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도대체 남자들에게 '밥'이란 어떤 의미 일까에 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랑으로 인해서 그 의문이 시작되었지만 결국엔 아들을 통해서 내 물음표의 종지부를 찍은 것 같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집 삼식이들만 이런 건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이 대부분 다 이런 건지. 만약 우리 집 남자들만 이런 거라면 내가 심히 버릇을 잘 못 들인 것임을 인정하기 위해서.
바야흐로 연애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연애를 막 시작한 삼 개월 차, 삼식이는 딱히 일찍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무조건 2년 이상은 연애를 해봐야 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고세뇌시키던 우리 친정엄마가, 집에 데려온 삼식이를 보자마자 대뜸 진수성찬을 차려댔고, 그가 신나게 먹기 시작하는데....
" 그래서 자네는 우리 딸이랑 결혼할 생각은 있는가?"
다짜고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삼식이는,
"네 그럼요"
그 자리에서 실언을 해버렸고, 혼기 찬 딸을 드디어 치워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친정엄마는 요때다 싶어서 냉큼,
" 그래서 언제쯤 상견례 날짜를 잡을 생각인가? 빨리 진행했으면 좋겠는데."
더 당황한 삼식이는 얼떨결에,
" 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맛있는 음식 앞에 홀려버린 삼식이는 얼결에 상견례 날짜를 잡았고,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우리 엄마 요리솜씨에 홀렸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장모님 음식이라면 온몸이 녹아내린다. (장모님 고지능ㅋㅋ)
그리고 또 한 번, 그가 내게 프러포즈를 하게 되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내가 처음으로 그에게 밥을 지어줬을 때인 것 같다. 라섹수술을 해서 눈이 팅팅 부은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잘하지도 못하는 스파게티를 직접 만들어주었다.
아마도 그날 반했지 싶다. 열정적으로 요리해 주는 모습에 감탄하던 그의모습을잊을 수가 없다. (내가 잠시 미쳤었지.)
" 딱 한가지 부탁이 있어."
"뭔데?"
"다른건 다 필요없고, 끼니만 잘 챙겨줘"
" 그래 좋아. 나도 부탁이 있어"
"얼마든지"
"내가 사과하면 무조건 받아주는거야"
"물론."
우리는 각자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기로 하고, 흔쾌히 결혼반지를 나누어 끼웠다.
처음엔 나도 설마설마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맞지 싶다. 나는 내가 예뻐서 신랑이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엄청난 착각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결혼 결심은 그날의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정성스럽게 그를 챙겨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부부싸움의 80프로 이상은 거의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나는 것 같다. 믿기 힘들겠지만 현실이다.
오, 나도 이게 사실이 아니었으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진실이다. 지금부터 잠시 그의 언어를 해석해 보겠다.
" 네가 요즘 나를 언제 챙겼어?"
( 너 요즘 나 밥 제때 안 줬지?)
" 내가 뭐 큰 거 바라는 게 아니잖아."
( 삼시 세끼만 잘 챙겨달라고)
" 생활비에서 내 밥값은 뺄게."
( 나 요즘 배민 많이 시켜 먹었어.)
" 이럴 거면 내가 왜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해?"
( 밥 안 줄 거면 돈 안 벌어올 거야.)
"난 널 위해 모든걸 다했어."
(너는 밥하나도 제대로 못해주니?)
화난 신랑은,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밥을 다시 차려주면 바로 풀린다. 이유인즉슨,
다시 저 위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프로포즈때 서로의 약속을, 다시금 상기 시켜보길 바란다.
오, 주여. 이럴 거면 차라리 요리사를 만나게 하시지 왜 저를 선택하게 하셨나이까.
그런데 뭐 가끔 보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큰 아들 키우는 기분처럼 참 단순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리고 장점도 있다. 밥만 잘 주면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푸짐하게 한정식을 한 상 차려내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지고 동공이 커지는 게 내 눈에도 보이니 말이다. 그의 변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 신비롭다. 사람이 이렇게 금방 기분이 변할 수가 있구나.
그렇게 나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그가 좋아하니까 단지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에 꾸역꾸역 밥을 차려주던 어느 날, 내가 출판으로 인해 바빠서 아들에게 배민만 주야장천 시켜주다가 정말 딱 2주 만에 한정식을 차려내던 그날. 아들 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