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의 중요성
(당신의 내일이 행복하기를)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다. 어렸을 때는 그 짧은 문장 안에 그토록 심오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이는 정말 중요했다.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의 내면은 항상 건강하다. 내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부족한 점을 과감히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물론, 개성을 버리라는 소리는 아니다. 적어도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파악을 하고 있는 편이 좋다. 그렇게 자기 객관화가 빠를수록 성장하는 데는 더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나씩 빈틈을 채워나가다 보면 좀 더 완벽한 내가 완성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날이 성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는 그냥 생긴 대로 살 거야.'라고 마음먹었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기도 하지만, 인격에도 등급이 있다. 우리가 성적에도 점수와 등수를 매기듯, 인성에도 등수를 매길 수 있었다면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슬픈 현실은 내 인성의 등수를 나만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애진작에 그들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난 인성점수 따윈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살 거야'라는 마인드가 아니라면, 신중하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 내 인성 점수만 바닥이고, 다른 친구들은 점점 성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흔이 넘었을 때, 우연한 계기로 십 년 만에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그런데 내가 한때 좋아했던 그 친구는 예전의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친구들은 벌써 이만큼의 정신적 성숙을 거쳐왔는데, 그 친구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자존심이 강했고, 사람들과 타협할 줄 몰랐다.
반면 다른 친구는 그동안 인성적으로 끊임없이 도를 닦은 티가 났다. 더 성숙해졌고 건강한 어른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때 나는 느꼈다. 사람이 나 자신을 돌아보고 객관화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옛 어른들 말씀에 '마음은 항상 청춘'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늙지 않는다는 그 말은 어찌 보면 독이 될 수도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면의 성숙도까지 함께 챙겨가는 게 맞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홀로 너무 외로운 인생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에.
이십 대 때까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마냥 밝기만 한 철없는 아가씨였다. 그런데 요즘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이십 대부터 자기 계발을 비롯해서, 꾸준한 자아성찰을 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들은 공통점은 부모로부터의 빠른 독립이었다.
따뜻한 둥지 안에서는 무언가를 위해 간절해지기 힘들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도 참 중요한 일 같다. 이는 비단 돈의 문제만이 아니다. 자아를 찾아가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십 대는 숱하게 방황도 해보고, 도전도 해보면서 그렇게 조금은 무모해도 되는 시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제까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어떤 사람으로 살아내고 있느냐... 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