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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y 02. 2021

몬태나의 가을은 안 가을가을하다.

단풍도 많지 않았고 바스락거리는 낙엽길도 찾기 힘들었다.

Another fall, another turned page. -Wallace Stegner-


몬태나의 가을은 짧다면 엄청 짧다. 진정한 여름인 8월이 지나고 9월이 되면 때때로 눈이 오는 추운 날씨를 경험할 수 있기에 '이렇게 눈이 오면 겨울이지!' 생각한다면 가을이 거의 없을 수도 있겠다. '눈이 펑펑 오고 눈길 걱정 좀 하겠다 싶을 때 비로소 겨울이라고 할 수 있지!' 생각한다면 9월부터 두세 달 정도를 가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세 번 경험한 몬태나의 가을은 한국의 관점으로는 글쎄... 그다지 가을가을하지 않았다. 알록달록 색깔을 뽐내는 단풍도 많지 않았고 바스락거리는 낙엽길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분명 가을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들이 있었다. 다양한 호박들과 함께 하는 핼러윈 축제, 마른 옥수수(콘) 또는 볏짚(헤이) 등으로 꾸며진 미로 찾기(메이즈), 사냥꾼들이 사냥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하는 때. 그동안 나는 이 3가지를 통해 몬태나에서도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 핼러윈 축제와 호박


캐나다와 미국을 비롯한 북미에서는 매년 10월 31일은 핼러윈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그 날 오후가 되면 시내와 동네 곳곳에서 각양각색으로 분장을 하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아마도 핼러윈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국의 명절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날은 변장하는 재미에 더해서 많은 초콜릿과 사탕을 받을 수 있는 날이다.


핼러윈은 사람들이 유령을 쫓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의상을 입는 고대 켈트족의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유래했다. 켈트족은 10월 31일은 1년의 끝으로 생각했고 추수가 끝나는 날이자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믿었다. 또한, 마귀나 유령이 찾아오는 날이라고 생각을 했기에 이를 막기 위해 무섭게 변장을 하고 음식을 나눠먹는 의식을 가졌다.


이후 8세기에 교황 그레고리오 3세는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로마 가톨릭 교회에 켈트의 전통을 수용하게 되었는데 특히, 11월 1일 지정된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에 삼하인의 전통을 많이 받아들였다. 모든 성인의 날은 'All Hallows' Day'라고도 불렸고 다양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축하를 했다. 지금의 핼러윈(Halloween)은 'All Hallows' Eve'라는 말이 줄어서 만들어진 말로 모든 성인의 날 전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핼러윈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주황색 호박! 매년 9~10월이 되면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호박들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커다란 크기의 주황색 호박이다. 핼러윈이 되면 주황색 호박의 속을 파내고 무서운 표정이나 재미있는 모양으로 구멍을 낸 후 안에 초를 넣어 불을 밝힐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잭 오 랜턴(jack-o'-lantern)'이라고 불리며 창가나 문 앞에 두고 귀신이 못 들어오게 하는 역할로 쓰인다.


(좌) 축제에 빠지지 않는 호박들, (중) 보즈만 영어교실 행사 때 만든 잭 오 랜턴, (우) 호박을 주제로 꾸며 놓은 보즈만 친구의 집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핼러윈 데이. 하지만 요즘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유령이나 괴물 분장을 하고 다니며 사탕과 초콜릿을 받는 날이 되었다. 아이들은 바구니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Trick or treat!"을 외친다. 이 말은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라는 뜻이다. trick(트릭)은 '장난'이라는 뜻으로 'treat'(트릿)'은 '대접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며 여기서 대접의 매개체는 과자, 주로 사탕, 초콜릿 등 달고 작은 과자를 의미한다.


핼러윈을 맞이하여 몬태나 보즈만의 영어교실에서는 수강생 가족들을 대상으로 호박 랜턴 만들기 행사를 진행했다. 처음 만들어 본 잭 오 랜턴은 전혀 무섭지 않았고 귀여웠다. 똘똘이네 초등학교에서는 핼러윈 축제를 학교 전체 행사로 치렀다. 학생들은 당연하고 교장선생님을 비롯, 학교 선생님들, 직원들도 모두 변장을 했다. 학년별로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학교 울타리 바깥 도로를 한 바 돌며 행진하는 것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아이들의 변장 모습도 재미있었지만 파격적인 선생님들의 변장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진진했다. 교장선생님의 마녀 복장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초등학교 행사로 치러진 핼러윈 축제, (좌) 2018년: 맨 앞의 마녀 복장은 교장선생님, (중, 우) 2019년: 눈이 많이 온 날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Trick or treat!"을 하는 시간. 보즈만에 사는 미애 언니께서 집으로 초대해 주셔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항상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시는 언니께서 두 해 동안 핼러윈 저녁 초대를 해 주셨다. 미애 언니는 한국에서 미국분을 만나 결혼하셨고 미국에서 오래 사셨으며 보즈만의 은행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언니의 딸과 아들은 똘똘이보다 몇 살 많은 누나와 형이다.


