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6개월 동안 5번의 직업을 바꾼 썰
큰 상처는 다시 시작할 용기로 변하고 있었다.
두려웠던 감정도 점차 사그라 들었고, 이유 없는 공허감이 경험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글을 쓰는 순간, 머리에서 “ 이제 다시 시작해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쳐나갔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영하 21도에 눈바람이 쌩쌩 부는데도
고집 센 나는 밖을 나갔다. 왠지 그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력서를 내려 집을 나가던 순간, 잠시 멈칫했다.
내가 고용주라면 어떤 사람을 뽑을까?”
다른 사람들도 이력서만 “ 하나만 걸려라”라는 마음으로 낼 텐데. 기억에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해 냈던 건 손 편지 커버레터였다. “이 가게” 에서 꼭 일하고 싶다는 어설픈 로고그림과 손 편지를 담아 커버레터를 만들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커버레터를 받아 든 매니저의 미묘한 기색에서 이미 눈치챘다.
나는 그날 바로 다른 가게에 취업을 했다. 이후 다른 가게에서도 어려움 없이 구할 수 있었다.
작은 사실이지만 그때 깨달았다. “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잠깐 멈춰 생각해 보고 행동하자고. 다른 사람은 안 하지만, 내가 할 수 있고, 한다면 효과적인 게 뭐가 있을까?”
그 커버레터는 내가 봐도 너무 어설펐지만, 생김새는 중요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그 행동으로서 전해지는 가치다.
“ 그 이후에는 아주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하게 일했다. “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후 치이고 치여 네 가지 일을 더 경험했다.
현금계산 오류에 화나 동전을 눈앞에 던지는 매니저,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돈을 주지 않는 사람. 노동법을 어기는 사람.
캐나다는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 꿈이 많은 사람도 많고, 재능 있는 사람도 많다. 경험이라는 큰 가치에 소중한 용기를 실어 오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결코 한 명이 아닌 그 사람들은
그 꿈들을 실어오는 사람들의 것을 자신의 소유라 착각하기도 한다.
“ 이 꿈은 나한테 달렸겠지.”
그런 의미 없는 우월감에 내 꿈을 잠깐 도둑맞았다면, 웃으며 다시 나아가면 된다. 어차피 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그 꿈은 순수한 용기만이 가질 수 있기에.
가장 명확해졌던 건, 한국이던, 캐나다건, 어떤 나라건 간에 내가 내 자신을 존중받도록 지켜주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결국 내 가치를 정하는 건 나다. 내가 존중받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면, 내 스스로 나를 지켜야 한다. 내가 부당함을 느낀다면,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면, 최소한 “ 이건 부당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당한 일을 겪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바로잡을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던 간에, “내가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할 이유” 는 없다. 언어를 못하기 때문에,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어리기 때문에, 일이 미숙하기 때문에
존중받지 못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다.
나를 받아들여가고 있는 과정인 건지, 사람으로서 존중을 못 받고 있는 건지는 내 스스로 구분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건 내 스스로의 당부이기도 하다.
미숙함과 두려움을 내 가치와 바꾸지 않길.
어렸던 나는 이런 진한 울퉁불퉁함이 싫어 잠시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결국 단단해지는 과정임에 의연해졌다.
캘거리에서의 기억은 내 스스로를 가장 많이 울게 했고, 앞으로도 고이 간직할 기억이 아닐까.
이런 울퉁불퉁한 경험 속에서도
나를 나아가게 만들어줬던 건 내가 만난 사람들이었다. 나와 너무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다름에서 나오는 가치를 가지게 해 준 사람들.
그럼에도 나를 성장하게 해 준 사람들.
이 이후부터는, 내가 만난 알록달록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