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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y 11. 2021

겨울은 몬태나가 완전 찐이다.

스키, 눈썰매, 산장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곳

I call this piece "Montana". Notice I've carefully layered snow on top of snow on top of snow.


몬태나 보즈만에서는 일 년 중에서 8월 한 달을 제외하고 눈을 볼 수 있었다. 7월 초나 9월 말에도 눈이 한 번씩 오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눈이 전혀 안 오는 달은 8월 딱 한 달이라고 할 수 있다. 몬태나의 겨울은 참 길었다. 눈이 올 때도 많았다. 차도나 인도를 제외한 이곳저곳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어서 눈이 부셨다.


눈이 오면 아침에 눈을 치우는 게 일이었다. 캠퍼스 주택 단지에는 실내 주차장이 없었기에 차에 있는 눈을 꼭 치워야 했다. 안 치울 경우 차바퀴가 땅에 그대로 얼어붙고 눈이 차에 엉겨 붙어서 고생할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몬태나의 눈은 포슬포슬 파우더 같은 건조한 눈이라 치우는 게 훨씬 편했다. 눈이 올 땐 가급적 바깥에 안 나가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며칠 씩 계속 눈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차를 이용해야 할 때가 있었다.


한 번은 열흘 가까이 눈 때문에 집에서만 지내다가 좀이 쑤셔서 안 되겠다 싶었다. 똘똘이와 함께 어디라도 나가고 싶었다. 우리는 집 근처 로키 박물관으로 향했다. 눈길 운전은 가속 페달을 아주 조금씩 밟으며 운행을 해야 하고 브레이크도 절대 세게 잡으면 안 된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약간 내리막길이었던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우회전을 하는데 큰일이 날 뻔했다.


우측으로 핸들을 돌리자 주르륵~ 차가 미끄러지면서 엄청난 회전을 하는 것이었다. 저 앞에서 정지 사인 대기 중이었던 차 앞으로 돌진하는 내 차. 브레이크는 말을 안 들었고 나는 그저 어어어~ 소리만 나왔다. 동시에 앞에 있는 차가 빠르게 가까워지면서 맞은 편 아저씨의 눈이 점점 엄청나게 커지고 있었다. 하늘이 도왔을까, 몇 센티미터를 앞두고 내 차는 겨우 멈췄다. 십년감수했다. 차 창문을 내리고 "아임 쏘 쏘리!" 하는 내게 맘씨 좋은 몬태나 아저씨는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오케이!     


2018년 겨울, 눈이 오면 꼭 눈을 치워야 한다. 안 치울 경우 차가 눈사람이 되어버리는 마법이?!

2019년 초, 겨울에는 보즈만에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이십 년 가까이 몬태나에 산 친구도 겨울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온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눈은 내리고 내리고 또 내렸다. 골목길마다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고 도로에는 눈을 치우는 차도 많았지만 펑펑 내리는 눈을 이기지 못했다.


미국 초등학교의 겨울방학은 크리스마스 전후 약 2주 간으로 매우 짧다. 1월 초면 개학을 했고 눈은 여전히 많이 왔다. 몬태나의 초등학교는 눈이 많이 와도 휴교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 아침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어도 아이들은 스노 팬츠에 스노부츠를 신고 학교로 향했다. 몬태나의 많은 사람들이 트럭이나 사륜구동 차를 모는 이유를 겨울이 되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차는 전륜구동인 세단. 스노타이어를 장착해도 눈길 운전은 사륜구동만 못했다.


