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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r 07. 2021

고교 선배가 예약해 준 그랜드티턴 국립공원

What a small world! 세상 참 좁다!

Be nice. The world is a small town.


몬태나로 이사 온 지 몇 주가 지나고 한국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이사 오기 전만 해도 '한국분이 대여섯 분이나 있으려나?' 했는데 와서 보니 스무 분에 가까운 한국분이 몬태나 보즈만에 계셨다. 우리 가족이 새로 이사를 와서 서로 인사를 나눌 겸 주선된 모임이었다. 이 날 대략 열 분 이상이 모였다. 


모임에 온 사람 중에는 내 또래의 40대도 몇 분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은 알고 보니 고등학교 선배 언니였다. 우연히 한국 고등학교 생활을 이야기하다가 왠지 같은 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아 물어보니 같은 고등학교! 한국에서는 고교 졸업 이후 우연히라도 고교 선배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반대편, 몬태나에 와서 고교 선배를 만날 줄이야. 'What a small world! 세상 참 좁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세 살 차이라 내가 고교 1학년 때 선배는 졸업을 했기 때문에 그 당시 서로 알진 못했다. 하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공감대가 생기고 친근감도 많이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성도 같고 이름도 마치 자매처럼 거의 비슷했다. 선배는 20대 때 몬태나로 와서 미국 분과 결혼을 했고 25년 가까이 계속 몬태나에서 살고 있는 그야말로 몬태나인. 몬태나의 대자연을 이곳저곳 누비는 것은 물론, 차로 편도 10시간 이상 걸리는 시애틀, 캐나다 캘거리도 가뿐하게 다녀올 정도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다.


처음 뵌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선배는 5월 말에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으로 캠핑 갈 건데 같이 가면 어떻겠냐며 연락을 했다. 캠핑 사이트 예약을 하는데 생각이 났다며 지숙씨네도 같이 갈 거라 했다. 우리는 차를 산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캠핑도 한 번도 안 가봤기 때문에 텐트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갈 곳은 콜터 베이(Colter Bay)라는 곳으로 텐트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라 먹을거리, 침낭, 따뜻한 옷 등만 싸서 오면 된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웠다. 아직 옐로스톤도 안 가봤는데 그보다도 더 먼 그랜드티턴에 먼저 가보게 되다니! 5월 말까지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점점 설레 왔다.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몬태나 보즈만에서 5시간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우리 가족에겐 정말 먼 거리처럼 느껴졌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2시간 정도 내려가니 창 밖으로 땅에서 김이 폴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보즈만에서는 전혀 안 보였던 눈도 내리기 시작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지나서 내려가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오전 9시 넘어 출발해서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다 되어갔다. 선배가 예약을 해 준 콜터 베이 텐트 빌리지는 캠핑 초보자였던 우리 가족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튼튼하게 설치된 텐트 속에 침대, 난로가 있었고, 바깥에는 테이블과 의자, 음식 보관소 및 캠프파이어 링이 잘 갖춰져 있었다. 몬태나에서의 첫 캠핑은 그렇게 그랜드티턴에서 시작되었다. 


캠핑장의 기온은 조금 낮았지만 햇살이 참 좋았다. 파랗디 파란 하늘, 맑은 공기와 새소리가 우리를 반겼다. 캠프장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도 캠핑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빵, 잼, 계란, 우유, 과일, 과자 등등. 먹을거리를 잘 준비한다고 했지만 역시 초보인 티가 났다. 


쌀쌀한 5월 말에는 따뜻한 국물을 함께 할 수 있는 라면 등이 필수였다. 그리고 계란과 프라이팬만 준비했던 나는 아차! 식용유가 없이는 계란 프라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식용유 없이도 프라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베이컨. 베이컨을 구우면 기름이 나오고 거기에 계란 프라이를 하면 되기에 딱 좋았다. 고교 선배이자 몬태나 선배,  캠핑 선배인 언니 덕분에 여러 가지 소소하지만 중요한 팁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캠핑장의 밤은 금세 찾아왔다. 온도도 급격히 떨어졌다. 장작을 넉넉히 구매해서 열심히 난로에 불을 지폈다.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머리 위로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 쏟아진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 은하수도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영어로 은하수를 왜 밀키웨이(Milky Way)라 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의 눈이 퀭하니 쑥 들어가 보였다. 난롯불이 꺼지면 너무 추웠기에 남편은 난로의 장작을 계속 확인하느라 2시간마다 깼다고 했다. 참 고마웠다. 


아침을 먹고 우리가 향한 곳은 콜터 베이 바로 뒤에 있는 잭슨 호수(Jackson Lake). 호수 저 멀리 병풍처럼 탁 펼쳐져 있는 눈 쌓인 산들이 보고 있노라니 눈이 환해지면서 머리도 맑아지는 듯했다. 아이들은 물놀이, 보트 타기, 돌 던지기, 노래 부르기 등등 대자연이 주는 멋진 풍경과 구름 아래 마음껏 몇 시간을 보냈다. 


잭슨 호수에서 오전을, 숙소 근처 탐방을 하며 오후를 보낸 우리 가족은 일찍 잠을 청했다. 3일째 되는 내일은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을 둘러보고 다시 5시간 거리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침 식사 후 일찌감치 짐을 정리하고 텐트를 나섰다. 일찍 서두를수록 국립공원을 좀 더 많이 구경하고 보즈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국립공원을 가다가 차가 많이 정체되어 있는 경우 대개 곰, 무스 등의 야생동물이 근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차들이 막히기 시작했다. 많은 차들이 정차되어 있는 곳에 우리도 차를 대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쪽에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라고 불리는 회색곰 가족이 이동을 하고 있었다. 엄마곰, 아기곰 2마리, 모두 세 마리였다. 옐로스톤이나 티톤에 와서 곰을 못 보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는데 행운이었다. 



그냥 몬태나로 돌아가기 아쉬워 우리 일행은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리 호수(Leigh Lake)가 있었다. 호수 주차장 앞에서는 플라이 낚시(Fly fishing)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왼쪽에는 눈 덮인 산과 함께 눈 부신 호수가 계속 우리를 따라오고 오른쪽에는 좁은 트레일 코스가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졌다. 마치 호수와 함께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없어서 2~3시간 정도만 함께 한 하이킹이었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오후 3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우리들은 얼른 집으로 향해야 했다. 가는 데 5시간 이상 걸리므로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도착을 해야 했다. 똘똘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깊은 잠에 빠졌다. 하이킹하느라 꽤 피곤했었나 보다. 선배 언니 덕분에 우리 가족의 첫 캠핑, 몬태나에서의 첫 캠핑은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서 잊지 못할 시간으로 2박 3일 동안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이 힘이다.


몬태나에서 사는 동안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서의 캠핑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다른 캠핑장소도 정말 많았기 때문에 한 번 가본 곳을 또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언제쯤 다시 가볼 수 있을까? 다음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리 호수 아래쪽에 있는 제니 호수까지 가보는 싶다. 그때는 그랜드티턴에 오는 관광객들이 꼭 사진을 찍는 장소로 유명한 몰튼 헛간(Moulton barn)에도 들러서 사진을 찍어야지.


[참고 자료]

https://www.recreation.gov/camping/campgrounds/1009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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