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
내 나이 22살, 아직도 미용실을 엄마와 함께 간다. 물론 앞머리 자를 땐 혼자 가지만 그 외엔 놀랍게도 혼자 가본 적이 없다. 앞머리도 혼자 자르러 간 것도 성인이 된 이후부터였다. 미용실이란 공간은 나에겐 걱정되는 게 너무 많다. 왜 나에겐 공포의 공간이 이렇게나 많이 생긴 걸까.
나는 어릴 때 의사 선생님께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말을 잘 못했다. 그랬기에 미용실에 따라가면 머리 잘라달라는 말을 무조건 엄마가 했고 어디까지 잘라달라는 표현 모두 엄마가 했다. 사람들은 내가 이상했을 것이다. 나는 그게 익숙했기에 나중에는 진짜 내가 말을 못 하는 거였던 건지 아니면 엄마가 말하는 게 익숙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릴 때 미용실 가서 운 적이 정말 많다. 말을 못 하니까 너무 많이 자른 날이 있으면 속상해서 마구 울었다. 머리가 짧아서 이상한 내 모습도 속상했겠지만 그것보다 내가 의사표현을 못한 내 모습이 더 서러운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나를 사랑하지 못한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저 똑같다.
초등학교 시절 머리 스타일은 계속 긴 머리였고, 앞머리는 엄마가 잘라줬기에 미용실 가는 일이 흔하진 않았다. 반곱슬이었지만 초등학교 때까진 머리를 묶고 다녔어서 웬만하면 잘 안 가다 보니 더더욱 미용실은 그야말로 공포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머리 자를 때 얼굴이 떨릴까 봐 걱정한다. 예전 불안이 심했던 시기에 음료 마실 때 얼굴이 너무 떨려서 음료조차 마시기 걱정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얼굴까지 떨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내 떨림은 도대체 언제 괜찮아질까.
아직도 난 불편한 게 너무 많다. 그래도 이젠 표현 정도는 할 수 있으니 이 정도만 잘라주세요 더 잘라주세요 등등 말은 잘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 물어보면 또 벙어리가 된다. 머리카락이 그만 자랐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본다.
그래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 노력하고 있으니 앞으로 점점 달라질 거라 믿는다. 그리고 망하면 뭐 어때, 머리는 자라니까. 무조건 편하게 생각하자. 그래야 덜 힘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