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밤,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행복한 한 모금을 위해(물론 한 모금으로 끝나는 일은 내 음주 역사상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꼭 지키는 나와의 약속이 있다.
첫째 집안일은 미리 싹 다 해놓을 것. 한창 맥주를 마시는데 세탁기가 경쾌한 알림음으로 부른다거나, 싱크대의 쌓인 설거지에서 날파리들이 떼춤을 추고 있다거나 하면 그 좋던 맥주맛이 급격히 떨어진다.
둘째 음주 전에는 샤워를 꼭 할 것. 자기 전에 씻어도 되겠지만 그건 미래를 기약할수 없는 약속이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원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로 잠들어 다음날 아침이면 출처가 분명한 죄책감과 만날지도 모른다.
셋째 맥주는 꼭 캔맥주를 사서, 딱 두 캔만 애정하는 유리컵에 부어마신다. 캔맥주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한창 맥주의 맛에 눈을 떴을 무렵 편의점에서 온갖 세계맥주를 무려 네 캔에 만원이라는 가격에 팔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내 머릿속에는 자연히 맥주는 캔맥주라는 공식이 생겨버린거다.
내가 맥주컵으로 가장 애정하던 컵은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코너에서 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컵이다. 투명한 유리컵 표면에 윤동주의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마치 밤하늘에 촘촘히 뜬 별처럼 프린팅 된 예쁜 컵이었다. 기념품 코너에서 본 순간 첫 눈에 그 컵과 사랑에 빠졌다. 윤동주 시인이 고향의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며 시를 썼듯, 나는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며 맥주를 마셨다.
우리집에는 총 네 개의 별 컵이 있었는데(편의상 별 컵이라고 부르겠다.) 우리의 인연은 첫사랑만큼이나 짧았다. 컵의 내구성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모두 나의 부주의 탓이다. 네 개 째의 별 컵을 끝으로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났고, 나는 첫사랑의 무상함을 깨달은 중년답게 별컵과는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내 첫사랑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마트에서 산 500미리 유리컵이다. 디자인적 요소도 없고 터널증후군 환자인 내게는 무겁다 싶지만 맥주 한 캔이 딱 맞게 들어가서 그간 애용해왔다. 이제는 새로운 컵을 들이고 싶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아 헤어지지 못했다. 어떤 인연은 헤어져야할 이유가 백만 스물 한가지지만 아직 때가 오지 않아 헤어지지 못하기도 한다.
주말밤 의식처럼 혼자서 맥주를 마시게 된 것은 2019년부터였다. 그당시 내 결혼은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이 점차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탑같은 상황이었다. 지반을 다지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첫 연애의 황홀함에 애써 눈을 감았다. 기울어진 지반 위에 세운 탑이 견고할리 없었다. 산들바람에도 탑은 흔들렸지만, 나는 탑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건 줄 알고 결혼을 감행했다. 흔들림은 짧았고, 탑을 세웠다는 기쁨은 컸으니까 말이다.
2019년은 혼인한지 10년이 되던 해였다. 남편과 내가 세운 탑은 이미 여기저기 균열이 가 있는 상태였고, 나는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갈라진 탑에서 깨어져 나온 조각들이 내 심장을 아프게 찔러댔다. 나는 애써 참아냈다. 공들여 세운 탑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수 없어서다.
그해 여지껏 만난적이 없는 두 번의 태풍이 나를 강타했다. 하나는 6년 투병 생활을 끝낸 시아버지의 사망이었고, 또다른 하나는 무례한 학부모였다. 시누이 둘과 시이모는 늦은밤 장례식장 빈소에서 시아버지 제사는 응당 내가 모시는게 도리라고 했다. 아직 이른도 채 되지 않은 시어머니는 나이가 많아서 제사를 지낼수 없다고 했다. 나는 여덟살, 아홉 살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이었다. 체력이 후달려 혀를 빼문 개처럼 사는 중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남편에게 제사를 지내겠다고 했다. 남편은 신혼때 이후로 본 적 없던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자신이 없었지만 받아들였다. 거절은 곧 죽음을…….아니그건 느와르 영화에나 어울릴 대사이고……..내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의 붕괴를 의미했으니까. 시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우리는 꼬박 열흘을 시가에서 머물렀다. 시어머니는 밤이면 무서운 꿈을 꾼다고 남편을 보고 속삭였다.
