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셉은 총리가 되었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는데, 사실 객관적인 눈으로 봤을 때는 말도 안 되는 거다. 성폭행 미수범인 외국인이 총리가 된다는 게 말이 안되는 거니깐.
설교나 묵상들을 보면 이 마지막 총리가 된 부분에 굉장히 집중한다. 이전의 것들은 다 이 것을 이루기 위한 준비 과정 정도였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과정들이 다 필요했다고 역설한다.
2.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옷
아버지의 집에서 채색옷을 입었던 요셉은 형들에 의해 채색옷이 벗겨진다. 요셉이 노예 시절에 입고 있던 옷은 보디발 장군의 아내에 의해 벗겨진다. 옷이 신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전제 하에 말하자면 요셉의 신분이 2번이나 박탈되었다고 볼 수 있다. 채색옷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거고, 노예들이 입는 옷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거고, 총리가 입는 옷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왜냐하면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형통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3. 형통이 꽃길을 의미하지 않아.
형통이 꽃길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같이 가면서 순종하는 삶이 형통이고 거룩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인거다.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면 당근을 받을 때도 있지만 채찍을 맞을 때도 있다.
요셉도 꿈을 꾸면서 당근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성장하면서 채찍을 맞을 때도 있었다. 총리가 된 다음에도 끊임없이 견제를 당했을 거다. 시기 질투도 많이 받았을 거고.
4. 요셉이 남긴 것.
요셉이 자의든 타의든 머물던 곳을 떠나면서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요셉의 이름 석자가 아니라 요셉이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요셉에 대한 아쉬움인 것으로 보인다. 보디발도 노예의 장으로 요셉을 삼았는데 갑자기 장이 없어졌으니 분명 아쉬웠을 거고, 간수장도 자기가 요셉에게 시킨 것은 다시 확인하지 않았을 정도로 잘했는데 요셉이 감옥을 나가게 되었으니 참 아쉬웠을 거다.
5. 우리가 남겨야 할 것
우리 교회가 없어지면 지역 사회가 아쉬워할까? 내가 회사에서 퇴사하면 사람들이 아쉬워할까? 내가 죽으면 가족들이 아쉬워할까? 이런 물음들에 명확하게 YES 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행동들을 되짚어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하나님과 형통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