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태나 대학교에서 김치 수업 후 이불킥

이불킥은 이럴 때 나오는 거구나.

by Olive

The only bad Kimchi is no Kimchi. -Kellin Cogan-


몬태나 보즈만에서 가장 큰 학교이자 단체인 몬태나주립대학교에는 다양한 학과가 있다. 그중 식품영양학과에서는 매 학기 발효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대학의 교수님으로 오신 써니 언니와 발효 수업을 맡고 있는 교수님인 마씨와는 연구실이 바로 붙어 있기에 서로 친한 사이다.


보즈만에서 맞이한 첫가을, 써니 언니는 내게 혹시 친구 교수인 마씨의 수업을 도와줄 수 있냐며 연락을 주셨다. 마씨가 하고 있는 발효 수업에서 김치를 꼭 해보고 싶어 한다며 김치 수업을 해 줄 수 있는 한국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지난번 요리학원에서 한국요리 수업도 해 봤으니 이번 수업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요리학원 수업을 망치님처럼 잘한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망치진 않은 것 같으니 도와드리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한국의 선생님으로서 한국에 대한 수업이라면 기꺼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씨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발효 수업의 내용으로 그동안 콤부차(홍차나 녹차의 원료를 가지고 만드는 발효차), 사워크라우트(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드는 독일 요리) 등만 다루었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다면 김치도 꼭 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받고 생각해 봤다. 이번 김치 수업을 하게 되면 김치도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번 요리수업 덕분에 불고기와 잡채 만들기를 완전하게 익힐 수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김치다! 그런 생각으로 해보겠다고 회신을 했다.


솔직히 나는 김치를 한국에서 산 사십 년 동안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난 늘 바빴고 친정엄마께선 늘 김치를 해서 주셨다. 가끔 엄마가 김치 만드시거나 김장을 하실 때 도우며 같이 만든 적은 있어도 오롯이 혼자 만들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몬태나에 와서야 김치의 소중함을 느꼈고 김치에 대한 간절함(!)도 깨달았다. 그 후에 멸치액젓과 새우젓을 인터넷으로 처음 구매했고 배추도 사서 김치를 혼자 처음 만들어 보았다.


김치 수업은 1~2시간 정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원래 직접 만드는 실습이 주가 되는 수업이라고 했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김치에 대한 소개를 꼭 넣고 싶었다. 김치의 우수성, 김치의 종류, 김장에 대한 내용 등등. 김치를 만들기에 앞서 우리나라와 김치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씨는 모든 내용은 내가 하기 나름이며 모든 재료, 도구 준비는 당연히 모두 준비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수업 한 달 전 미리 알려만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자원봉사 초청 강의에 대해 너무 감사드린다며 내가 원한다면 김치를 두 배로 만들어 하나는 시식용으로 하고 하나는 집으로 가져가셔도 좋다고 했다. 수업할 때 조금 더 바빠지겠지만 괜찮은 제안이었다.


시간은 착착 흐르고 김치 수업을 하기 한 달 전이 되었다. 드디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불이 떨어져야 수업 준비가 잘 되는 법.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준비가 갑자기 잘 되는 듯했다. 마씨에게 학생 유인물, 필요한 재료 등을 메일로 전송을 하고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마무리를 했다. 문제는 시간과 양념 비율이었다. 김치를 만들려면 배추를 잘라서 먼저 절여야 하기에 선행 시간이 포함되어야 한다. 양념도 개인마다 집집마다 그 재료와 비율이 조금씩 다르기에 왠지 불고기나 잡채 수업을 준비할 때 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학생들과 같이 배추를 자르고 절이는 것부터 수업을 하기엔 길어야 두 시간인 수업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김치 만들기 전에 소개 강의부터 하려면 더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수업 시작하기 한 시간 반 전에 도착을 해서 먼저 배추를 모두 자르고 소금에 절인 후 씻어서 준비를 해 놓기로 했다. 마늘 까 놓기, 파 다듬어 놓기 등도 미리 해야 할 것 같았다. 미리 배추 손질해서 절이기, 수업이 시작되면 우리나라와 김치에 대한 소개, 절여진 배추와 양념 안내, 김치 만들기 시범, 질의응답 및 시식 그리고 학생들 실습시간. 이런 순서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재료를 넉넉히 준비해 준 덕분에 소금을 듬뿍 넣어 절였더니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배추가 잘 절여졌다.


