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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Feb 04. 2021

몬태나에 드디어 도착

여긴 어디? 나는 누구?

The best way to travel abroad is to live with the locals.     


몬태나는 참으로 멀었다. 장장 13시간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에 도착을 한 후 다시 몬태나 보즈만으로 향하는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고 2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했다. 예상은 했지만 결코 쉬운 거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네 살배기 아들이 울지 않고 잘 버텨주어 고마웠다. 


우리가 도착한 몬태나 보즈만의 공항 이름은 Bozeman Yellowstone International Airport. 이름부터가 옐로스톤이라 그런지 느낌이 있었다. 왠지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빨리 가 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비행기에서 내리니 공항은 온통 나무 재질의 따뜻한 내부라서 포근하게 느껴졌다. 야생동물 사진과 인형들이 여기 저기 걸려 있었는데 마치 우리에게 '어서 와. 몬태나는 처음이지?'라며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이 공항은 약 100년 전에 지어졌고 한참 동안이나 이름에 Yellowstone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이용객이 계속 늘어나다가 최근 옐로스톤을 찾는 관광객이 더욱 더 늘면서 10년 전에 공항의 이름에 Yellowstone을 넣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96%는 와이오밍에 속해있다. 몬태나는 3%, 아이다호는 1%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옐로스톤을 가려는 사람 대부분은 몬태나 보즈만에 있는 공항을 이용해서 간다. 그 이유는 국립공원의 입구(북쪽, 서쪽)에서 가깝고 보즈만에서 숙박, 쇼핑 등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옐로스톤 북쪽 입구까지는 차로 한 시간 반, 서쪽 입구까지는 2시간이 걸린다.

 

와이오밍에도 옐로스톤 동쪽, 남쪽 입구로 갈 수 있는 공항 두 곳(Yellowstone Regional Airport, Jackson Hole Airport) 있으나 보즈만의 공항에 비하면 매우 작다. 또, 옐로스톤 서쪽 입구에서 불과 10분 떨어진 곳에 작은 공항(Yellowstone Airport)이 있긴 하지만 역시 항공편이 매우 적어 이용이 쉽지 않다. 따라서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몬태나 보즈만에 있는 공항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보즈만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한인 회장님 부부께서는 벌써 우리를 마중나와 계셨다. "웰컴투 몬태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회장님. 처음 뵈었지만 너무 반가웠다. 이민 가방의 부피가 꽤 컸기 때문에 회장님 부부께서는 각각 차를 가져와 주셨다. 아니나 다를까. SUV 차량에 가득 짐을 실었지만 공간이 부족하여 승용차 한 대에 나누니 겨우 다 실어졌다. 


회장님 댁으로 가기 전 우리는 대학 캠퍼스에 위치한 교직원 주택, 우리집으로 향했다. 여러 이민 가방에 꾹꾹 눌러 담은 짐의 부피가 상당했기 때문에 짐이라도 먼저 내려놓기 위해서였다. 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꽤 가까웠다. 약 20분. 가는 길 거리에 곳곳에는 여기 저기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칠흑같이 어두웠다.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지만, 캠퍼스 주택 사무실에 있는 비상벨을 눌러 담당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고 집 앞으로 열쇠를 가져다 주셨다. 아담한 우리집을 처음 보는 순간, 지은 지 족히 수십 년은 된 것처럼 오래되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쪽 구석에 있는 커다랗고 네모난 보일러가 눈에 띄었다.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그리고 거실 겸 주방. 카페트 없는 차디 찬 바닥, 가전제품은 냉장고와 전기레인지 겸 오븐이 전부. 가구는 전혀 없었다.  


이삿짐을 거실에 모두 내려 놓고 차로 10분 거리인 회장님 댁으로 향했다. 자정이 어느새 훌쩍 넘어 있었다. 길었던 하루가 모두 지났다. 많이 피곤했는지 자고 일어나니 아침 9시가 넘어 있었다. 창밖을 보니 끝없이 펼쳐져 있는 파란 하늘과 햇살에 눈이 부셨다. 새로운 곳에서 맞이 하는 아침이 그렇게 밝았다. 따뜻한 미역국, 김치, 계란말이, 김 등등. 김이 바삭하고 그리 짜지도 않은 것이 맛있었다. 어디에서 사셨는지 여쭈니 보즈만 코스트코에서 한국 김을 판다고 하셨다. 정성스런 아침 식사 준비를 해 주신 덕분에 몬태나에서 맞는 첫 식사는 정말 최고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물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선 가구가 전혀 없으니 먹고 자는 데 필요한 물건부터 사야 했다. 회장님의 차로 처음 향한 곳은 코스트코 그리고 타겟. 코스트코에서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 3개, 쌀과 김, 야채와 과일을 사고, 타겟에서 식기류, 침대 대신 임시로 바닥에 깔 매트, 세제 등을 구입했다. 


쇼핑을 하러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보즈만이란 도시는 결코 한적한 시골마을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몬태나를 생각할 때는 마치 강원도 시골 마을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보즈만은 해당되지 않았다. 이곳 보즈만이라는 도시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소도시 중 하나, 살기 좋은 도시로 소문이 나서 도시에서 많이 이사를 오고 있는 곳, 몬태나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지만 최근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지역이었다. 몇 년 사이 캘리포니아, 특히 LA에서 사람들이 이사를 많이 오고 있어 보즈앤젤레스(Boz Angeles, Bozeman + Los Angeles)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단다. 


회장님과 사모님의 도움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대충 장만하고 집에 도착을 하니 늦은 오후가 되어 있었다.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펴고 앉았다. 가구라고는 이게 전부였다. 방 한 구석에 옷걸이 봉이 있어서 옷을 옷걸이에 걸었다. 우리들은 배가 고파 얼른 저녁밥을 먹어야 했다. 반찬은 계란후라이, 참치캔, 김 등이 전부였지만 꿀맛이었다.

 


거실 한쪽에 위치한 난로가 열심히 온기를 내뿜었지만 바닥은 정말 차가웠다. 토퍼 매트리스를 안방 한가운데 펼쳤다. 다행히 그 위로는 냉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은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자정이 훨씬 넘은 새벽까지도 한참 동안이나 잠이 오지 않았다. 안방 창문 넘어 반달이 환하게 비쳤다. 저 멀리 “삐익-츄츄--” 기차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천직으로 생각했던 교직을 떠나 여기에 왜 왔지?' 


이제 겨우 이틀째, 몬태나의 새로운 우리집에서 맞는 첫날 밤. 벌써부터 한국이 생각났다. 부모님 얼굴도 떠올랐다. 그랬다. 만일 몬태나에 오지 않았더라면 2달 후 새로운 아파트로 입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멀리 몬태나까지, 우리는 굳이 사서 고생하는 걸까? 누워있는 이 집이 너무도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참고 자료]

https://bozemanairport.com

https://www.yellowstonepark.com/road-trips/air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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