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쓰는 게 곧 삶이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인터뷰 내용을 보고

by 노을책갈피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늙어도 욕망 줄지 않아... 살아있으려면 사랑하라" 파스칼 브뤼크네르 인터뷰 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인상적인 인터뷰 내용>


"에너지를 쓰는 게 곧 삶이다. 10년을 주기로 스스로를 거침없이 재구축해야 합니다. 50, 60, 70, 80....

숫자가 바뀔 때마다 안주하지 말고, 위험을 무릅써도 됩니다. 자기로 사는 편안함과 자기 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인지해야, '나'로 살 수 있어요."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에너지를 쓰는 일에 대해 '이것이 과연 잘하는 것일까?' '괜히 시작한 것은 아닐까?'라고 강한 확신은 없었지만 내 신념을 믿고 도전해 왔다.

"에너지를 쓰는 게 곧 삶이다."라는 말이 나에게 위로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묵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무언가에 도전하면 에너지를 너무 한 번에 몰아 쓴 나머지 나중에는 방전이 되어 마치 나락한 것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것을 분기마다 반복하다 보니 더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0년을 주기로 스스로를 거침없이 재구축해야 한다."

나는 과연 스스로를 재구축하고 있는 존재일까?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위험을 무릅써도 될 만큼 나를 새롭게 세우고 있는 것일까? 나의 답은 아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한층 더 새롭게 세우려면 적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함을 안다. 나이가 더 들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여기서 더 노력하지 않으면 쉽지는 않을 것임을 안다. 그렇기에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자기로 사는 편안함과 자기 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인지해야 '나'로 살 수 있다."

나로 사는 편안함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의 엄마로서 누군가의 아내로서, 누군가의 딸로서, 누군가의 며느리로서 제 역할을 120% 잘 해내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역할에서 나답게 나름 안정적으로 가정을 지켜가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오는 편안함이 아닐까? 그리고 나일 수밖에 없는 불편함은 또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여러 역할들에 있어서 내가 지켜내야 할 책임감이 아닐까?

어찌 보면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편안함과 불편함 모두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나'로서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나는 떳떳하게 모두에게 잘 살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