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몬태나? 승진 안 해?

무조건 GO!

by Olive

If you get tired, learn to rest, not to quit.


몬태나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18년 간 몸담은 교직을 잠시 떠나야 하므로 미리미리 알려서 휴직 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막상 18년 간 근무했던 교직을 떠나려고 하니 마음이 뒤숭숭했다. 몇몇 선배분들께서는 “웬 몬태나? 승진 안 해? 승진 점수 많이 쌓아놓지 않았어? 지금 휴직하면 승진 못 할 텐데…”라고 하시며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며 진심으로 조언하셨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조언은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 초등학교에서는 빠르면 40대 중후반부터 승진이 가능하기 때문에 승진이 가까워질수록, 특히 40이 넘어서는 일 년도 쉬면 안 된다. 쉼 없이 매년 승진 점수를 모아야 승진점수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고 승진이 가능한 상위 순위 안에 들 수 있다.


나의 꿈은 한결같이 선생님이었다. 어릴 적부터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고, 가르치기 위해 배우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나의 꿈은 늘 선생님이었고 교대와 사범대 중에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교대에 진학을 했다.


교대 생활은 초등 전과목을 아우르는 다양한 과목 덕분에 바쁘고 보람차게 지나갔다. 95년 공주교대에 입학했을 당시, 공주는 참 시골이었다. 그래서 졸업 후 교직생활은 서울이나 대전 등 큰 도시에서 하고 싶었다. 대도시의 경우 임용고사 경쟁률이 당연히 더 셌기 때문에 4학년 여름방학 땐 서울 노량진 임용고사 학원까지 다니고 매일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열심히 임용 준비에 매진했다.


임용고사를 치르던 98년 12월.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나오는데 믿기 어려운 엄청난 소식이 들려왔다. 전국적으로 초등 임용 대거 미달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교원 수급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교원 정년단축과 명예퇴직을 적극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떨어지면 재수할 거야.” 배짱을 부리며 대도시로 지망한 친구들도 모두 합격을 하였고, 경쟁률이 두려워 대전 대신 충남을 선택한 친구들은 후회하게 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허탈감이 밀려왔다.


교사가 턱없이 많이 부족했기에 교대 졸업생들은 거의 모두(아마 100%) 임용고사에 합격, 99년 2월에 졸업을 한 후에는 대부분 3월에 발령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운이 따랐던 것이었다. 임용고사 직후 미달 소식을 접한 우리 학번들은 행운의 95학번이라 불렸다. 하지만, 우리 바로 아래 학번들은 이미 전국적 미달이 계속될 거란 예상 속에 대학 생활을 보냈고 신이 내린 96학번, 97학번이 될 거란 소문은 적중했다. 99년 이후 초등교사의 부족 현상은 몇 년간 이어졌고, 결국 중등교원자격증 소지자를 재교육을 통해 초등교사로 보충하는 중초 교사 정책이 이루어졌다. 초등교사의 전문성은 교사 부족이라는 초유의 비상사태 앞에서 찾기 어려웠다.


교원 정책의 혼란과 더불어 학교 현장은 내가 기대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승진 경쟁이 참 치열했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승진점수를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데 점수를 다 쌓더라도 승진하기 직전에 교장, 교감으로부터 근무평정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 따라서 승진을 원하는 많은 선생님들이 교장, 교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야말로 무척 애를 쓰고 계셨다. 근무평정 최고점인 1등수는 각 학교에서 단 1명만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고점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수 밖에 없고, 또 서로에게 양보를 종용하며(아니, 강요하며) 언쟁을 높이기도 했다. 교장 승진만이 교직사회에서 통하는 유일한, 그리고 최고의 경력 개발 통로가 되어 버린 현실 앞에서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학교 교육의 의미는 찾기 힘들었다.


