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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May 24. 2023

모든 슬픔과 고통

<반복> 키르케고르, ‘욥’이여! (9월 19일)

인류는 오랫동안 세상의 만연한 고통을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살아야 했다. 자연재해는 물론 약탈과

대규모 전쟁 등으로 생명의 위협을 끊임없이 받았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주변국을 침략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성서의 이야기 속에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주위에 도움을

주며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욥이 있었다. 그런데 의인 욥은 왜 고난을 받아야 했는가?  


“주신 자도 여호와이시고, 취한 자도 여호와이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받으시리로다.”

사랑하는 자녀들까지 잃으며 모든 것이 파멸되고 인생 전체가 무너져 내릴 때도 욥은 변함없이 하느님을

신뢰하는 초인적인 침착성을 보여 주었다. 이레 동안 침묵을 지킨 그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단지 그 말만 되풀이했다.

아무런 위로를 주지 못하는 친구들의 지혜가 하느님을 변호한답시고 천박한 재주를 부릴 때 그는 최고의

법정에서도 울부짖는 사자처럼 나섰다. ‘마음의 아픔’으로 인하여 감히 주를 원망하고 주와 다투기를 서슴지

않았던 믿음의 대변자였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 괴로움과 절망,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었다.

조선 후기 사람 정약용도 6남 3녀를 슬하에 두었으나 4남 2녀를 잃었다. 그는 서너 살 되기 전 생이별한

애통함에 대해 “죽은 아이가 산 아이의 두 배다. … 간과 폐를 칼로 찌르고 쪼개는 “ 것 같다는 글들을

남겼다. 백 년 전만 해도 태어난 아이가 열 살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염병에 취약했고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여서 무사히 살아남은 자녀들에 대해 ‘자식 농사가 반타작’이란 웃지 못할 말이 우리

부모 세대에 있었다.

위대한 수난자 욥 못지않게 정약용도 자식을 잃고 가족과 헤어진 채 유배지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픔에 머물지 않고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목민심서>등 저술활동에 힘썼다.

개개인이 지금 겪는 커다란 슬픔과 고통, 좌절이 견다기 힘들더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하느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인류가 숱한 시련 속에서도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문화를 이루게 된 저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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