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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Aug 16. 2024

저랑 인내심 내기 하실래요?

내일은 더 행복한 엄마가 될래요




나는 오랫동안 행복에 대해서 고민해 왔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조금 더 행복이라는 단어에 근접하는 것일까? 딱히 정의를 내리고 있지 못하던 어느 날,  어느 책의 한 구절에서 행복이란, '마음에 어떤 물결도 없는 잔잔한 상태'라는 글을 보고 비로소 깨달았다. 행복은 엄청나게 대단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많은 시간을 그저 살아내기 위해 소비해 버린다. 대부분의 나날들을 부나방처럼 직진하며  하루하루 내 남은 생을 채워나간다. 그렇다. 어쩌면 채워나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커다란 여백의 도화지를 다 채워나가면 그 끝은 무엇일까. 다시 새로운 인생의 도화지가 펼쳐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오늘의 삶을 등한시한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간들의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남들에게 질세라 꾸역꾸역 자신의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맹목적으로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전력질주 하는 것이 아닐까.


신혼 때는 원룸에서만 살아도 행복한 부부였다. 그러던 우리 부부도 아이를 낳고 나니 서울에 내 집이 갖고 싶었고, 더 넓은 평수에서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그 목표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숱한 갈등과 감정소모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버려졌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게만 느껴진다. 분명, 처음 시작에 비하면 우리는 지금 많이 이루어 놓은 것이 맞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란 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나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관성에 의해 달리게 되어있는 것 같다. 자아성찰의 중요성을 또 한 번 깨닫는 요즘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점점 더 행복이라는 가치를 지양한 채 물질적 욕망만을 쫓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스크루지의 끝이 바로 저런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경상도 B형의 T형 공대 남자와 살고 있지만, 이런 내가 15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내면서 살아왔던 건 바로 나의 행복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버텨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나게 인내심이 있는 여자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4종 세트임을 밝히면 종종 친구들은 내가 너무 불쌍하다며 절대 방생하지 말라면서... 소주를 사주기도 한다. 물론 저 성향의 남자들이 다 안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아주 강적을 만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더 복병은 착한 남자라는 것이다. 착한데 저걸 다 갖추고 있으니, 그게 더 사람 미치는 거다.


처음에는 '내가 뭘 잘못해서 신랑이 저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래서 급기야 어느 날부턴 가는 부부관계나 연애학개론 같은 강의까지 보기 시작했다. 남들은 결혼 전에 탐독해서 끝내버렸다는데, 나는 그 공부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뒤늦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여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래서 청개구리 신랑을 변화시켜 보자 다짐하면서 이론 강의대로 실천해 보았으나 내 신랑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나날이 더 왕자님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댁에 가서 깨달았다. 절대 내 잘못이 아니었음을.

아버님은 '왕'이셨고, 어머님은 지고지순 한 현모양처였다. 어머님도 이제는 그냥 체념하고 포기하신 것 같았다. '아 이건 유전이구나. 불변이야.'


그날 이후로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남자를 다룰 줄 몰라서가 아니라 원래 생겨먹은 게 저러하니 누구도 다룰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신랑에게 헌신하기 위한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던 어느 날, 오히려 나의 그러한 '거리두기'로 인해 신랑과의 관계가 이전보다 편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말주변 없는 청개구리 신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그제야 보였다. 신랑의 진심들이. 악착같이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오고,  아무리 GR을 해도 한결같이 내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이 그의 사랑 방식이었음을.


그리고  느꼈다. 오히려 잘해보려고 안달내고 애쓰던 내 마음들이 우리 사이를 힘들게 했던 것이었음을. 소유하려 할수록 힘들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일상을 존중해 주고 깊게 관여하지 않으니 오히려 행복의 정의에 근접한 마음이 되어갔다.  


내가 노력해서 변화되는 일이라면 열심히 애쓰는 게 맞을 것이나, 그렇지 않은 상황들이라면 자신을 너무 자책하거나 혹사시키지 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모든 일들은 순리에 의해 흘러가게 되어있다. 아무리 잡으려고 발버둥 치고 애써봤자, 결국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내 인생의 도화지는 지금 어디까지 채워졌을까. 그리고 남은 여백은 얼마만큼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처음의 밑그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그런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저 나는 소소하게 주어진 나의 일상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 가을의 문턱에서 미소천사 J-


(이 작품은 출판 준비중으로 4화로 연재 중단합니다. 다음 작품으로 선보이겠습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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