수업이 시작되려고 하니 열 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실습실로 모였다. 김치를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꽤 많은 학생이 손을 들었다. 수업 시작 한 시간 반 전에 미리 와서 준비를 했고 프레젠테이션도 잘 돌아가서 수업이 원만하게 시작되는 듯했다. 하지만 처음 해 보는 김치 수업은 너무 딱딱하게 진행되었다. 수업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진행이 되어야 하는데 준비한 수업내용을 마치 로봇이 전달하듯 이루어졌다. 김치 만들기 시범을 마치고 시식을 해 보기로 했다. 아차! 김치는 반찬인데... 밥이 없었다. 밥을 해서 가져올 걸. 흰쌀밥에 김치를 올려서 먹어야 제맛인데, 김치만을 맛보니 학생들은 모두 '하, 맵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날밤 집에 와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수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부자연스러운 진행, 김치를 맛보고 매워하는 미국 학생들의 표정이 스윽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 나온 건 다름 아닌 이불 킥! '이불 킥은 이럴 때 나오는 거구나.' 생각했다. 몬태나에 와서 김치도 처음 만들어 보고 이불 킥도 처음 해보고, 이것저것 처음 해 보는 것들이 참 많았다. 한국에서 나는 교사였지만 미국에서 영어로 하는 대학 강의, 그것도 전혀 새로운 영역인 김치에 대한 수업은 넘사벽처럼 느껴졌다. '또 하는 일은 없겠지'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해가 바뀌고 6개월쯤 지났을 때 잊고 있었던 마씨에게서 또 이메일이 왔다. 지난번 수업을 학생들이 너무 좋아했다며 이번 학기에도 김치 강의를 부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좋아했다고?' 의외였다. 딱딱한 수업 분위기, 매워서 난감해하던 학생들 표정이 아직도 선한데 좋아했다고요? 마씨는 이번 학기는 김치 내용 덕분인지 두 배로 많은 학생들이 발효 수업을 신청했다며 내게 두 번의 강의를 똑같은 내용으로 해 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 잠깐 고민했지만 나는 지난번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내가 못하겠다고 하면 발효 수업에서 김치에 대한 내용은 빠지는 것이 되기에 그것도 원치 않았다.


그 무렵 아들은 유치원에 진학하여 다니고 있었다. 하교시간에 아이를 찾으러 가면 많은 학부모들과 스몰 토크도 하게 되었고 또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근황을 나누다 우연히 김치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몇몇 친구들이 나도 김치를 배우고 싶다며 수업에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달라고 했다. 너무 잘 되었다 싶었다. 지난번 처음 수업 준비를 할 때 혼자 배추 자르고 절이고 씻기까지 많은 힘이 들었는데 도와준다는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기뻤다. 이번 수업에는 얼마 전 보즈만으로 이사를 왔고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친구인 HK씨와 헬렌씨가 하루씩 수업에 와서 도와주기로 했다.



수업 전 혼자 하던 준비과정을 같이 하니 훨씬 수월했다. 배추를 자르고 절이는 것도 같이 하고 프레젠테이션 클릭도 도와주었다. 찹쌀풀을 만들 때도 저어주는 것을 대신 해 주니 수업 진행이 더 매끄러웠다. 딱딱했던 지난 수업과는 달리 김치 만들 때 약간의 농담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나는 멸치액젓을 넣기 전 냄새를 맡아보며, "Wow, smells so good!"이라고 말을 했다. "Do you want to smell it?" 가까이 앉은 학생에게 들이미니 그 학생은 한 술 더 떠서 "Oh, it's sweet!" 하는 것이었다. 뭘 좀 아는 학생이었다. 순간 나머지 학생들은 '이거 정말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고 한 학생이 다가와서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그 학생은 솔직한 학생이었다. 잠깐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수업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역시 수업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두 번째 수업 땐 흰쌀밥도 미리 해서 큰 그릇에 담아 갔다. 김치 만들기 시범을 모두 마치고 가지고 간 쌀밥에 김치를 올려서 맛을 보라며 안내했다. 신선한 김치와 흰쌀밥과의 조화는 언제 먹어도 최고다. 학생들도 접시에 김치와 밥을 같이 담아서 맛을 보니 지난번 과는 달리 다들 '괜찮은데?'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맛있게 먹었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실습 때 조금 넉넉하게 만들었던 김치를 작은 유리병 두 개에 잘 나눠서 담은 후 한 통을 친구에게 주었다. 더불어 집에서 가져 온 김 두 팩도 같이 주었더니 좋아하며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두 번째, 세 번째 김치 수업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마씨는 그다음 학기에도 내게 김치 수업을 두 번 더 부탁을 했고 그렇게 모두 다섯 번의 김치 수업을 몬태나주립대학교에서 할 수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이제 김치 수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지만 대학교 김치 수업에 대한 추억은 내게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나를 김치 장인까지는 아니지만 김치인(김치를 담글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김치 수업. 김치 수업 덕분에 미국 학생들에게 김치의 우수성과 맛도 알릴 수 있었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친구들 두 명과도 더 친하게 될 수 있었다.


미국은 내 나라가 아니고 영어는 내 언어가 아니기에 미국에서 수업을 하는 동안 나의 이불 킥은 언제 또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다섯 번의 김치 수업을 마치고 나니 김치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내 마음속에서 킥! 아웃~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것으로 일단 만족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