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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Feb 06. 2021

몬태나엔 눈이, 내 눈엔 눈물이

몬태나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일들

Life begins at the end of your comfort zone.     


몬태나 보즈만의 겨울은 정말 길었다. 12달 중에서 8월 딱 한 달을 빼놓고 사시사철 눈을 볼 수 있는 곳. 또한, 하루의 날씨 속에서 사계절을 느낄 때도 종종 있었다. 아침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바람이, 오후에는 쨍쨍 내리쬐는 햇볕 아래 더워서 반팔을 입기도 했다가 밤이 되면 온도가 훅 떨어져 털옷이 필요한 그런 하루를 생각해 보시라. 해발고도가 1500m인 몬태나 보즈만이라는 도시, 우리나라의 지리산 노고단의 높이에서 늘 생활을 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 가족이 이 곳에 도착했을 땐 2017년 초. 어딜 가도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차가 다니는 도로에는 눈이 많이 없었다. 이유는 이 곳의 눈이 정말 건조하기 때문이었다. 습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눈도 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눈이 많이 오더라도 파우더처럼 느껴지는 포슬포슬한 눈이기 때문에 치우는 게 훨씬 수월했고 도로 위 눈도 금방 녹는 듯했다.


몬태나로 이사를 와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차였다. 차가 없이는 마트도 약국도 갈 수 없었다. 다행히 캠퍼스에 위치한 교직원 주택으로 보금자리를 얻은 덕분에 남편은 걸어서 20분 정도 걸려 출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어린 아들은 차가 없이는 추운 날씨 속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한인회장님 내외분께서 차를 구하기 전까지 종종 차를 태워주셔서 장도 보고 가끔 나들이도 할 수 있었지만 우리차가 없다는 것은 정말 불편한 일이었다. 몬태나는 겨울이 길고 종종 눈길의 위험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눈길에 안전한 트럭이나 SUV 사륜 구동(Four Wheel Drive) 차를 몰고 다녔다. 그래서 우리도 세단이 아닌 조금 더 큰 차를 사고 싶었다. 하지만 중고차 가게에서 우리가 원하는 차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매물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연락을 해 보면 벌써 팔렸거나 누군가 산다고 예약을 해 놓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차를 사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집 근처 캠퍼스 내에 마트가 있다고 해서 아들과 손잡고 마트로 향했다. 걸어서 15~20분이면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어서 출발을 했는데, 아이와 함께 하는 걸음으로는 30분 가까이 걸렸다. 물건값을 계산하려는데 점원이 물었다. “Is everything okay?” 그런데 갑자기 헷갈렸다. ‘Yes? No? 뭐가 맞는 대답이지?’ 대답을 머뭇거리며 어색한 미소를 짓자 점원은 씩 고개를 끄덕이며 계산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Yes, No 어떤 대답도 상관없었다. "Yes, everything is fine", "No, it's not." 둘 다 맞은 표현이기 때문. 하지만 미국에 처음 와서는 쉬운 영어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금방 떠오르지 않아 왜 그리 긴장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유와 과일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몬태나의 날씨가 바뀌었다. 3월 초, 오후 4시쯤이었던가. 분명 한 시간 전에 출발할 땐 날씨가 괜찮았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람이 갑자기 많이 불더니 금세 눈보라로 바뀌었다. 아들은 못 걸어간다고 안아달라고 울면서 보챘다. 몇 번 설득해서 집의 중간까지는 걸어갔지만,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할 수 없이 한 손에는 아들을 안고, 한 손에는 장바구니 비닐봉지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봉지 속 우유가 흔들거릴 때마다 왜 그리도 무겁던지, 괜히 샀다 싶었다.


아직도 15분은 더 가야 하는데 눈과 바람이 함께 몰아쳐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아들은 눈물을 그치고 내 품에서 잠이 든 듯 보였지만, 나의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지며 눈 앞이 점점 흐려졌다. 세찬 눈보라가 마구 얼굴을 때리고 결국 눈물이 쏟아졌다. 울면서 집에 가는 길, 머릿속으로는 눈물이 아니라 눈이 녹은 물이라 믿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동네 마트에서 종종 3만 원 이상 구매 후 무료 배달을 이용해 왔었고, 마트와 집까지의 거리도 가까워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정말 편리한 배달 시스템, 가까운 동네 가게들, 그리고 늘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쓰면 되었었던 말과 글... 이 모든 것들을 편안하게 누리며 참 안락하게 살았었구나. 한국에서 그저 당연한 것들로만 여겨졌던 것들이 정말 고마운 것들이었음을, 한국의 반대편 몬태나에 오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눈 맞으며 눈물 흘리며 겨우 집에 도착을 하니 하루 해가 저문 듯 어둠이 찾아왔다. 동네 마트에서 물건 몇 개 샀을 뿐인데, 하루가 모두 지나갔다.


결국 우리차는 크레이그리스트(Craiglist) 사이트를 통해서 구매를 했다. 이 사이트는 각종 중고 물건을 거래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중고나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원하는 차는 SUV 사륜구동이었으나 매물이 없었다. 원하는 차종을 기다리자니 기약이 없었다. 그렇다고 새 차를 사기에는 몬태나에 언제까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금전적인 부담이 컸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알맞은 가격의 세단차를 사기로 결정을 했다. 원하던 사륜구동은 아니었지만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하니 산길만 아니라면 눈길에서도 문제는 없었다.  


차를 구입했으니 이제 드라이브를 시작해 볼까? 운전을 바로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다 깜빡한 국제 운전면허증이 내겐 없었다. 급하게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니 며칠 만에 받아 볼 수 있다고 한다. 빠르고 편리한 우리나라의 행정처리가 정말 감사했다. 3일 만에 받은 국제 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을 처음 하는 날. 마치 없던 발이 새로 생긴 듯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몬태나는 한국 운전면허증 교환이 허락되지 않는 주였기에 운전을 임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곳의 운전면허 취득을 위한 필기와 실기시험을 모두 다시 치러야 했다.


몬태나의 운전면허 시험 절차는 한국에 비하면 거북이처럼 느리게 진행되었다. 바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 달 이상 대기 후 겨우 필기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필기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어 좋았다. 무사히 필기 합격 후 실기 시험을 보는데, STOP 표지판 앞에서 정차를 제대로 안 했다는 이유로 낙방을 했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낙방이라니! STOP표시에서는 완전히 멈춰 선 후 좌우를 살핀 후 다시 움직여야 하는데 완전하게 멈춰 서지 않았다는 게 떨어진 이유였다.


한번 기회를 놓치니 또 긴 기다림이 찾아왔다. 한 달을 기다린 후에 치른 두 번째 실기시험에서는 다행히 합격을 했다. 몬태나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고 나니 어느덧 몇 달이 지나 있었다. 운전면허를 딴 이후에도 수많은 STOP 표지판과 좌회전 표시 없는 비보호 좌회전 등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교통신호 체계에 적응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만 여겼던 많은 일들이 이곳 몬태나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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