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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숙 May 08. 2022

주눅 들어 자신 없는 우리 아이

불이익을 당해도 가만히 있거나 말을 하지 않아요

....... 그래서요.


선생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면서 나는 겁이 났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가정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 일인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도언이가 전학을 왔다. 성격이 활달한 편인 도언이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가끔씩 농담이나 우스갯소리를 해서 친구들을 재미있게 했다. 그런데 어떤 순간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모두 친구들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서 의아하기도 했다. 어느 날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하는 금연글짓기 대회가 있어서 반 아이들 모두 써오도록 숙제를 냈다. 방과 후에 숙제 검사로 아이들이 써온 글을 읽었다. 나는 도언이가 쓴 글을 보고 매우 놀라고 슬퍼 눈물을 흘렸다.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아이는 그 과정이 드러나게 담담하면서도 대담하게 글을 썼다. 가정폭력을 휘두른 아빠에게 편지를 쓴 내용이었다. 아빠가 그런 모습을 보인 게 어떤 배경에서 자라서인지 이해한다는, 다소 성숙한 태도로 자신의 힘들었던 점을 솔직하게 고백한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친한 친구들과 헤어진 것도, 아무도 모르게 전학을 와서 사는 것에 대한 서글픔도 조리 있게 풀어내어 글을 고쳐줄 필요도 없었고, 이 글을 보내면 분명히 대상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갑자기 아이가 전학을 온 것이 학기 중도인 것이 생각났다. 예상대로 위기 가정으로 분류되어 비밀전학을 온 케이스였다. 혹시나 수상을 하게 된다면 가정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들어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어머니는 조용히 학교생활만 하기를 바랐다. 오랜 시간을 폭력에 시달린 어머니는 도언이가 수상한 게 어떻게든 알려져 생활 위치가 노출될까 꺼리셨다.  도언이를 불렀다.


도언아, 이거 보내면 샘 생각에는 분명히 대상감인데,
엄마는 혹시나 아빠가 이걸 보고 찾아올까 걱정을 하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유, 전 괜찮아요 선생님. 엄마 생각대로 하셔요.
엄마와 동생을 지켜야 해요. 





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도언이의 눈이 잠깐 빛이 났지만, 금세 포기했다. 아이는 그동안 많은 것을 포기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형이라서, 엄마를 지켜야 해서, 늘 웃는 모습은 자신의 아픔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였다. 고민하던 나는 글을 보내기로 했다.  마침내 발표날,



안 선생, 어떻게 학생을 지도해서 대상을 탔어?


저는 한 게 없어요.  
교장선생님, 상을 탄 현수막은 걸지 말아 주세요. 


상을 탔다는 말을 들은 도언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대상에는 상금도 있어 가정에 보탬이 되는터라 소식을 들은 어머니도 중학교 갈 교복을 마련해야겠다고 무척 고마워하셨다.  어머니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도언이에게 자신감이 붙는 것이 눈에 보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땅히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요. 법관이 될 거예요.
저처럼 힘든 일을 당해도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참기만 하는 사람을 도와줄 거예요. 



아이의 자신감이 형성되는 시기를 심리학자들은 만 6세부터 12세 사이라고 본다. 이 시기에 내적, 외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자신의 마음에서 스스로의 모습이 긍정적일 때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이고 주변 아이와도 잘 지내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한다. 다만 자신감이 없는 아이와 타고난 성격이 조용한 기질과는 구분이 필요하다. 자신감이 없는 아이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계속 보고, 학업에서도 자기 효능감이 없어 성취도가 낮은 편이다. 때문에 사소한 시도도 안 하려고 하고 해 보기도 전에 자포자기를 쉽게 한다. 


자신 없는 아이는 대개 다음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

놀이나 게임에서 질 것 같으면 시작하기 전부터 포기하거나 중도에 그만둔다.
중요한 시험을 칠 때 커닝을 한다.
자신감 없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일부러 웃기거나 개그를 하는 등 가면을 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남에게 지시하거나 괜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
중요한 일도 시시한 것으로 낮춰 말한다.
자신이 잘 못하는 이유를 '부모님이 안 도와주어서, 선생님 때문에'라고 하는 등 남 탓을 한다. 



이런 자신 없는 아이를 만드는 요인은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라기보다 다음과 같은 환경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1. 부모의 잘못된 양육태도: 과잉보호, 무관심, 지나친 통제와 체벌, 완벽주의, 지속적인 비난과 비판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런 태도를 보인다.


2. 부모의 소심한 기질: 부모가 늘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아이는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한다.


3. 계속된 실패로 성공한 경험 없음: 아이가 어떤 일에 실패해도 괜찮다고 격려하고 지지해야 하는데, 무조건 못한다고 다그치거나 타고나길 아둔하다는 등의 폭언을 아이에게 바로 한다. 혹은 아이 스스로 나는 노력해도 되는 게 없다는 식의 패배감에 젖어 있다. 


4. 신체적, 정신적인 장애나 문제: 몸이 불편하거나 초등학교 입학 시 한글을 못 떼고 들어와서 늦어졌거나, 학습이 늦어 천천히 배우는 경우에 해당한다. 

 


자신 없는 우리 아이를 어른들이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정에서

아이에게 따뜻한 말과 태도로 격려하고 지지해준다.

아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파악하도록 여러 가지 체험이나 활동을 같이한다.

아이의 연령에 맞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친다.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외식할 때 메뉴 정하기, 숙제 시간 등)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와 태도를 항상 보여준다. 

아이가 잘한 점을 콕 짚어서 이야기해 준다.(우리 아들 똑똑하구나 라는 식의 칭찬은 독이 됨,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하기)

가족이 모여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가족회의를 통해 가족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문화를 만든다. 



학교에서 

학교에서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배려하고 잘못을 해도 질책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준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관찰하여 구체적으로 칭찬해 준다.

아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보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서 작은 성공 경험을 늘여가게 돕는다.

아이와 미리 약속하고 그것을 잘 이행하면 꼭 보상을 해준다. 보상도 아이와 미리 협의한다.  

주기적으로 아이와 이야기해서 어떤 점에서 성공하고 실패했는지를 나눈다. 실패를 하더라도 잘못이 아니고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이야기를 하며 같이 상의한다. 

항상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아이를 존중해 준다. 

선생님이 권유한 행동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화내지 않고 다음에 다시 하자고 말한다.



얼마 전 동생네 부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모가 외향적이거나 나서서 말을 잘하는 등 리더십이 있으면, 자녀들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 네 자매 모두 나서서 말하거나 다른 사람과 항상 소통하는 직업을 가졌는데, 조카들이 모이면 전부 조용조용 말하거나 옹기종이 모여 앉아서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접한다. 하지만 요 녀석들은 자신들이 발표할 기회가 되면 당당히 나서서 설명을 조리 있게 한다. 그래서 앞서 기질이 조용한 아이와 자신 없는 아이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 무조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 "넌 할 수 있어.", "너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아직 네가 작은 목표에 성공하면서 살아야 할 시간은 매우 많아."라는 것을 말해주고, 느끼게 해 주고, 실제로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짊어질 이 세대에게 해야 할 우리 어른들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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