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보내는 신호
새벽 3시 20분, 알림 시계가 울린다!
오늘은 너무 오랜만에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날이다.
등산을 좋아해 2년 이상 꾸준히 매주 산에 갔었는데
올해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산에 잘 가지 못했다.
집 앞 가까운 곳에서 러닝을 하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고, 차가 없는 뚜벅이가 된 후로는 산에 가는 일이 뜸해졌다.
이날은 등산모임에서 내장산에 가시는 분이 있어 추석연휴인 데다 이때다 싶어 얼른 참을 눌렀다.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집 가까이까지 데리러 오신다고 해 주시니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배려를 해 주시는데 고마움에 넙죽 승낙을 했다
산에 가기 전날은 보통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잠을 설치는 데 역시나 두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이라 차편이 없는 나를 배려해 데리러 오시는 데 부랴부랴
준비를 하려고 보니 카톡에 벌써 도착하셨다는 메시지가 와 있다.
“이런, 벌써”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시계를 보니 3시 50분!
집 코앞 한국전력까지 늦지 않게 5분 이내로 있는 힘껏 뛰어갔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고 앞자리에 짐이 있어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까지 와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서 있는 힘껏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등산방에 들어가 있기는 한데 활동을 못해 방에서 쫓겨나기 일주일 전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고 두 달에 한 번은 참석을 해야 되는 규칙이 있는 것 등 방에서 알아야 할 필수규칙을 찬찬히 알려 주신다.
25년까지 국립공원 22개 산에서 스탬프를 찍으면 금메달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금이 10월이라 3개월 안에 남아 있는 3개 산의 스탬프를 찍고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그 3개 산 중 오늘 드디어 내장산으로 출발 하는 날이라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런 기회를 주시다니! 이란 말이 마음으로부터 새어 나온다.
사실은 어느 정도 포기를 해야 하나 할 때, 운이 따라 주었는지 같이 가시는 분도 좋고
자주 만난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대화가 잘 되었다.
이 분도 국립공원 스탬프를 찍고 계셨는데 25년 5월에 스탬프 수첩을 받아 22개 산을 정신없이 다니시는 중이셨다.
도장이 무엇이 중요한 가 싶겠지만 이번 년도를 마지막으로 이제 등산수첩이 나오지 않아 그간 해 오던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은 게
제일 큰 목적이고 등산인이라면 이러한 등산부심은 저도 모르게 산을 좋아하다보면 만들어지는 거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긍지같은 것이 있다.
평소 좋아하는 FM4 라디오를 들으면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와 나도 모르게 잠이 들다가 말고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자연스럽게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만나자마자 주신 커피와 비타 500, 단백질 음료를 잘 챙겨놓고 나도
가방에서 가져온 바나나와 영양갱을 조심히 같이 건네 드린다.
주고받는 간식 속에 피어나는 정이랄까.. 산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간식을 하나둘씩 잘 나누어 주시는 데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당이 떨어질까 가방 속에 초콜릿과 사탕, 포도당 등 어느 것 하나라도 살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
서로 수고하세요..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 라는 말은 오르내리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안부를 챙겨주는 당연한 인사와 같다. 산에서 느끼는 따뜻한 배려란 서서히 스미듯 느껴지는 거랄까. .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만 하는 말들이 산에서는 함께 그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
따뜻한 말과 간식을 챙겨주는 사이로 쉬이 친해진다.
산이 주는 마력이 새삼 신기하기만 하다.
긴 운전으로 힘드실까봐 옆에서 말을 걸다가,
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든다.
고개가 꺾어질 만큼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이 안쓰러웠는지 조심스레 의자를 뒤로 젖혀주셨는데 정신 차려보니 중간지점 휴게소에 와 있다.
제주산 과자를 구매하신 걸 챙겨와 휴게소에서 먹으라고 건네주시고, 과자가 달고 맛도 있어 허기진 배도 채우고 이제야 정신이 드는 것만 같다.
가는 내내 오는 비로 차창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좋게 들리면서도 내장산에 비가 오면 안 될 텐데라는 걱정이 함께 든다.
아직 단풍이 들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인 10월 5일이라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가는 내내 아직 초록초록한 나뭇잎들이
비를 맞아 생기를 가득 품고 있어 눈이 절로 그쪽으로 향한다.
도착한 시각은 8시 50분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는데….. 비가 갑자기 더 세차게 쏟아진다.
원래 목적인 국립공원 스탬프를 먼저 찍고 오늘 일정을 정하기로 하고 탐방지원센터로 향했다.
드디어 두둥 도장을 쾅 찍고 오늘 날짜를 기입하고 우중산행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트래킹 코스로 코스를 수정했다.