내가 겨우 틀어막은 구멍은 49재 전날 터졌다. 금요일이던 49재에 참석하기 위해 연가를 쓰고 목요일 밤 시가로 향했다. 남편에게 49재가 끝나는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전에 집으로 돌아오자고 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출발 전에 내 평생 들은 욕보다 더 많이 욕을 얻어먹은 것 같다. 남편은 내게 쓰레기라고 했다. 나는 내가 진짜 쓰레기인가를 시가로 가는 세 시간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쓰레기가 아니었다. 그저 애써 세운 탑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사람일 뿐이었다. 49재를 치른 다음날 시어머니와 마트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일요일에 할 일이 있어서 집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못 들을 말을 들은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고, 남편은 코웃음을 쳤다. 나는 혼자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집으로 내려왔다. 내 자신이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행동은 대찼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두려웠다. 다음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눈치를 살피고, 월요일 새벽부터 분주하게 아침밥을 차렸다. 수가 틀어진 남편은 수시로 내 마음을 긁어댔다.
그즈음 내가 맡은 학급에서 학생들 간의 갈등으로 한 학생이 친구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사건이 생겼다. 화해와 갈등 조율을 위해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몇 달간 도를 넘는 장난을 참아왔던 아이들은 이 학생을 받아들이려하지 않았다. 또다른 문제는 이 학생의 어머니였다. 첫 통화부터 감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왕따, 담임의 능력 부족, 선생이 돼서 그깟 아이들 관계 하나 못 바꾸냐 등등 도를 넘는 언어들이 쏟아지더니 급기야는 반말을 하고, 야라며 내게 소리도 질렀다.
나는 급속도로 무너졌다. 저 학부모가 나를 어찌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감았다. 몇 달을 새벽녘에 깨서 잠못드는 시간이 이어졌다. 결국 나는 2학기 휴직을 선택했다. 그런 학부모는 흔하지는 않지만 운이 나쁘면 한번씩 만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비이성적일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무너져 내리는 탑을 떠받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내 상태를 무능력과 소심한 성격탓으로 진단내린 듯 했다. 휴직원을 제출한 상태임에도 나는 비이성적인 공포와 호흡 곤란, 불면으로 여름방학을 보냈다. 남편은 휴가가 되자내 동의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가로 향했다. 그리고는 며칠후 시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오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제 내게는 무너지는 탑을 떠받들 기운도, 어떤 이유도 없었다. 시어머니를 피해 본가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철저히 혼자였던 여름 동안 나는 같은 꿈을 몇 번 꾸었다. 폐허가 된 초가에 노파가 된 내가 덩그러니 앉아있는 꿈이다. 공포 속에서 잠에서 깼다.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 혼자 있는 건 힘들었다. 어둠이 찾아오면 집 앞 편의점이나 가게에 가서 어슬렁거렸다. 그때 만난 것이 한 캔에 4개짜리 맥주였다.
한모금 들이키면 시원하고 청량한 맛이 내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주었다. 더불어 안주로 시켜먹는 배달 음식들은 잃어버린 내 입맛을 찾아주었다. 그뿐인가? 맥주 두 캔은 언제 잠들었지는도 모를 꿀잠까지 보장해주었다. 처음에는 두 캔으로 시작한 맥주가 점차 늘어 세 캔이 되고 네 캔이 되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맥주를 마셨다. 씻지도 않은 채로 소파 위에서 잠드는 날이 늘어났다. 그럴수록 죄책감이 늘어갔다. 하루의 보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보상이 아닌 방치였다. 공든 탑은 무너져 내렸지만 아직 내게는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이들, 그리고 내 자신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사랑을 꿈꿔 왔다. 그리고 그시절부터 지독히도 삶의 요령이 없었다. 하교할 때 소나기가 쏟아지면 그 비를 다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태풍에 우산이 날아가거나 뒤집어지면 맨몸으로 무거운 책가방과 비바람을 버텨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은연중에 튼튼한 우산같은 사랑을 꿈꿨다. ‘궂은 비가 오면 세상 가장 큰 그대 우산이 될게. 그댄 편히 걸어가요’라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말이다. 튼튼한 우산같은 사랑을 꿈꾸며 연애와 결혼을 했지만, 그는 자기 한 몸 가릴 일회용 우산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결핍과 간절함은 영혼의 눈을 가린다.
그 여름 불면과 숙취와 후회의 끝에서 내 우산은 스스로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남의 우산에 기대지 말고 태풍에도 뒤집어지지 않을 튼튼한 우산 말이다. 우산 제작에는 시간도 재료도 많이 든다. 하지만 이 우산은 비가 오면 나를 가려줄 거고, 내 아이들을 거친 비바람에서 보호해 줄 것이다.
이제 나는 한 달에 한, 두번 맥주를 마신다. 맥주 한모금이 주는 시원함과 청량함, 알딸딸함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즐거움에는 꼭 원칙이 따른다. 지난날의 뼈저린 후회 끝에서 만들어 낸 자신과의 약속이다. 나는 약속을 지키고 맥주는 내 튼튼한 우산의 좋은 재료가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