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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r 30. 2021

이제 한국 초등학교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

부정부패와 금품수수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Connecting home and school makes us a great community of learners.


미국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국 학교의 학부모가 되었다. 어린이집 1년, 유치원 및 초등학교 1~2학년 모두 합쳐 대략 4년 정도의 학부모 경험을 하였다. 자원봉사나 재능기부, 초청 강사 등으로 초등학교와 대학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교사로서도 다양한 학교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미국 학교를 경험해 보면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간혹 벌어지곤 한다. 학부모에게 선생님과 학교를 위해 기부금, 선물 등을 요구하거나 대놓고 학부모들이 선생님들 간식을 챙기는 일 말이다. 미국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페이스북으로도 학교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아침에 학교 페이스북에 올라온 첫 공지글은 아래와 같다.   



PTO는 학부모(Parent), 교사(Teacher), 조직(Organization)의 약자로 학부모 교사 협의회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학부모회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선생님들 드시라고 간식을 이만큼이나 샀다며 봄방학 이후 처음 올라온 공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똘똘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맞은 첫 학부모 상담주간에는 아래와 같은 공지가 올라왔다. 학교 올 때 선생님들 드실 커피와 도넛을 사 갖고 오라는 공지. 거기에 한 학부모는 "담임 선생님 커피와 도넛을 사 더니 선생님이 너무 좋아하셨다."는 댓글을, 한 선생님은 "근데 진심이에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이 댓글을 남긴 선생님은 똘똘이 담임 선생님. 센스 없게도 나는 깜빡하고 빈손으로 찾아 뵈었다.



작년에는 학교에서 교장선생님 생일을 앞두고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교장선생님 생일 선물이나 카드를 가져올 사람은 꼭 가져오라는 안내였다. 담임 선생님의 생일 날짜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작년 크리스마스 땐 반 대표 학부모가 메일로 담임 선생님 선물을 사려고 하니 돈을 모은다는 공지를 반 학부모들에게 했다. 나는 돈을 보태진 못했다. 그리곤 열흘쯤 지나서 올해 초, 뜻밖의 담임 선생님 편지를 받았다. 아래와 같은 편지를 아이들 이름을 일일이 써서 학생들에게 주었다. 알고 보니 학부모님 몇 명이 돈을 모아 선생님께 선물과 카드를 드렸지만 담임 선생님은 이것에 대해 감사하는 편지를 반 전체 학생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우리나라. 이제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되었다. 근데 솔직해져 보자. 이런 일들은 예전에 비일비재했다. 어쩌면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았던가.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경험한 담임선생님 중 한 두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촌지를 밝히셨다. 특히,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그 정도가 심했다. 노골적으로 뭐가 필요하다, 누구는 뭐를 가지고 왔는데 좋았다. 등의 말씀을 수시로 하셨다.


스승의 날, 아침부터 긴 줄을 서서 선물을 들고 선생님 앞에 선 적이 있다. 선물 없이 온 2~3명의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 엄마는 그 당시 새로 나온 밀폐형 김치통 2개가 들어있는 박스를 포장해서 주셨다. 큰 박스를 들고 있으니 왠지 선생님이 씽긋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긴 줄이 지나고 내 차례가 와서 선생님이 내 선물을 풀어 보는 순간이 되었다. 미소를 띠며 선물을 열다가 김치통인 걸 알고는 "별 거 아니네." 하며 인상을 찌푸렸던 그 표정.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교사가 되면 절대 촌지를 받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그리고 99년 3월에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촌지는 있었다. 어릴 적처럼 대놓고 요구하거나 주지는 않았어도 암암리에 촌지를 주고받고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받겠다는 안내를 미리 학부모 총회 때 했다. 그럼에도 굳이 내게 비싼 선물을 주려고 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몇 명 있었다. 스승의 날엔 화장품 세트를 가지고 오신 학부모님과 크게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결국 몇 번 선물을 안 받자 그 학부모님은 작년 담임 선생님께 대신 선물을 드리며 신규교사라서 뭘 모른다고 내 이야기를 했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학부모만 교사에게 뭘 갖다 주는 문화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교사들도 교장에게 명절에 뭔가를 갖다 드려야 한다는 문화가 있었다. 교사 6년 차 때 부장을 처음 했다. 그때 교장실에서 단 둘이 교장선생님과 회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추석 연휴 바로 다음 날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내게 리스트를 보여주었는데 그건 바로 명절에 선물을 보낸 교사와 안 보낸 교사를 적은 명단이었다. 비싼 선물을 보낸 교사의 이름은 맨 위에 있었고 동그라미가 쳐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내게 "김 부장, 이제 부장도 되었으니 사회생활을 잘해야 해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아주 가끔 학부모한테 뭘 받았다, 어떤 학부모가 특별히 잘해서 좋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개인의 힘으로는 이러한 촌지 문화를 바꾸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고선 드디어 2016년 9월 말에 시행된 김영란법!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너무 잘되었다 싶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직후,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열렸다. 역시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생겨났다. 아침에 운동회 시작 전에 학년 협의를 하러 연구실로 모두 모였다. 2학년 옆 반 선생님께서는 기간제로 오신 연세가 많으신 분이었다. 선생님이 한숨을 푹 쉬며 이야기를 꺼내셨다. 출근해서 물 한 병을 들고 교실 문을 들어서는데 한 2학년 아이가 손가락으로 물병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선생님, 그거 받으면 안 돼요. 법에 걸려요." 그래서 선생님은, "이거 내가 산 거야. 학교 올 때" 대답을 하셨단다.


그리고 시작된 운동회, 날이 무척 더웠다. 나는 깜빡하고 내 물병을 교실에 놓고 나왔는데 다시 교실로 들어갈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내 주변에는 학부모님 몇 명이 아이들 먹게 시원한 물을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준비해 왔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내게 물 한병도 줄 수 없었다. "선생님, 죄송하게 되었어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목이 너무 말랐지만 한 모금도 마실 물이 없었다. 옆에서는 아이들이 시원한 물을 연신 들이켰다. 물 한 잔 얻어 먹을 수 없는 내 모습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운동회를 모두 마친 후 정오가 되어서야 교실에 들어왔고 비로소 내 물병에 들어 있는 물을 먹을 수 있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일들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 나타난다는 뜻. 현재 우리나라 학교의 모습들을 보며 인과응보는 아닐지 생각해 본다. 한편으론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말도 떠오른다.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이다. 촌지 문화가 사라져서 좋지만 한편으로 물 한병도 못 주고 받는 현실이 너무 심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교사라서 그런걸까? 어쨌든 미국의 학교는 선생님들께 간식, 선물을 드리는 게 가능하지만 이제 한국의 학교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되었다. 그은 확실한 사실이다.


부정부패, 금품수수는 반드시 척결해야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작은 선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간식과 음료 정도는 대놓고 전할 수도 있는 미국의 학교가 부정부패와 금품수수로 가득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스럽게 느껴지는 기분. 착각일까 아닐까. 어느 나라의 학교가 더 교육적인 모습일지 생각해 보게 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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