20대 후반에 내장산 밑에서 텐트를 친 기억이 있는데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기억의 망각으로 파악이 어렵고
트래킹 코스로 걸어가다 보이는 계곡물과 세찬 물소리로 눈호강 귀호강을 같이 하니, 비가 온 것을 더 행운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빨간 우산을 든 사진이라 찍은 순간이 더 새빨갛게 사진에 담기고 길가의 초록색 나무도 진한 초록으로 배경을 만들어줘서 내 모습도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다.
걸어가다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싶어 작은 다리 밑으로 내려가 흐르는 물에 손을 씻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물의 촉감만으로 계절이 10월 초인 가을인 것이 체감이 된다.
시원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중간의 촉감, 가을은 그래서 가장 좋은 계절이라 하는 건가…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여름을 지나 너무 추워 눈이 오는 길을 가야 하는 등산객들을 생각해 중간에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을 만들었나 싶다.
가을을 느끼기엔 이른 시기이지만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는 초록잎이 주황빛을 머금은 것이 보인다. 한 달 뒤에 어느새 빨간 잎으로 변하는 마술을 부리기 전 준비태세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눈앞에 같이 걸어가는 건 사람만이 아니라 작은 곤충들과 나비들도 함께인 듯하다.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는 작은 몸으로 날개를 옆으로 빠르게 젖는 나비를 가만히 보다 풀 위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내장산의 나비는 사람이 무섭지 않은지… 어느새 내 시선을 느끼고도 가만히 바라보게 두는 여유를 지내고 있다.
한참 들여다보다 비가 온 날이라 계곡물이 시원하게 하얀 거품을 품고 아래로 흘러가는 물줄기의 흐름을 마냥 바라본다.
산에 오는 진짜 이유를 오랜만에 맛보는 것 같다.
산과 함께 흐르는 물이 주는 쉼의 시간을 만끽하는 느낌. . 산은 바다와 다른 맛으로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무게감 있는 친구의 친구랄까
올라가는 길 곳곳에 바위와 작은 돌, 나무들은 이끼로 옷을 한 개씩 껴 입고 있다.
온몸으로 이끼를 입고 있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자기 몸에 다른 이와 함께하는 것을 허락하는 이들은 참 욕심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더 알고 있기나 한 듯이….
추석연휴에 혼자 힐링할 수 있어 평온하고 좋았지만, 가족들과 함께 다 같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고 제사를 지내고 어릴 때 한복을 입고 웃고 떠들 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어느새 서울로 자리를 옮기고 하루하루 일과 취미 생활로 정신없이 지내다 혼자서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더 바래오며 지내왔다.
급하게 벙에 참여해 모르는 사람과 차를 타고 국립공원에 스탬프를 찍으러 온 것처럼 지금은 서로의 편의와 목적에 따라 모임을 하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이 평범하게 느껴지는 관계가 된 지 오래다.
같이 온 일행과 웃으며 정신없이 걷다가, 조용히 산에 집중하다 보면 산은 이미 함께하는 즐거움을 아는 것 같아 바라보고 아무말 없이 걸어도 마음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내장산 트래킹 코스는 부처님이 계신 곳까지 살살 올라갔다 내려오면 1시간 정도 소요가 되는데, 큰 불상을 만나 매번 드리는 소원을 빌고 우산을 쓰고 천천히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 옆에는 내장사 절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크지는 않지만 자그마한 공간에 있을 건 다 갖추고 있는 호적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대웅전이 이전에 소실되었는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고 그 옆에 자리하고 계신 불상에 인사를 드리고 마음속에 소망하고 있는 바를 말씀드렸다.
원하고 소망하는 간절한 무언가는 마음에 한 자리를 항상 차지하고 있어 이렇게 내장산까지 따라와 그 앞에 간절하게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산에 계속 오게 되는 이유도 함께하는 이들과의 소소한 이야기도 좋지만,
산이 주는 말없는 함께함에 쉬이 마음을 오픈하게 되는 것 때문이라….
반겨주는 작은 곤충과 나비, 길 가운데 들리는 맑은 물소리가 음악이 되고, 내장산을 이루고 있는 나무와 바위와 풀숲에 함께하는 이끼들까지 마치 하나의 몸처럼 크게 크게 함께하게 하는 산이라
조급한 마음도 애쓰는 마음도 내려놓고 같이하고 싶어진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먹는 산채비빔밥과 서비스로 주시는 도토리묵에 맥주 한잔을 걸치고
비와 함께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라도 품어주는 산이 있어 더 가까이 이곳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땀 흘리며 올라가는 산행도 좋지만, 비 오는 날 산과 함께하는 트래킹도 모두 산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보내는 신호인 것 처럼..
모든 것이 다감하게 느껴지는 자연과의 하루로 …. 가슴속에 기록해 두고 또 오게 되는 날을 기다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