눈이 많이 올 땐 걸어서 10~15분, 차로 3분 걸리는 똘똘이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가곤 했다. 미국 초등학교의 등교는 오전 8시 무렵에 이루어지므로 7시 조금 넘어서 학교로 출발을 해야 했다. 오전 내내 눈이 더 많이 쌓이면 하굣길에는 시간이 더 걸렸다. 많은 눈이 쌓여 있을 땐 학교에서 집까지 1시간 넘게 걸리기도 했다. 학교로 혼자 걸어가는 시간과 똘똘이와 함께 하교하는 시간을 더하면 2시간. 하굣길이 극한직업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2019년 2월부터 3월까지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몬태나주립대학교 캠퍼스 풍경
2020년 2월 똘똘이 하굣길에, 평소 걸어서 15분이면 집에 왔는데 이날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 스키 - 브릿저 볼 스키장


몬태나의 겨울은 스키어들에게 최고의 계절이다. 파우더처럼 곱고 부드러운 몬태나의 눈은 최고의 설질을 보장하며 길고 긴 겨울과 많은 눈은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만들어 준다. 겨울에 보즈만에서 스키장에 가는 것은 참 쉽다. 시내에서 불과 20~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브릿저 볼 스키장(Bridger Bowl Ski Area)이 있으며 스키시즌이 되면 보즈만 시에서는 대학교와 시내 정류장에서 무료 왕복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자차가 없는 대학생들, 눈길 운전을 피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셔틀을 이용해서 스키장에 간다.   


브릿저 볼 스키장은 통상 12월 초에 문을 열고 4월 초에 문을 닫는다. 따라서 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려 일 년의 1/3인, 4개월 동안 내내 스키를 탈 수 있다. 또한 브릿저 볼 스키장에서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스키 강좌가 운영되고 있기에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누구든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똘똘이는 2019년 초에 어린이 스키교실에서 스키를 처음으로 배웠다. 스키의 시옷자도 모를뿐더러 영어도 잘 못 알아듣는 똘똘이가 내심 걱정되기도 했지만 또래 친구들이 다들 스키를 배운다고 해서 분위기에 휩쓸려 등록을 해 버렸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스키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전문 강사 두 명이 소규모 그룹별로 지도를 해 주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재미있게 스키를 배울 수 있었다.


워낙 어린아이들이고 초급자라서 밑에서 짧은 거리만 스키를 탈 줄 알았는데 스키를 어느 정도 배운 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스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스키를 타기도 했다. 수료하는 날에는 커다란 초코칩 쿠키, 생쥐 탈을 쓴 인형과 함께 하는 작은 파티도 열어 주었다. 다행히 똘똘이의 스키 첫 경험은 성공적이었다.


더 크고 멋진 몬태나의 스키장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보즈만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빅스카이 스키장을 추천한다. 빅스카이는 인구 약 3,000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빅스카이 스키장은 몬태나에서 가장 큰 스키장이며 미국 내에서도 유명한 스키장으로 꼽힌다. 이곳은 11월 말에 문을 열고 4월 말에 문을 닫으므로 브릿저 볼 스키장보다 한 달 정도 더 긴 스키 시즌을 운영한다.  


2019년 초, 브릿저볼 스키장의 어린이 스키 캠프에 참여했던 똘똘이

# 눈썰매 - 피츠 힐


긴 겨울 동안 보즈만에서 부담 없이 눈을 즐기려면 눈썰매를 추천한다. 스키를 타려면 스키복도 제대로 장만해야 하고 렌털 장비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눈썰매는 공짜! 눈썰매판은 비싸 봤자 돈 만원도 들지 않는다. 그것도 없으면 비료포대라도 좋다. 보즈만에서 눈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썰매를 타는 곳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보즈만 시립도서관 옆에 위치한 피츠 힐(Peets Hill)이었다. 보즈만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천천히 가도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 피츠 힐이 좋았던 이유는 다른 곳보다 경사가 비교적 가팔라서 눈썰매를 탈 때 여느 스포츠 못지않은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추워도 눈썰매 몇 번 타고나면 땀이 났다.


눈이 며칠 동안 펑펑 오고 눈이 많이 쌓였더라도 종종 언제 그랬냐는 듯 해님이 방긋할 때가 많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햇살이 쨍쨍해도 기온은 낮았기에 두껍게 쌓인 눈은 쉽게 녹지 않았다. 몬태나에서는 여름에도 선글라스가 필수였지만 겨울에도 선글라스는 필수였다. 흰 눈에 반사되는 햇빛은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더 강렬했다.



