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0분, 매니저 등 뒤에 간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들이 보기엔 퇴사가 시답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때의 나에겐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 캐나다의 스타벅스는 나의 전부였다.
넓고 조용한 땅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유일하게 소속감을 주는 곳.
이곳이 아니면 아무도 내가 살아있는지 모르겠지.
처음 일을 시작하고, 심한 인정욕구가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면, 아무도 나에게 잘 살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꼭 여기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더 애썼다.
돌아오는 건 애석한 비교와 핀잔뿐이었지만.
“저기, 혹시 지금 잠깐 시간 돼?”
“응, 왜?“
나.. 더 이상 여기서 일하기 힘들 것 같아.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그래? 정말?“
…..”
“그럼 오늘부터 안 나와도 돼. 내일부터 안 나와도 일해줄 사람 있거든. 이미 트레이닝도 하고 있고. 네가 안 나와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아. “
그 몇천 번이고 고민했던 생각을 실현하기엔
1 분조차 걸리지 않았다.
가장 허무했던 건, 매니저의 애정 없는 말도, 당장 직업을 잃어버린 사실도 아닌, 매니저의 웃음이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가장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울컥거리는 뭔가가 입에 걸려 아른거렸다.
내가 여기서 나가는 게 맞았었구나.
내가 아닌 것을 미련으로 끌고 오고 있었구나.
매니저와 대화가 끝난 이후,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그 시간 동안, 머리에서는 서러웠던 말이 울리는 듯했다.
마지막의 미련한 인정욕구였을까, 오기였을까, 분노였을까.
마지막 퇴근길에, 다시 한번 미친 듯이 코피가 났다.
“지긋지긋하다 진짜”
하필 마지막날에 코피가 나서, 모든 코워커들의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좀 웃기긴 하지만, 너무 후련했다.
하하, 진작 그만둘걸.”
그 이후부터 나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휴식기간을 가졌다. 더 이상 일할 정신상태가 아닌뿐더러, 지금 일한다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4시 40분에 일어났던 생활 패턴을 바꿨다. 진득하게 망가졌던 몸은, 며칠이 지난 후 거짓말처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매일 나던 코피가 멈췄고, 항상 공허하다 못해 찢어질 것 같은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하고,
다시 일어날 용기가 생겼다. 나는 결국 시간이 필요했다. 나 스스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시간.
난 나 자신에 대해 깊게 파고든 적이 없었다
나 스스로를 생각하기 전에 세상이 나를 수많은 것들로 규정해 주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아, 난 그런 사람인 건가?”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잘못 규정되더라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난 외국인 노동자이다. 나는 최저시급을 받는 학생이다. 난 학생이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한다.
모두가 해야 하니까 나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규정 안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세상에서 무슨 가치를 만들고 싶은지 따윈 없다
그 껍데기는 모든 사람의 평균이어서
어찌 보면 엉터리 줄 서기와 같다
그 껍데기를 따라 길고 긴 줄에 서게 된다
고개를 내밀며 이 줄이 언제쯤 끝날지 투덜대는데
그 기다림 끝에
“ 이제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걸 줘!”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 네가 기다리던 건 여기 없어”
라는 날 선 말에 황당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게 결말이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것을 불안하다는 이유로 계속하고 있다면
잠시 멈춰 꼭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내게 질문해야 한다
이 경험이 내게 도움이 될까? 내 도화지를 채워주는 경험일까?
아니면 내가 채운 것을 앗아가는 경험일까.
그만둠을 망설이는 이유가 익숙함에 대한 안주일까,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일까?
그 이후 몇 차례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가장
내가 이 정도로 힘들어도 되나? 싶을 때쯤 회복하게 된다
해외에서 외로움은 불가피하게도 계속 찾아온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너무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터무니없게도 어느 순간 웃고 있을 때쯤 찾아와 일깨워준다
아, 내가 또 잘 이겨냈구나. 시간이 해결해줬구나.
결국 시간이 아니라 이겨낸 건 모두 나였지만
그 작은 순간들 동안 조금씩 회복하고 있던 나였지만
그러고 나서 우리는 말한다
아, 또 시간이 해결해 줬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너무 많은 경험을 하기 때문에
내가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모든 하루가 똑같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아주 조그마한 상처에 움찔하기도 하고
그 작은 상처에 두려워 하지만
오히려 커다란 상처에 이상한 용기를 얻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첫 직장의 경험은 적은 자존감의 상처와
혼자라는 조용한 불안감과
이상과 부딪치는 순간이 모여 커다랬고
내가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지만
그 작은 두려움들이 커졌을 때
오히려 이상한 용기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