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비움

나의 인생, 비움의 색깔은?

by 노을책갈피

나는 언제부터 내 머릿속에 정리에 대한 개념이 들어섰던 것일까?

나의 파릇파릇했던 10대 시절.

정리와 비움을 색깔로 비유해 보자면 낙천적이고 창조성을 표현하는 노란색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렴풋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로 나의 정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보자 한다.

우선, 학교 생활을 떠올려보자면 교과서, 학용품들이 들어있던 책가방은 수시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야무지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나여서인지 나의 사물함은 항상 가지런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었던 것 같고, 그에 대해 담임 선생님도 칭찬해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 칭찬에 대한 영향이었을까? 가정에서도 나만의 정리 개념이 있었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론 우리 가족이 살게 되었던 첫 아파트가 정리 개념의 시초였다.

4층 꼭대기 층에 살았고, 그때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항상 계단을 올라야만 했다.

그때는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이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항상 씩씩하게 오르락내리락했던 것 같다.

집 문을 열면 우리 가족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그전까지는 주택가에 살았기 때문에 아파트처럼 안락한 느낌은 좀 덜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친정에 다녀오면서 우리 가족의 첫 아파트 거실에서 남동생과 같이 찍힌 우리의 남매사진을 보니 그 공간의 추억이 다시 떠오르게 됐다. 그 당시 나는 9살쯤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도 첫 아파트라 설레고 좋았던 모양이다.

사진마다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비록 2층 침대를 놓고 동생과 함께 쓰는 방이었지만, 나의 방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좋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4~5학년쯤엔 우리의 책장이 생겼고, 각자의 책상도 생겼다.

그 당시 맞벌이로 항상 바쁘셨던 부모님은 낮에는 거의 집을 비우셨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홀로 '기다랗게 세워진 책장을 가로로 눕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고, 어떤 초인적인 힘으로 그 책장을 홀로 옮긴 지는 모르겠지만, 변화를 주고 싶었던 간절한 바람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가로로 눕혀진 책장에 종류 별로 책을 가지런히 꽂고, 내가 좋아하는 예쁜 인형들과 화분도 차례대로 제 자리를 찾게 해 주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우리 방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셨던 것 같다.

"이 무거운 책장을 누가 이렇게 옮긴 거니?" 엄마의 물음에 나는 자신 있게 "당연히 내가 했지. 바꿔보고 싶었어. 이러니 우리 방 더 이쁘지 않아?"라고 말하며 스스로 어깨가 으쓱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쁘신 부모님 덕분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설거지도 스스로 도와드렸고, 단순한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공간의 배치를 달리하여 환경을 바꾸면서 물건 정리를 통해 장녀인 내가 작게나마 기쁨이 되고 싶었던 욕심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의 10대는 공간의 변화와 정리를 통해 나만의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싶었던 호기심 가득한 아이였다.


나의 20대. 정리와 비움을 색깔로 비유해 보자면 검은색과 초록색이다.

검은색을 택한 이유는 정리와 비움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어두운 색깔로 정했다.

반면 초록색은 성장과 자유를 의미한다. 나만의 커리어와 일로써 얻는 성취감은 차근차근 쌓아왔기 때문에 성장의 의미이자, 정리의 개념에서만큼은 자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나의 20살. 꿈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방황하기를 1년.

그 사이 엄마는 전업주부의 삶으로 돌아왔고, 정리와 비움은 자연스럽게 오롯이 엄마의 몫으로 연결되었다. 나는 새로운 대학생활을 적응하느라, 또 취업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사인 없이 바빴다.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집안 정리는 커녕, 내 방으로 직행해 고단한 몸을 휴식하기 바빴다.

그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정리나 비움에 대한 개념과는 더 동떨어진 현실을 살고 있었다.

직장 상사의 눈치도 봐야 하지, 동기선생님들과 하나부터 열까지 일을 배워나가야 하지, 그 모든 것이 낯선 환경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던져 하루하루 적응해 내기 바빴다.


그러던 나는 20대 후반에 결혼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이루면서 20대 후반전에 들어섰다.

배우자와 제2의 인생을 설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정리와 비움이라는 개념에 오랜 시간 손을 놓고 살아와서인지 정리와 비움.

그 시작과 처음이 늘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우리 아이들이 연이어 태어났고, 아이들의 살림과 우리 부부의 살림은 날로 늘어나게 되면서, 우리의 정리와 비움은 더 절실해지기는 했지만 꾸준한 실천은 행하지 못했다.

나의 20대는 사회생활에 지쳐, 출산과 육아에 지쳐, 그런 모든 삶에 지쳐 정리와 비움과는 무한 거리 두기를 하였다.


나의 과거이자 현재형인 30대. 현재 나의 상황에서 정리와 비움을 색깔로 비유해 보자면 하얀색이다.

하얀색은 처음부터 새로운 것을 시작할 의지를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고, 정리와 비움을 통해 치유와 평온함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으로 정했다.

나의 30대 초반. 아이들이 좀 크면서 모두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고,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이대로는 짐을 도저히 쌓아둘 수가 없어서 나 스스로 정리와 비움을 실천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정리수납전문가과정 2급 과정을 들어보고, 정리에 관한 프로그램도 꼼꼼히 보기도 했지만, 비움과 정리와 담쌓아왔던 세월 앞에서 정리란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와도 같았다.

그러면서 '이사'라는 큰 계기가 생겨서 비로소 올해부터 비움을 계획적으로 실천 중인 것이다.

필요 없는 물건은 누군가에게 나눔을 하기도 하고, 중고거래를 통해 비우기를 반복하고 있는 과정이다.


최근까지도 단순히 비움을 물건 정리로만 인식했다면, 더 나아가 마음속 생각 비우기, 인간 관계도 가치로운 비움이 있어야 함을 알았다. 그럼으로써 더 나은 채움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비움을 나의 인생과 결부시켜 내 삶의 목표가 된 지금.

나의 40~80대의 비움은 어떤 색깔로 표현할 수 있게 될까?

비움을 통한 현재의 삶과, 비움을 목표로 둔 미래의 나의 성장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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