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가 되다.
아빠가 된지 이제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홀홀단신 이민 가방 두 개 들고 미국으로 온게 2년 전의 일인데, 이제는 애 아빠로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버렸네요.
아빠가 되고 나서 좋은 점은 말 그대로 아빠가 되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참 많습니다. 애 울면 애 봐야 하지, 아내가 부탁하면 바로 들어줘야 하지, 그러다 보니 몸은 계속 축나고.....^^ 그래도 애기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 피로가 한 번에 씻어지는 듯 합니다.
2. 거절감
애기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애를 키우고 계시는 선배님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어서 그런지 예상되는 충격에 대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허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말로만 듣고 예상한다는 것은 현실과는 다소 달랐지요. 그 중에 저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거절감"이었습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바로 아이 근처로 갑니다. 하지만, 아직 초보 아빠인 저로서는 이 아이가 왜 우는지 판별이 안됩니다. 배가 고픈건지, 배설물을 본 건지, 아니면 아픈 건지.. 목도 잘 못 가누는 자그마한 아이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온 몸이 새빨갛게 될 때까지 울어대니 이러다가 애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구요. 한동안 아이가 울다가 지쳐서 잠에 드는 일이 반복되게 되면, 아이를 보는 것에 자신감이 생긴다기보다는 아이가 내 품 안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즉, 아이가 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3. 감정이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
한 이틀 정도, 아내가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아이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두 마음이 공존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나를 거절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마음과 나는 어찌되었던 이 아이의 아빠다 라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이의 아빠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이가 나에 대해서 거절감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것은 확률적인 것이고,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두번째 선택지가 우세하게 될 것 같더군요. 다행히, 지금은 우리 아이 현우가 엄마품보다 아빠품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힘이 더 세다보니 안정감을 느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 비를 고루 내리시는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혜를 행위에 대한 보상 개념처럼 이해하려고 시도하면 결코 이 말은 이해가 될 수 없겠지만, 자녀로서의 상태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면 어느 정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나를 사랑해도 아들이고, 나를 거절해도 역시 아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깐요.
1. 아이 키우기
아이를 키우다보면 화가 날 때가 있다. 특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도 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될 때 좀 더 그런 것 같다. 이 상태가 오래되면 내가 잘못 키우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이와 사이가 나빠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효능감(Self-efficiency)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존감까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심해지면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2. 예수님처럼
교육학은 잘 모르지만, 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 예수님을 모든 분야에서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갖춘 분이라고 생각하고, 교육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조직행동론 쪽에서는 예수님의 리더십을 연구하는 걸 본 적이 있고, 심리학 쪽에서도 연구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교육학은 잘 모르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현재 모습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습도 동시에 보셨다. 부족한 베드로의 현재 모습을 보시면서도 믿음의 반석이라는 미래의 모습도 동시에 바라보셨다. 아마, 이 점이 예수님의 수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예수님 옆에 붙어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3. 현재와 미래를 같이 보기
여기서 양육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아이들의 현재 모습만 보지 말고 아이들의 미래 모습도 동시에 그려보는 거다. 지금은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있질 않고, 수건 가지고 놀다가 그릇도 깨고 하지만, 결국 멋진 어른으로서 살아갈 모습을 그려보는 거다. 그러면 지금의 이 모든 것들은 과정이고,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결코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더불어 내 안에서 화가 많이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물론 아직도 아이와의 관계는 진행형이다. 항상 좋지만은 않고, 앞으로 계속해서 좋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부모로서의 역할을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볼 생각이다.
4. 과거의 나에게
어떤 드라마에서 이런 나래이션이 나온 적이 있다.
"네, 아이들은 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반품을 하고 싶습니다."
부모가 되는 건 축복이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 순간이 쉽지는 않다. 감정도 요동치고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매 순간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빠로서, 친구로서, 때론 놀이기구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