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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Aug 09. 2024

가을에는 나를 더 사랑하게 하소서

내일은 더 행복한 엄마가 될래요

요즘 아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서 기분 좋게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기타 메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볼에 뽀뽀를 쪽 했더니 갑자기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씩씩거리면서 지하 출구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부랴부랴 아들을 따라가며

 "아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그래?"

 "여자애들 있는데 그 앞에서 뽀뽀하면 어떡해!"


아뿔싸. 아들은 진짜로 화나있었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우리 원래 집에서도 뽀뽀 자주 하잖아!"

 "앞으로 밖에 나오면 나한테 스킨십 금지야!"


기어코 올 것이 왔구나. 아이는 초등 고학년을 달리고 있었고 사춘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이였다. 이제는 부끄러움도 알고 타인의 시선을 제법이나 의식할 시기였던 것이다. 어느 아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커가고 있었다. 엄마 눈에는 여전히 아가 같은데 언제 이렇게 큰 건지. 


몇 년 전, 제법 쌀쌀한 가을날,  어떤 다정한 모자가 대치 사거리를 지나가는데 엄마가 자신의 목에 두르고 있던 꽃무늬 스카프를 아이의 목에 둘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학생쯤 되는 아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스카프를 뿌리치고 괜찮다며 서둘러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엄마도 참 센스 없다며 사춘기 아들한테 꽃무늬 스카프가 웬 말이냐고 나도 같이 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내 모습이 그 엄마와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그제야 그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자식이 아무리 성장을 해도 엄마들 눈에는 여전히 아이 같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하튼 그제야 나는 내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랑이 많은 엄마는 못내 서운해지기 시작했다. 신혼 때는 신랑한테 아낌없이 퍼주던 사랑을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이에게 쏟아붓기 시작했고, 그게 유일한 삶의 낙이었거늘.  이제 나는 누구에게 사랑 표현을 해야 하나.

신랑이랑은 이미 오누이 된 지 오래고, 이래서 집안에 슬슬 댕댕이들을 들이기 시작하나 보다.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또 다른 자아를 찾아서 꿈틀대는 과도기인 듯 싶다.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면 각자 자신들의 더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되겠지.


십여 년을 한결같이 아이만을 바라보고 마치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인 양 달려왔다. 그런데 진짜 멋진 엄마는 낄끼빠빠를 잘해야 하는 것 같다. 이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조용히 바라봐주고 응원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할 때인 듯싶다.


그렇게 요즘 나는 또 다른 나를 찾아가고 있다. 아이를 키워내면서 또 하나의 나를 발견했고 그 시간들을 기반으로 나 역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내 성장의 원동력이었고 나를 응원해 주는 또 하나의 가족이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오늘도 우리는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묻곤 한다.

    " 너는 꿈이 뭐야? 커서 뭐가 될래?"  

그런 질문을 숱하게 해대면서 나는 양심에 뜨끔했다.

  '그러는 너는 뭐가 됐는데?'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됐길래.'


하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엄마도 꿈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너 역시 꿈을 꼭 이루라고.


이제는 한걸음 한 걸음씩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신랑에게도 아들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오롯이 내 삶의 중심을 굳건하게 잡아야겠다.


그동안 너무도 오랜 시간을 마치 가시고기 엄마처럼 살아와서 여기저기 상처 나고 헐뜯긴 마음을 차마 보듬어 줄 여력이 없었기에.


내 사랑을 무한대로 표현해 줄 수 있는 아이는 저만큼이나 커버렸지만, 그 대신 그 사랑의 에너지를 나 자신에게로 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를 한번 더 돌아봐주고, 어루만져주고, 내 꿈에 날개를 달아 줘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어제보다 더 행복한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벌써, 8월도 성큼 지나가고, 여름의 끝자락에 다가와 있었다.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외치는 어느 시인의 한 구절처럼, 올 가을엔 나를 더 사랑해 줘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 대신, 집에서는 뽀뽀해도 괜찮아."

미안했는지,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들이 선심 쓰듯 한마디 했다.

'그래, 집에서라도 뽀뽀할 있게 해 줘서 고마워. 그게 어디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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