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뇌 여자가 좌뇌 남자를 만났을 때
내일은 더 행복한 엄마가 될래요
나는 우뇌형 문과. 통찰력과 직관력이 발달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반면, 신랑은 좌뇌형 공대생. 지나치게 이성적이며 현실적이다.
자고로 반대가 끌린다고 했던가. 그래서 우리는 마치 자석처럼 서로의 매력을 바로 알아본 듯하다. 나의 밝음과 신랑의 이성적인 성향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십 대 때 내가 남자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제이는 밝아서 좋아."였다. 그리고 항상 차분하고 말주변 없는 남자들만 그렇게도 자석처럼 딱딱 내게로 붙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단점을 채워주기에는 완벽한 커플이 맞지만, 연애할 때부터 내가 느꼈던 그 심리적 공허함은 여전히 채워지지 못한 채 적잖이 삐그덕거리면서 살고 있다.
바야흐로 결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우리는 이제 막 돌 지난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미술관으로 산책을 갔다. 여유롭게 미술관을 관람하던 중, 내가 한 그림 앞에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림은 한 할머니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차를 타고 오는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할머니 모습은 아주 크게 묘사되어 있었고, 반면 차 안의 자식들 모습은 아주 작게 표현되어 있었다. 바로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의 크고 애틋한 마음을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 자식을 기다리는 간절한 기다림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했네."
내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경상도 공대의 투박하고 우렁찬, 그것도 모자라 단호하기까지 한 신랑 목소리.
" 빈익빈 부익부!!"
헉. 주변 사람들이 키득 거렸고, 나는 정말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이게 어떻게 빈익빈 부익부야? 자식을 기다리는 간절한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거잖아."
" 야!! 할머니 옷이 엄청 낡았고, 자식들은 좋은 차에 좋은 옷 입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렇게 좌뇌형 공대 신랑은 지극히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을 중요시하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그날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나서야 나는 삼식이와의 깊은 대화는 애초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아버렸던 것 같다.
나는 완벽한 솔메이트를 원했지만, 신랑은 그런 남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적잖이 속상했던 것 같다. 말주변이 지나치게 없는 신랑이기에 더더욱 우리 부부는 쓸데없는 얘기는 일절 사절. 딱 필요한 대화만 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정한 부부들을 보면 매우 부럽다. 신은 나에게 솔메이트를 주지 않으셨기에. 물론 연애할 때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2프로 부족했던 그 무엇이 지금은 30프로가 되었을 뿐...ㅋㅋ
삼식이와의 연애 초창기. 그 시절에는 그에게 제법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에 나름 현모양처임을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옛날 시골에서는 들에 암소와 수소를 둘 다 풀어놨대요. 그런데 일은 보통 수소만 하고 암소는 그런 수소를 바라만 보고 있다네요. 그리고 수소는 암소의 그 사랑의 기운을 받아서 평소보다 두세 배의 시너지로 혼자 일을 열심히 했다네요. 저도 그렇게 남자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이 정도면 내가 어떤 여자로 살고 싶은지 잘 어필이 되었겠지? 라며 나름 뿌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갑자기 삼식이 놀란 눈을 똥그랗게 뜨며,
"암소 못됐네? 왜 같이 일 안 하고 놀아? 수소 불쌍한데?"
완벽한 좌뇌의 한마디.
이 말의 속뜻은 나만 힘들게 일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나는 결혼하고 나서 일하기 싫어하는 여자로 전락해 버렸고, 내 말의 의미는 그렇게 백 프로 왜곡된 채 그에게 전달되어 버렸다.
아... 그때 진작에 눈치를 채긴 했지만, 살다 보니 그의 뇌 상태는 예상 보다 더 심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팔자려니 하며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신혼 때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보러 갔더니, 점쟁이 왈,
" 솔직히 공주 같은 너도 딱히 맞는 남자는 없어! 걔가 최선이야!"
띠용. 갑자기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솔직히 그때까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해봤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를 맞춰줄 남자도 흔하지 않을 것 같긴 했다.
그렇게 자기 객관화가 부족했던 나는, 그날 이후로는 내 주제파악을 하고 삼식이와 서로 보조를 맞춰가며 아웅다웅 잘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완벽한 커플이 몇이나 있을까. 그렇게 자기 객관화의 중요성을, 최근 들어 더 많이 느끼면서 성장하는 것 같다.
' 너 자신을 알라!' 혹시나 상대방이 못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내 모습도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그 역시 오늘도, 참기 힘든 당신을 묵묵히 받아주고 있을지 모른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자. 상대방도 그저 온몸으로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내 장미가 소중한 건 함께 보냈던 시간들 때문이야.'
어린 왕자의 명대사처럼, 이제껏 서로의 시간들을 함께 나누었고 보듬어왔음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비록 성향은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추억을 쌓고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버텨 낸 우리들이기에, 내일은 더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기를.
그렇게 서로에게 다정한, 더 따스한 내일이 될 수 있기를. 당신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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