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가계부 실전후기#운명의 집 #전세난민탈출#도서관을 품은 집#내 집
분류기호: 597.1 (주거학 - 주택의 선택 및 구입)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저희 부부는 네이버 부동산을 샅샅이 뒤지며 살 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매수 자금으로 쓸 수 있는 현금은 7억 1천만 원. 예전부터 '내 집 마련 자금'과 '노후 자금'으로 자산을 확실히 나눠 둔 터라, '노후용' 주식을 팔 생각은 하지 않았죠.
하지만 서울에서 7억 원(+대출 3억 원)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의 입지는 제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임장을 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부동산 시장은 하락기였습니다. 지금 집을 샀다가는 이사하자마자 집값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공포스러운 분위기였죠. 조금 더 시장을 지켜봐야겠다는 판단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현 전셋집 집주인에게 연락해 계약 만기일을 한 달만 미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행히 집주인도 새 세입자를 구할 예정이라며 4월 말일로 날짜를 맞춰주셨습니다
원래 저희 만기일은 2월 20일이었습니다. [5화] 부동산 사장님 경험에서 나온 배려로 3월 27일이 만기일이 되고, 거기서 한 달을 더 연장할 수 있었죠.
그렇게 한 달이라는 귀한 시간을 벌어둔 2024년 크리스마스.
원래는 가족끼리 분위기 좋은 외곽 카페로 나들이를 가려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혹독하게 다이어트 PT를 받던 아들이 다리에 알이 배겨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며 드러누워 버린 겁니다. 저희 부부는 내친김에 1순위 후보였던 '삼송'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강사님이 가지 말라던 그 동네
스타필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동네를 걸어볼 작정이었지만, 크리스마스의 스타필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차를 돌려 삼송역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걷기 시작했죠.
삼송역 3번 출구에서부터 창릉천을 따라 걷는데, 그 뻥 뚫린 하천 뷰와 고즈넉한 산책로가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삼송의 대장주 아파트인 '삼송 아이파크 2차' 단지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탁 트인 조경과 시원한 동 간 거리, 넓은 잔디밭, 그리고 정갈한 단지 분위기.
부동산 강의 때 강사님이 "가면 반하니까 가지 마라"라고 했던 그 말은 100% 사실이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첫눈에 완벽하게 반해버렸으니까요. 저희는 자산 증식이 아니라 오로지 '실거주'가 목적이었기에, 그 만류를 기분 좋게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크리스마스임에도 불이 켜진 단지 앞 부동산이 있길래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사장님은 "두 분이 제 크리스마스 선물 같네요!"라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삼송 아이파크 2차의 호가는 9억 원. 아무리 동네가 예뻐도, 서울도 아닌 고양시의 10년 차 아파트를 9억이나 주고 사야 한다는 사실은 제 이성(가계부)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끝났다. 난 무조건 이 집이다'
이후로도 저희 부부는 주말마다 원흥역, 지축역 일대에 차를 세워두고 발이 부르트도록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미 창릉천과 스타필드를 품은 삼송역의 매력에 푹 빠진 제 눈에 다른 동네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2월 초, 삼송 아이파크 2차 근처의 더 저렴한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참지 못하고 중개인에게 물었습니다.
"저기 혹시... 삼송 아이파크 2차도 하나 볼 수 있을까요?"
부동산끼리 연락이 닿아, 저는 삼송 아이파크 2차 29층의 '창릉천 뷰' 아파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넓은 거실 창 너머로 창릉천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그 집 거실에 서는 순간, 제 직감이 소리쳤습니다.
'끝났다. 난 무조건 이 아파트에 살아야겠다.'
그 뒤로 저희는 부동산을 다시 찾아가 명확한 조건을 내밀었습니다.
"창릉천 뷰, 18~22층 사이 로열층, 4 베이(Bay) 구조. 딱 이 조건에 맞는 집만 보여주세요."
마침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집'에 들어섰습니다.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흠잡을 데 없는 집이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날아온 문자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전세 세입자의 만기일이 4월이었죠.
생애 첫 내 집인 만큼 전체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공사 기간 한 달을 잡으면 5월에나 이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응암동 집주인에게 이미 4월 말일로 날짜를 미뤄둔 상태인데, 여기서 한 달을 더 미뤄달라고 선뜻 연락할 수가 없었지요.
'집은 너무 완벽한데, 날짜가 안 맞아서 안 되겠다...'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삼송역 앞 쇼핑몰에서 점심을 먹고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응암동 집주인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혹시 5월 말이나 6월 초 이사도 가능하신가요?]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죠. 커피 쟁반을 들고 온 남편에게 말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습니다. 남편은 “집주인한테 문자 한번 보내 본거야?” 하더군요.
기적처럼 그 시간에 집주인이 먼저 날짜를 미룰 수 있는지 물어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입주 날짜가 5월 말 이후도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서 저에게 문자를 보낸 건데, 제 답장을 받고 가능하다고 답을 했지만 그 후 연락이 없었다고 하네요.
결국 누군지도 모를 그 낯선 사람의 문의 덕분에, 저희는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완벽한 한 달의 시간을 벌게 된 것입니다. 우주가 "빨리 그 집을 계약해!"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저희야 너무 좋죠!"라고 답장을 보낸 뒤,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방금 본 집을 당장 계약하겠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그날 전세 세입자가 주말에만 집을 보여줬기 때문에, 저희 뒤로 줄줄이 예약이 있던 집이었습니다. 저희가 나가는 동시에 다른 분들이 들어오셨죠.
23년 만의 마침표
그렇게 저희는 생애 첫 '내 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집값에 전체 인테리어 비용, 취득세와 새 가구 및 가전 구입비까지 모두 합쳐 총 9억 6천만 원. 저희가 악착같이 모은 현금 7억 1천만 원에, 모자란 2억 5천만 원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습니다.
저의 아빠는 늘 "은행 이자는 공휴일에도 쉬지 않는다"며 빚을 두려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은행은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지만, 저희 부부의 든든한 주식 자산은 공휴일은 물론이고 밤새 야근도 열심히 해주니까요.
이사 올 때, 23년 혹은 15년 된 낡은 짐들은 미련 없이 싹 버렸습니다. 옷과 책, 아들이 고1 때부터 쓰던 책상 세트,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책장과 스타일러 정도만 단출하게 들고 왔습니다. 짐이 적으니 사다리차도 없이 엘리베이터만으로 이사가 우아하게 끝나더군요.
저희 집 창밖으로는 시원한 창릉천이 흐르고, 단지 앞에는 걷기 좋은 '세솔공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파트 바로 옆에는 그토록 원했던 도서관, '삼송도서관'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1,500만 원의 빚에 짓눌려 600원짜리 새우깡 앞에서 3시간을 고민하던 20대의 새댁은, 1원 단위까지 기록하는 지독한 가계부를 무기 삼아 마침내 '도서관과 공원을 품은 집'이라는 꿈을 완벽하게 이루어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