교원 정책에 대한 분노, 과열 승진 문화에 대한 실망감은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교직의 현실에 대해 자꾸 되돌아보게 했다. 이러한 나의 복잡한 감정을 쏟아낼 출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다행히 술이 아닌 대학원 진학이었다. 교육대학원 석사과정, 그리고 박사과정.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을 교직과 병행하며 대학원 생활을 했다. 석사과정은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마칠 수 있었고, 박사과정은 퇴근 후 야간과정으로 이수를 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대학원 생활을 통해 교수님, 선생님들과 교직 생활에 대한 불만, 궁금한 점 등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늘 가지고 있던 나의 의문, 그러나 당연한 것이라고만 여겨졌던 ‘한국의 교사들은 왜 그리도 교장이 되고 싶어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이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대학원을 모두 마치고 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승진점수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연구점수가 만점이 되어 있었다. 또, 어느새 부장 경력 점수와 연구학교 점수도 꽉 차 있었다. 주변에서는 “교장 승진에 대해 논문을 썼으니 교장 승진 꼭 해야겠네.”라고 말씀을 해 주시기도 했다. 교장 승진을 향한 치열한 경쟁문화에 대한 회의감으로 대학원에 진학을 했는데, 막상 졸업을 하고 나니 교장 승진에 가까이 다가선 내 모습, 승진 경쟁 속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박사 졸업 후에는 대학 교직과목, 교육대학원 수업 등 다양한 강의의 기회가 찾아왔다. 교사를 희망하는 예비교사를 가르칠 수 있다는 기회가 참 소중했고 함께 공부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학교에서는 연구학교 연구부장이라는 커다란 임무를 나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배정을 했다. 학교일이 너무 많아 퇴근 시간은 1~2시간 늦어지기 일쑤였고, 종종 퇴근 후에도 짐 보따리를 가지고 와서 집에서도 일을 해야 했다. 방학에도 강의와 연수 등으로 점점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내게 주어지는 부탁이나 기회들을 거절하기 어려워서 또 놓치는 것이 아쉬워서 하나둘 일들을 늘어만 갔다.


결혼 후에도 여러 일들은 끊임이 없었다. 보고서 집필, 2015 개정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를 하게 되면서 퇴근 후에도 종종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아침마다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부랴 부랴 출근하기에 바빴고 출장이나 강의가 있을 때면 아이 돌봄을 위해 늘 친정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2016년 어느 봄날, 문득 남편은 회사에서 외국생활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도전해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 단 한 군데, 몬태나주립대학에서 포닥 과정 수락 메일이 왔다고 했다. 회사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한 거 였는데 갑자기 회사의 입장이 바뀌어서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만일 몬태나에 간다면 사표를 써야 할 것 같고 따라서 내가 찬성하지 않으면 포기해도 괜찮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 둘은 동갑으로 모두 40이 넘은 나이.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몬태나에서의 삶이라는 기회는 다시 올 수 있을까? 또한 지금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나와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주어질 수 있을까? 회사에서 팀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던 남편은 사표까지 던지고 가는 것을 망설였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휴직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나는 “무조건! Go!”를 외쳤다.


사실 마음을 먹고 나서도 남편은 사표를 내는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몇 번 흔들리기도 했다. 남편이 사표 쓰기 며칠 전, 퇴근 후 기운이 없어 보이길래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회사 이사님께서 "세상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미국 간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이 좋은 직장을 그만둔다니... 다들 팀장 하고 싶어 난린데" 하셨단다. 오래 다녔던 회사를 아예 관두고 떠나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으리라.


몬태나로 가게 되면 맞벌이였던 월급이 1/3로 줄어들 것이고, 남편의 팀장 승진 그리고 나의 교장 승진의 기회는 모두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뿐인 인생, 몬태나에서도 살아보고 싶었다. 또한, 한번뿐인 기회, 훗날 못 잡은 걸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몇 번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고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를 몬태나의 삶의 선택했다.


[참고 자료]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12/03/1998120370326.html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11006/77447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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