잡하던 마음에 따뜻함 하나가 불어왔다. 좋은 영화였다. 미나리는 이민자 출신인 정이삭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한다.
살던 한국을 떠나와 미국의 허허벌판으로 터를 잡은 제이콥네 가족. 토네이도가 오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은 허름한 바퀴 달린 집이 모니카는 탐탁지 않다. 하지만, 제이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곳에 살자고 한다. 그가 이곳에서 살려는 이유는 확고했다. 흙 색깔이 좋아서. 다시 말해, 농사 짓기에 딱인 땅이라는 이야기다. 큰 농사를 지어 돈을 벌고 인생을 다시 한번 시작해보려는 것이다.
제이콥이 농사도 짓기 전,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진다. 바로 토네이도가 불어 닥친 것. 집에는 물이 뚝뚝 샌다. 때문에 한바탕 하소연을 하며 싸우지만, 부부는 해결책을 내린다. 바로, 모니카의 어머니, 그러니까 외할머니를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부부는 일을 하고, 그 시간 동안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다. 할머니 덕에 집안 사정도 조금씩 나아지고, 안정을 찾아간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하나 나타나는데, 바로 데이빗이다. 할머니때문에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나빠졌다고 생각한 데이빗은 할머니에게 못 되게 군다. 툴툴거리는 것도 모자라 할머니에게 오줌을 주기도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화낼 만도 한데 할머니는 오히려 데이빗을 감싼다. 할머니는 함께 화투를 치고 함께 미나리 씨앗도 심는다. 어느새 미운 감정은 깨끗이 사라진 둘. 이제야 좀 친해졌는데 할머니의 상태가 이상하다.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는 몸이 많이 약해지셨고, 보살핌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불행이 하나 찾아오면 행복도 덩달아 찾아온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데이빗의 심장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제이콥의 농산물 계약도 잘 풀렸다. 그러나, 행복은 불행을 데리고 온다. 가족보다 성공과 돈을 먼저 생각하는 제이콥에 신물이 난 모니카는 이별 선언을 한다. 각자 갈 길을 가자고 하고 돌아온 집은 활활 타고 있다. 할머니가 쓰레기를 태우려 붙인 불이 다른 곳에 옮겨 붙어 농산물 창고를 다 태워 버린 것이다. 자신이 이 집안을 망쳤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망연자실해 어디론가 도망가보지만 뒤따라온 데이빗이 집에 같이 가자며 가로 막는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와 데이빗이 함께 심은 미나리가 초록빛으로 틔워 오른다.
감독님의 자전적인 스토리라는 것이 참 좋았다. 일기장을 펼쳐본 기분이 들기도 하고, 따스한 동화 한 편을 정독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영화는 재미보다는 현실적인 면을 많이 보여준다. 인종차별이나 이민자 가족을 다 떠나서 가족의 모습 그 자체로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을 보는 것 같았다. 나도 네 가족이고, 외할머니와도 가깝게 살아 영화 속 상황들에 나를 대입해 울고 웃을 수 있었다. 아까 할머니를 뵙고 왔는데 할머니가 또 보고 싶어진다. 으앙.
제이콥네 가족은 이제 다시 시작하지만 할머니의 미나리가 자리를 잘 잡은 것처럼 결국엔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다. 흔들려도 굳건히. 뿌리를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