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we can do so little, together we can do so much. -Helen Keller-
한국의 선생님으로서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알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니 주변이 새롭게 보였다. 그리고 느낀 점은 대략 세 가지였다. 첫째, 몬태나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생각보다 잘 모른다. 둘째, 하지만 의외로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셋째, 그러나 한국어 수업도 한국어 교사도 거의 없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한국어가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다. 몬태나에서도 BTS를 알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미국 친구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대학에는 중국어, 일본어 학과만 있을 뿐 한국어는 없었다. 초중등학교에 한국어반도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너무 다행스럽게도 한글학교는 있었다. 몬태나주에서 유일한 한글학교인 몬태나 보즈만 한글학교였다.
이 한글학교는 교장선생님이신 노 선생님께서 무려 20여 년 전에 등록을 하여 처음 문을 여셨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한국에서 온 입양 아이들도 좀 더 많았고 어린 한국 자녀들도 더 많았기에 더 활발하게 한글학교를 운영하셨단다. 하지만 지금은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을 찾기도 꾸준하게 배울 학생을 찾기도 어렵다고 하셨다. 한국사람들 모두 본인의 직업이 있거나 바쁜 일정이 있어 한글 수업을 지속적으로 맡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으셨다.
나는 한글학교에서 교사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너무 잘 되었다며 많지 않은 재정이지만 그동안 받은 한글학교 기부금이 있으니 책이나 필요한 물품 등을 적극 지원해 주신다고 하셨다. 정말 감사했고 더 용기가 났다. 교장선생님께서는 한글학교 교사로 등록을 해 줄 테니 나중에 한글학교 학술대회에도 같이 가자고 하셨다.
한글학교 교사가 되고 나니 좀 더 많은 기회들이 내게 찾아왔다. 나의 전공은 초등교육 학사, 교육행정 석박사, 한국어로 늘 가르치며 살아왔지만 한국어 전공은 아니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 한국어 교육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기에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때 발견한 것은 재외동포재단에서 운영하는 스터디코리안. 홈페이지에 있는 한글학교 교사 인증과정이 눈에 띄었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어학, 한국어 교육, 한국어 교수법 등을 두루 배울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한글 수업 자료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스타토크(STARTALK)를 통해서도 교사 연수를 받을 수 있었다. 스타토크는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할 중요 언어(현재 8개 언어)를 미연방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어도 그중 하나로 들어가 있고 미국 전역의 몇 개 대학에서 교사 또는 학생들을 위한 과정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나는 온라인으로 받을 수 있는 보스턴대학교 스타토크 한국어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이수를 했다. 연수를 받고 나니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다.
주변에 많지 않은 한국분들이었지만 자녀에게 한글 수업을 시키고 싶은 분들이 점점 내게 찾아왔다. 나는 우선 그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한글 수업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장소가 고민이라고 했더니 한 학부모님께서 본인의 집에서 언제든 하라고 하셨다. 처음에 세 명으로 시작된 한글 수업은 조금씩 숫자가 늘었다. 그 무렵 보즈만으로 이사 온 한국 엄마 가족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친구인 미국 친구까지 합류가 되었다.
수업을 계속하면서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도 조금씩 향상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길고 긴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여름 동안 집중적으로 한국어도 배우고 종이접기, 동요, 게임 등 재미있는 활동도 할 수 있는 한글 캠프를 열면 어떨지 교장선생님께 상의를 드렸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시며 준비물을 적극 후원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여름캠프를 하려면 큰 장소가 필요했다. 한 학부모님께서 가족이 이사를 가기 위해 새로 산 집이 현재 비어있다며 통째로 빌려주시겠다고 하셨다. 다른 학부모님들께서는 간식 지원을 자청하셨다. 많은 관심과 지원으로 한글학교 여름캠프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캠프를 하면서 종이접기, 줄넘기, 동요 부르며 춤추기, 한복 입어보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더 풍부해지니 수업내용도 더 알차게, 재미있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은 학부모 수업 및 수료식으로 좀 더 특별하게 진행하고 싶었다. 태권도 검은띠를 갖고 있는 남편에게는 태권도 수업을 부탁했고, 다른 두 분의 어머님께는 스토리텔링과 한글 단어 수업을 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한글학교 선생님인 내 수업 말고 다른 엄마, 아빠가 수업을 직접 해 주는 것도 아아들에게는 큰 의미가 될 거라 생각했다.
보즈만 시립도서관에는 커뮤니티 룸이 큰 방, 작은 방 2개가 있는데 미리 예약만 하면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 수업을 큰 방에서 하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수료식 때 캠프를 받는 모든 아이들의 학부모님께서 참여를 해주셨다. 한 분은 회사 휴가를 내고 오셨고, 한 분은 불고기 김밥을 싸서 와 주셨다. 그분들께서는 내게 한글 수업, 한글 캠프를 계획하고 운영해 주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해 주셨지만 나는 그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정말 감사했다.
몬태나 보즈만 한글학교가 없었더라면 이 소중한 만남들도 성사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한글학교가 있었기에 한글학교 선생님으로서 많은 학생들과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도 새삼스럽게 느꼈다.
수업은 단지 교사와 학생만 필요로 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수업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큰 힘을 지닌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