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박우란
나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며 산 것은 중고등 학교 학창 시절에 끝났다.
대학 진학 후부터는 스스로 삶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본 적이 거의 없다. 집단의식과 시대적 과제에 매몰
되어 개인적인 성향 자체를 부정하며 지냈다. 그리고 엄마가 된 후로는 더 강화되어 아예 없어지다시피 했다.
삶에 대한 모든 욕구를 내려놓고 살았으니 내 딸들이 그런 태도를 알게 모르게 체화한 것은 아닐까? 평소 지녔던 생각과 함께 책을
읽으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부족했던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결혼 생활은 늘 상대방을 먼저 고려하다 보니 나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지 않고 참아내는 방향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집안 분위기상 약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란 첫째와 둘째 딸은 나처럼 자신의 욕구와 욕망, 결핍과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억눌러야 했다.
큰딸이 대학생활 중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용기를 내어 함께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 오십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간 것은 딸의 꿈을 실현시켜 주려는 모성의 발로였지만 내 안에 발화되지 않았던 꿈도 작용했다. 그렇게 결혼 후 이십여 년 만에 내 생각과 계획대로 밀고 나간 거사를 치르고 나자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자유로운 공기를 맛본 파리 여행을 다녀와서 일상의 변화는 없었지만 내가 얼마나 그림을 좋아하는지 다시금 알아차리고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됐다. 예술의 세계에 다가가고 싶고 일상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개인전을 몇 차례 하게 되었다.
네 아이들 틈에서 나만의 엄마를 느끼는 고유한 접촉을 하지 못한 딸도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어려서부터 거의 완벽한 아이로 자란 둘째 딸이 이십 대에 성장통을 많이 앓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기 스스로 알아서 잘해 냈고 오히려 나를 도와주려 한 둘째 딸에게 나는 엄마로서
부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둘째 딸이 자신을 충분히 괜찮게 여길 수 있도록 칭찬해 주지도 못하고 넘어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서로 대화가 잘 안 되고 마음속에 뭔가 응어리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자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내 방식대로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아이의 욕구를 무시했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는데 내가 싫어하는 어른의 모습을 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장성한 딸들에게 경제적 도움도 인생에 대한 경험이나 충고도 줄 수 없는 처지라서 내 나름대로 딸들과
관계를 회복할 길을 찾아야 한다. ‘되돌린다'는 것은 의미를 재해석하고 기억을 재배치하는 일이다. 몸과 마음에
난 결핍이나 상처를 없던 것처럼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요즘 만병통치약 같은 '치유'라는 말에
부정적이다. 대부분 경험하듯이 나쁜 기억과 상처는 언젠간 회복된다는 것이 맞다. 그러면 고통이나 슬픔이 우리의
재산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글을 쓰고 책을 읽다 보니 사유하는 엄마가 되었다.
어쩌면 이 책이 제시한 방법을 내가 찾아낸 셈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의 진실이 받아들여지면 상처도 회복된다고 믿는다. 지금은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온전히 회복하고 실현하는 방법이 정말 있을지 모색하는
중이다. 내 욕망과 쾌락의 지점은 어디인지 관심도 없었다. 나 자신을 알아야 좀 더 나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딸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감과 작은 기쁨을 갖기 바라니까 나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나이가 들고
이룬 것은 없지만 여전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