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의 캐나다살이, 번아웃이 왔다
사실 첫 번째 직장은 뼈저리게 교훈을 준 장소였다.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게 어색한 19살의 나에게 사회는 가혹했다.
그곳에서 난 언어가 서투른 어린 외국인 노동자였다. 학생과 무소속 외국인 노동자의 차이는 꽤 크다. 아무 곳도 소속되지 않고, 보호받지 않으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게 꽤 무겁다 못해 짓눌리고 있었다.
말 못 하고 일이 미숙한 사회 초년생에게 좋은 말은 별로 오가지 않았다.
“There are a lot of people who can replace you " " you are not a necessary person in this place.”
어리광 어린 투정은 목에 걸려 넘어가지 못했고, 난생처음 5시간을 꼬박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가장 서러웠던 것은, 내가 마음 편히 울 공간 하나조차 없었다는 것이었다. 마음 편히 울고 싶을 땐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내 방조차 제대로 없었으니까. 아파트 로비 소파와 길에서 세상에 나 하나뿐인 듯 울기도 했다. 그리고 나면 서러움은 없어지고, 남는 건 오직 외로움뿐이어서, 그럭저럭 괜찮게 다시 하루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림에도 인정받지 못하고 지적받는 삶으로 가득한 하루는 끊임 없는 부장적인 생각을 불러왔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일까?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그리고 그 울음 속에서 작게 남아있는 자존감과 자아를 지키도록 매일 투쟁했다.
그렇게 3개월 반쯤 지났을까, 날 그만두게 했던 결정적 순간은 나 스스로의 변화를 체감했을 때였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을까?
매일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3번 이상 멈추지 않는 코피를 올렀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 끊임없는 자기 의심으로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
그때는 무작정 버티는 것이 노력이자.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무작정 버티기보다 그만둬야 할 일도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그 와중에 난 스타벅스와 일본 레스토랑에서 총 주 45시간을 일에 투자하고 있었는데, 체력, 정신적인 힘듦이 겹쳐 번아웃이 왔다.
그 이후 한동안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사람들과 말하는 게 두려워지고, 말에 상처받는 것을 회피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예민해졌지만, 그럴 때면 오히려 상처받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괴리감에 숨이 막혔다.
모임에 가도 알 수 없는 메스꺼움과 근원 없는 두려움. 모든 게 낯설게 느껴지고 배치된 것 같은 이방인의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버티며 앉아있기만 했다. 속이 너무 답답할 땐 화장실로 피신해 숨을 바로잡고 겨우 들어갔다.
그 자리까지 회피한다면 정말 더 암흑 속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내가 잡고 있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련함이었다.
그 이후 몇 주간 그 상태가 지속됐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고, 캐나다의 모든 것들이 다 내 자리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한국에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날 버티게 도왔던 단 한 가지가 있었다.
과거의 부지런함이었다.
내 깨끗한 욕망이 섞였던 부지런함. 이 이국적인 사회에 적응하고 싶다는 욕망. 영어를 잘하고 싶은 욕망.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에게 말을 결고, 친구를 사귀고, 직접 뛰며 일을 구하고 다녔던 그 성실함이 나를 끌어올려 줬다.
45시간 일을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가던 모임과, 이전에 사귀었던 친구에게서 오는 연락, 그동안 등록한 수업이 나를 질질 끌어올리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끌어올림 속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울면서 전화를 했을 때 침착하게 조언을 해줬던 내 소중한 모로코 디자이너 친구, 마지막까지 걱정해 주고 따뜻했던 스타 벅스 코워커들, (심지어 그만두던 마지막 날은 근무 중에 미친 듯이 코피가 나서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줬던 또래 캐내디언 친구와 60대 친구, 매일 영어스피킹 연습을 해주던 한국인친구 은서, 그리고 멀리서 힘이 돼주었던 우리 엄마.
조금 귀찮아도 " 뭐라도 더 해야지 , 조금만 더 해야지.”라는 마음은 차분히 빛을 발휘한다.
용기를 냈던 순간들은 항상 빛났다. 그 소소하지만 작은 용기들은 항상 변화를 가져와 주었다. 후회가 되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새로운 모임에 가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용기, 어색하더라도 말 한번 걸어보는 것, 먼저 연락해 약속을 잡아보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용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친절하다.
용기는 그렇게 크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소소할수록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돌이켜 보면 지 금 곁에 있는 모든 소중한 인연들은 내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 사람들이었다.
조금 민망하더라도 먼저 약속을 잡아보고, 한번 눈 감고 말을 걸어보고, 낯선 사람과 낯선 모임에 가봤다.
오히려 후회됐던 순간들은 그 작은 용기 전 미치지 못했던 순간들이었다. "한 번이라도 말 걸어 볼걸" 그 냥 한번 해볼걸"
물론 그 후회의 순간이 있어서 용기로 이어졌다. 후회가 내 등을 떠밀어 줬다.
그래서 후회가 오는 순간이 있다면, 그 이후에는 그 한걸음을 넘어서 용기를 내는 순간이라, 그 후회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짧지만 굵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든 생각은, 결국 쉬는 것 또한 계획에 포함되 있어야 한다.
쉬면 불안하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은 시기가 있다.
그림을 그리고, 수업을 듣고, 일을 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모든 것들이벅차 결국 몸이 망가졌다. 매일 진득한 코피가 끊임없이 흘렀다. 몸이 망가지니 정신또한 한꺼번에 무너졌다.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 같은 회의감을 마주 하고, 나 자신이 가여워질 때쯤, 번쩍 생각이 들었다.
멈춰야 한다. 나는 지금 쉬지 않으면 죽겠구나. 내가 지금 쉬지 않는다면 더 큰일이 일어나겠구나.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오래도 아닌, 딱 적정한 시간. 나 오직 홀로 나만을 위한 시간.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진다. 나만의 바다에 잠깐 발걸음을 내딘다.
그 순간부터, 점차 나 스스로에 잠겨져 있던 애정이 꽃 피어난다. 내 애정 어린 모습을 깊숙이 잠긴 곳에서 꺼내고, 그 위에 것들을 떠내려 보낸다.
원래부터 난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물에 빠트려 잠겨놓았을 뿐, 나는 원래 가지고 있었다.
가끔 내 애정어린 것들은 타인에 의해 잠기기도 한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 체, 심술궂이 내 것을 밀어 빠트린다.
그럼에도 괜찮다. 어차피 다시 꺼낼 수 있는 것은 나니까. 그리고 그 가치는 내 바다에서, 나만 볼 수 있으니까.
내가 스스로 꺼낼 순 없을 때마저, 그건 스스로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