# 산장 체험 - 배틀 릿지 캐빈


몬태나의 겨울에 꼭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산장 체험! 몬태나에는 산도 많고 캠프장도 많다. 더불에 이곳저곳에 띄엄띄엄 산장도 꽤 많은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 산장이 위치한 곳은 산꼭대기 아니면 우리 집에서 먼 곳뿐이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산장은 사륜구동이 아닌 차로는 올라가기가 힘들다.


인터넷으로 몬태나의 산장을 찾다가 딱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차로 40분이면 갈 수 있는 곳, 산꼭대기가 아니어서 세단 차로도 가기가 좋은 곳에 배틀 릿지 캐빈(Battle Ridge Cabin)이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예약은 모두 꽉꽉 차 있었다. 놀러 다니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한다. 날짜를 이리저리 보다가 하루 예약 가능한 날을 딱 하루 찾았다. 목-금 1박 2일. 하룻밤에 30불. 선택의 여지없이 예약을 하고 나서 우리들의 일정을 맞추기로 했다.


눈이 보슬보슬 내리던 2019년 10월 말, 가을인지 겨울인지 애매했던 어느 날, 드디어 산장 체험을 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아이스박스에 먹을거리를 잘 담고, 캠핑 의자, 침낭 등을 챙긴 후 출발을 했다. 포장도로를 30분 정도 달리니 비포장길이 이어졌고 곧이어 철봉으로 된 문이 나왔다. 그런데 그 철봉 문은 번호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산장까지는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리는 거리, 도저히 짐가방을 들고 걸어갈 수 없는 길이었다.


난감한 상황에서 일단 짐은 차에 두고 걸어서 캐빈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캐빈도 잠겨있었는데 자물쇠 옆에 비밀번호가 쓰여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혹시 이 비밀번호로 철봉 문 자물쇠도 열리는 것이 아닐까?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다시 돌아와서 비밀번호로 쇠문을 열고 비포장도로로 진입한 후 다시 잠갔다. 10분 정도 차를 타고 무사히 산장 앞에 도착했다.


산장 주변은 정말 고요했다. 산새들이 반갑게 지저귀고 있었고 다람쥐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집 근처로 엄마 사슴, 아기 사슴이 지나가기도 했다. 고요한 몬태나 산속의 통나무 오두막집. 내가 가고 싶어했던 그런 공간이었다. 산장 옆에는 나무 장작도 가득 차 있었다. 오두막집 안에는 거실과 침실이 하나씩 있었는데, 거실에는 조리대와 난로가 침실에는 2층 침대 두 개와 난로가 있었다.



밤이 되니 기온은 더 많이 내려갔지만 난로가 있어 춥지 않았다. 장작이 많이 있어서 난로에 불을 빵빵하게 지필 수 있으니 좋았다. 그런데 거실에서 찍찍!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그건 쥐 소리였다. 쉿! 조용히 있다가 거실 문을 확 열고 손전등을 비추니 쥐 한 마리가 우당탕 가로질러 구석으로 빠져나갔다. 산장 안에는 우리 세 명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쥐 손님도 와 있었다.


산장 주변을 토끼처럼 뛰어 다녔던 똘똘이는 피곤했는지 일찍 잠이 들었지만 우리 부부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난로에 장작을 계속 넣으며 약 이십여 년 전 처음 서로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새벽녘이 되서야 잠이 들었다. 한쪽 책상에는 연두색 수첩이 놓여 있었다. 그동안 이 오두막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방명록이었다. 나도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한국어로 몇 줄, 영어로 몇 줄. 잊지 못할 산장에서의 추억을 글로 남겼다.



몬태나의 겨울은 정말 길고 길었다. 눈도 정말 많이 오고 또 왔다. 긴 겨울 동안 눈 때문에 불편하고 아찔했던 적도 있었지만 눈 덕분에 추억도 많이 쌓고 더 행복했다. 어느 노래 가사의 한 대목처럼 몬태나에서 경험한 겨울은 찐찐 완전 찐이었다.



[참고 자료]

https://outsidebozeman.com/culture/culture-more/family-time/slip-slide

https://bridgerbowl.com/

https://www.recreation.gov/camping/campgrounds/23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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