맛있는 저녁식사 후 사탕과 초콜릿을 얻기 위해 출발! 누나, 형과 함께 나서는 똘똘이의 발걸음은 더 가볍고 신이 났다. 핼러윈 때 바깥 현관 불이 켜져 있는 집은 Trick or treat을 한다는 표시가 된다. 초인종 벨을 누르면 "Trick or treat!"을 외치기도 전에 과자 바구니를 들고 나오시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 일이 있거나 비우게 되는 경우 문 앞에 사탕과 초콜릿 바구니를 놓아두고 "2개씩 가져가세요."라고 안내해 놓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면 손이 더 바빠진다. 바구니 한 가득 받은 과자들을 분류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날 하루, 저녁 몇 시간 동안 받은 사탕과 초콜릿은 일 년 내내 먹는 쟁어 두고 먹어도 될 만큼 많은 양이 된다. 대부분 엄청난 설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너무 많은 양을 줄이고자 (극비리에) 몇 개씩 가져가곤 했는데도 쉽게 그 양은 줄어들지 않았다.


(좌, 중) Trick or treat을 하는 아이들, (우) 받은 사탕과 초콜릿을 분류하는 모습

# 콘 메이즈, 헤이 메이즈


9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몬태나 보즈만 인근에서는 커다란 미로 찾기 두 곳이 펼쳐진다. 한 곳은 마른 옥수수로 가득 찬 곳에 길을 내어서 미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콘 메이즈, 한 곳은 마른 짚 더미를 쌓아서 길을 만들어 놓은 헤이 메이즈. 작년에는 팬데믹 때문에 행사가 취소되었지만 2019년까지는 매년 가을마다 메이즈를 즐길 수 있었다.


콘 메이즈와 헤이 메이즈에 모두 가보았는데 내가 더 맘에 들었던 곳은 콘 메이즈였다.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던 키 크고 마른 옥수수들이 헤이 메이즈의 짚단 더미보다 좀 더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입장료는 두 곳 모두 한국돈 만원 정도였고 야간 개방의 경우 좀 더 저렴했다. 미로의 규모는 예상보다 더 크고 넓었다. 입구와 출구도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으로 꾸며졌다. 중간중간 미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꾸며 놓기도 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팻말이 심어져 있는 곳도 있었다.


메이즈 행사장의 대부분은 미로 찾기가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외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커다란 트럭을 타고 주변 한 바퀴 돌기, 다양한 호박들과 마른 콘이 가득한 놀이장,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러 그림판이 함께하는 포토 존, 짚단으로 만들어 놓은 계단 구조물 등 미로 이외에도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러 작은 체험장이 함께해서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몬태나 콘 메이즈, 헤이 메이즈에서 찍은 사진들

# 사냥의 계절, 헌팅 시즌


몬태나는 사냥을 많이 하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사냥은 주로 9~11월, 석 달 동안에 많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몬태나의 가을은 헌팅 시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몬태나에서 사냥을 하거나 낚시를 할 경우 라이선스(면허)를 사야 한다. 운전 라이선스처럼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해서 얻는 라이선스가 아닌 돈을 주고 사는 것이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몬태나에서 지내는 동안 사냥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몬태나대학교 교수님도 사냥이 취미였고, 교회 목사님인 친구, 친한 친구의 남편, 나이 지긋하신 친구의 아들들도 사냥을 취미로 즐겼다. 몬태나에서 맞은 첫가을 날, 새롭게 알게 된 친구 몇 명과 함께 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보즈만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동네였다. 친구네 집은 꽤 컸고 주차장도 많았다.


집안에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많은 동물 트로피가 그 큰 거실을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슴, 엘크, 무스, 산양, 큰 뿔양 등등 개수도 종류도 엄청났다. 친구가 하는 말이 남편의 취미는 사냥이며 트로피 사냥을 오래전부터 즐기고 있다고 했다. 박제된 동물이었지만 너무 많이 있으니 왠지 으스스한 기분마저 들었다. 몬태나 친구들의 집에서 한 두 개의 동물 트로피를 보긴 했어도 이렇게 수 십 마리를 한꺼번에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취미로 사냥을 즐기는 남편을 둔 어느 몬태나 친구네 거실 풍경

트로피 사냥(Trophy hunting)은 야생동물을 선택적으로 사냥하는 것을 말한다. 사냥한 동물의 일부를 헌팅 트로피로 여기고 박제를 하기도 하고 고기를 얻는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트로피 헌팅은 합법적인 사냥으로 불법적인 밀렵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찬반은 아직도 분분하다고 한다.


야생동물이 많은 몬태나에서는 사냥도 많이 일어나지만 동물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도 많고 관련된 협회도 많다. 사냥을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사냥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몬태나에서 사는 동안 사냥이 취미인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사냥을 반대하거나 동물사랑이 깊어서 고기도 안 먹는 채식주의자도 만날 수 있었다.


몬태나의 야생동물 중에서 큰 뿔양(big horn sheep), 산양(mountain goat) 등 야생 양은 인기 많은 야생동물 중 하나다. 재작년 가을, 보즈만에 있는 몬태나 야생 양 협회에서 오픈 하우스를 한다고 해서 똘똘이와 함께 놀러 간 적이 있다.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계속 줄고 있다며 보호를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꾸며진 행사장 곳곳에서 유익한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무료로 다양한 음식과 음료도 즐길 수 있도록 해 주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했다.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서 협회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여러 동물 박제들. 약간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몬태나 야생 양 협회 건물 안에 있는 많은 뿔과 박제 야생동물들

핼러윈, 미로 찾기, 사냥... 몬태나에서 사는 동안 이 세 가지가 "여기에도 가을이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한국에서처럼 가을이 가을가을하지는 않았지만 몬태나에도 분명 눈부신 가을이 있었다. 아무렴.



[참고 자료]

https://montanacornmaze.com

https://www.facebook.com/BozemanMa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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