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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틈(3)

<치유>

by 삼오십

“네 어머님. 다녀오세요. 윤호야,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자.”

“수고하세요 선생님. 아, 그리고 윤호 요즘에 너무 말 안 듣고 차도로 뛰어나가요. 잘 좀 봐주세요.”


현지는 아이를 안은 채, 인사를 연신 꾸벅했다. 일찍 일을 시작해 벌써 햇수로 8년 차 어린이집 교사지만, 워낙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젊다 보니 어떤 엄마들은 그런 현지를 썩 못 미더워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여태 버틴 건 좋은 엄마들도 있어서였다. 좀 미숙해도 늘 챙겨주고 이해해 주는. 그래도 현지는,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엄마들도 인정하도록 꿋꿋하게 열심히 하는 수 밖에는 없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 간식 먹이기가 끝나자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신발을 신기고, 아이들에게 주의사항을 환기시키고 어린이집 문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돌아 놀이터가 보이는 곳쯤에 이르자, 양손에 잡고 있는 아이들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친구들, 아직 안 돼요. 선생님이랑 저기까지는 손 잡고 가야 해. 알겠지?”


현지의 양쪽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아이들을 잡고 있는 손을 놓자마자 놀이터를 향해 달려갈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선생님, 저 쉬 할래요.”


한 아이가 다급한 얼굴로 현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직 소변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나올 때 항상 물어봐야 했었는데, 분명 아까는 쉬가 마렵지 않다고 했었다.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으로 다시 데리고 가야만 했다. 현지는 앞서 가고 있는 옆반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만. 선생님! 저 예은이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윤호 좀..”


현지는 그때, 잡고 있던 한쪽 손에서 아이의 손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이미 윤호가 선생님 손을 놓고 놀이터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윤호야!”


현지가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아이는 오히려 잡힐까 싶어 더 빠르게 뛰었다. 낄낄 웃으면서 한 번씩 뒤를 돌아보고 달려가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위태한 모습이었다. 현지는 한쪽 손에 예은이를 붙들고 있어 윤호를 잡으러 뛰어갈 수가 없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양손에 아이들을 붙들고 길을 건너고 있어 누구 하나 윤호를 대신 잡으러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지는 예은이를 안아 들고 윤호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일단은 더 위험한 찻길로 뛰어가기 전에 잡아야 했다. 아이는 잠시 멈췄다가 현지가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것을 보자 다시 다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윤호야 안돼!”


현지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 아이를 거의 잡을만한 거리까지 도달했다. 아이는 곧 잡힐 거라는 걸 깨닫고는 낄낄 웃으면서 방향을 틀었다. 아이가 몸을 돌리는 방향에 시소가 있는 게 보였다. 현지는 순간적으로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윤호는 고개를 돌리고 따라오는 선생님을 의식하다가 살짝 올라와있는 우레탄 블록을 인지하지 못하고 발이 걸려버렸다. 그리고 아이의 몸이 중심을 잃고 넘어진 곳에 정확히 시소의 끝 부분이 있었다. 턱,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는 얼굴이 시소의 끝에 부딪치고 철퍼덕 엎어졌다.


“으악!! 으앙”


그 모습을 본 현지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침에 윤호 엄마의 당부하던 얼굴이 떠오르면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는 게 느껴졌다. 안고 온 예은이를 거의 떨어뜨리다시피 내려놓고 주저앉아 윤호의 얼굴을 살폈다. 얼핏 봐도 5센티가 넘게 살이 벌어져있는 게 보였다. 피로 범벅된 아이의 얼굴을 보며 현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아이의 얼굴에 생길 흉, 학부모, 원장선생님과 앞으로 있을 일들이 상상되며 현지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제발.’


현지는 갑자기 울고 있는 윤호를 부둥켜안았다. 자신의 품에 아이의 얼굴을 대고 속으로 미친 듯이 외쳤다.


‘안돼! 제발. 이건 안 돼요. 도와주세요. 제발요!’


현지는 어느새 아이를 안은 채 울고 있었다. 너무 무섭고, 서러웠다. 다가온 선생님들의 소리가 들렸다. 주임 선생님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현지의 품에서 아이를 받았다.


“윤호야 그렇게 뛰어가면 위험해요. 다치면 병원 가야 해.”


현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윤호, 병원 가야 해요. 얼굴에요. 상처, 피요. 흑흑”


현지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말했다. 빨리 병원에 가서 봉합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았다. 주임 선생님은 이상한 듯 윤호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고 다시 말했다.


“현지쌤, 윤호 얼굴 괜찮은데? 깨끗해요. 얼마나 다행이야. 큰일 날 뻔했어.”

“네?”


현지는 벌떡 일어나 아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이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과 흙이 좀 묻어있었을 뿐 아까의 길게 찢어진 상처가 온 데 간 데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지는 자신의 손과 아이를 안았던 자신의 옷도 살폈다. 피가 묻어있었어야 할 곳이 역시 흙먼지가 좀 묻어있었을 뿐 핏자국은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이렇게 선생님 손 놓고 뛰어가면 안 돼요. 큰 일 나는 거야. 알겠지?”

“네에.”


주임선생님의 말에 아이들 모두 입을 모아 대답했다. 아이들은 이제 놀아도 된다는 말에 신나게 뛰어가 놀이터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현지는 혼자 정신이 나간 것처럼 서 있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윤호도 어느새 아이들과 뒤섞여 미끄럼틀을 오르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건가, 아니면 너무 놀란 나머지 헛것을 본 건가. 현지는 정신을 차려보려고 눈을 껌뻑이며 서 있다가 누군가 자신의 다리에 손을 대는 느낌에 갑자기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예은이었다. 예은이는 약간은 두려워하는 얼굴로 현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예은이는 이미 바지에 쉬를 한 상태였다.


“괜찮아, 예은아. 선생님이 화장실 못 데려가서 미안해. 가서 우리 옷 갈아입고 다시 나올까?”


예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는 예은이의 표정을 보며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쉬를 해서 엄마에게 핀잔을 들을까 봐 그런 걸까? 아니면 혹시 예은이는 내가 본 것과 같은 것을 본 건 아닐까?’


현지는 예은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현지는 계속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호의 얼굴에 난 상처는 자신이 상상하거나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 상처가 사라지게 된 건지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현지는 자그맣게 자신을 부르는 예은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생각에 잠겨 걷는 사이 어린이집 현관을 지나치고 있었다. 현지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고 하면서 예은을 안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저만치서 주임선생님이 윤호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윤호야, 아까 넘어져서 다친데 없어? 이제 괜찮아?”

“아까는 아팠는데, 이제 안 아파요.”


윤호는 눈동자를 굴려 고민하는 표정을 하더니 말했다. 주임선생님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윤호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면서 시선을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계속 근처에 어떤 남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현지와 예은이 어린이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저만치에서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임선생님은 그가 아까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나와 산책을 하면서부터 그들을 뒤에서 따라갔던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엔 학부모인가 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는 뭔가를 수첩에 적는 것 같더니 잠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임선생님은 일단 선생님들에게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고 일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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