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의 말>
-황무지에서 대성당까지, 절망에서 피어난 기묘한 희망-
“글쓰기 혹은 모든 형식의 예술적인 시도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의사소통입니다.”
레이먼드 커버는 가난한 시골 출신이고 오랜 기간 육체노동자로 살면서 글을 썼다. 19 세 결혼해서
21 세에 두 아이 아빠가 되었으니 ‘밥벌이‘를 위해 전쟁처럼 삶을 치러 냈다.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그에게 사치였다. 그래도 힘겨운 시간 속에서 글쓰기는 자신을 지탱하고 견디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는 투박하고 복잡하지 않으면서 적확한 언어로 불편하거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한다.
어딘지 어긋나 있고 방향 감각마저 상실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 절망적인 모습을 동정과 연민 없이
무심한 태도로 응시한다.
“우리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서로에게 상기시켜 주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시와 단편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삶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을 쉬운 말로
살려낸 그가 문학과 예술의 효용성, 아니 고귀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리 싫어하고 미워하더라도
죽일 놈이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을 것이다.
전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멸시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가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 강했던 이유는 내면에 예술가이자 동시에 보통 인간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카버는 글을 쓰는데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하고 정확한 방식'이 재능이나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분별 있는 사람 됨됨이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인간적인 차원에서 개입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식으로든 작품과 자신의 삶을 연결 짓고 감동을 느끼고 자신의 인간성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면
작가로서 행복할 따름이라고 한다.
자기 삶을 원하는 대로 이끌고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면서 그의 30대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다.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면서 여러 번 의식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셨다.. 가정을 파탄시키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해 냈다. 마침내 단편이 잡지에 실리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게 되어 예술기금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걱정 없이 문학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게 어마어마한 해방감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시인이자 단편 소설가인 테스 걸리거를 만나서 함께 살게 된 것도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삶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로 인해 폐암으로 죽기 전 10년을 글쓰기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을
제2의 인생으로 감사히 여겼다. 새로운 희망과 작가로서 자신에 대한 믿음,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버는 내면에서 솟아나는 샘물처럼 많은 시들을 쓰고 <대성당> 같은 단편집에서 영혼의
차원까지 끌어올리는 깊은 울림을 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