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야만 좋은 여행이 아니다_덕수궁 그곳만의 숨결

광화문 뒷문 카페 2층 창문 너머로

by 문영란

여정?을 마치고 광화문 2층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여정이라는 말과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체력을 모두 소진해서 살기 위해 밤음료와 스콘을 시켜 허겁지겁 먹으며 정신을 차려 본다.

너무 오래 걷고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을 보니 3시간 이상은 지나 있다.

2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은 지나가는 외국 가족과, 연인들, 한복을 입은 파랑저고리와 빨간 저고리에 초록 치마를 입은 아이들, 건장한 외국 사람들.. 무수히 많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이고 어김없이 눈은 이곳저곳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걷느라 바빠 보인다.

여기는 서울의 유명 관광지인 광화문 뒷문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전에는 이 문을 통과하기 힘들도록 크고 웅장하게 지어 놓은 곳일텐데 . . .하는 생각이 겹쳐 든다.


나도 여기까지 걸어올지는 몰랐지만, 카페 자리까지 명당자리에 앉고 보니 힘은 들었지만 뭔가 잘 온 듯하다.


추석이 시작되는 연휴 10월 3일 제천절날,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 서울 구경을 제대로 한 날이 있었나 싶어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성동구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부산에서 올라와 1년 동안 적응하기에도 바빠 마음먹고 구경하기도 어려웠고, 왠지 회사하고 가까운 곳은 음…출근하는 느낌이 들어 일부러 안 한 것도 한 몫한 것 같다.

. . .

금번 추석 연휴는 10일 이상 되는 황금연휴로 이때다 싶어 관광객 모멘트로 서울 탐방을 해 보기로 결정했다.

가고 싶은 곳을 물색하다 30대 초반 비가 살짝 내린 덕수궁의 어느 하루가 생각났다. 돌담길 앞에 첼로 연주를 하는 분을 만나 1인 독주회를 감상하고

길거리에 지나가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전세내고 가만히 앉아 있던 그날의 기억이 . .

거리만이 아니라 덕수궁 안은 현대의 공간도 함께 자리하고 있어 평소 좋아하는 그림을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는데 그땐 서울을 정신없이 구경하다 몸이 이미 지친 상태라 그곳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 한 아쉬움이 있었다.


지금은 둘이 아닌 혼자로 가만히 그 공간에 집중할 수 있고, 시간이 많이 지난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다시 한번 그 자리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폰도 잠시 보지 않는 날로 나에게 약속을 하고, 좋아하는 음악과 그곳의 정감을 온전히 느껴보기로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는데, 집에서 5200번 버스를 타고 신도림역에서 시청역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덕수궁이 있었다.


이처럼 가까운 곳에 덕수궁이 있었다니? 서울의 한가운데라는 생각만으로 마음의 거리가 저만치 있었는데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자리하고 있다니….

신도림에서 내리려다 말고. . .음음…. 내가 어떤 카드로 버스를 탔지….. 검은색, 분홍색 카드를 들여다보다 검은색을 터치하는 순간 다시 버스요금이 결재되었습니다는 음성이 들린다. 아차차차…. 이런…. 내리자마자 “이 바보”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지하철을 탈 때에도 다시 요금을 내고 머리가 나쁘면 카드가 고생한다는 신조어를 내가 먼저 만들어야 하는 건가. . . .

평소에도 좋은 말로 어떤 것에 집중하면 잡다한 다른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특히 사람 이름 외우는 것이 제일 어렵고 다음이 무심결에 하는 동작들인데, 오늘도 덜렁대는 성격이 어디 가지 않고 덕수궁까지 따라붙어 왔다.


시청역에서 내려 3분도 안되어, 덕수궁 돌담길이 나를 먼저 발견하고 반겨 맞아준다.

오랜만의 만남이라도 미소 짓게 하는 공간의 힘 때문인지 거리거리가 정겹게 느껴지고 가만히 거닐면서 느끼는 안온함을… 벽하나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


나한테는 덕수궁이 그런 장소이듯.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느낌으로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날인지 많은 인파로 뭔가 정신없는덕수궁 같다..


이전에 방문한 덕수궁은 호젓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여기만의 첫인상을 새겨주었는데… 오늘은 행사로 파란색 행사지붕과 현수막과 세트가 곳곳에 세워져 있어 여기만의 느낌을 지워 버리고 있었다. .

… 날을 잘못 잡은 건가… 아. .오늘 제천절이었지….. 음. . .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굶주린 배부터 달래기 위해 바로 앞 할머니 국숫집이라고 적힌 곳에 자리가 없나 기웃거려 본다.

그 모습이 사장님 눈에 들었는지 바로 자리를 안내해 주시고 3분 만에 나온 꼬막국수를 10분도 안돼 마시듯 먹고 다른 손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음미하며 먹기에는 사람들 간의 거리가 너무 좁고 마음도 허기진 배로 여유를 부리기 어려운 5평남짓 식당이라

국수가 입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됐지하며 속으로 만족을 급히 하고 관광길로 접어들었다.


식당을 나오자 보이는 덕수궁 대한문은 이곳을 지키는 두 분이 파란 복장을 단정히 하고 서 계셨고 추석연휴라 입장료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 그분들에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나오는 걸 참고 사진을 찍으며 인사말을 대신했다.

밖은 많은 인파와 행사로 정신없이 떠들고 있고 “여기가 어디야” 하는 타지 사람의 입버릇이 입으로 새어나오며 밖을 등지고 안으로 들어간다.


대한문의 입구로 들어온 세상은 몇 걸음 걷자마자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로 발걸음을 급히 끌어당기는 마력을 지닌 듯하다.


올 때 챙겨 온 우산이 제 값을 하듯 갑자기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여기 잘 왔다고 반가주는 듯, 마음이 입구로 들어서자 다시 평온해진다.


이제는 일상의 현실은 잠시 잊어버리고 보물 같은 문화재를 눈과 마음에 담을 시간이다.

첫 번째로 발걸음이 이끈 곳은 함녕전이라는 이름의 안방인 듯 생긴 자그마한 방이 있는 곳으로 앉기 불편해 보이는 금색 의자에 궁궐의 색채를 지닌 산과 폭포수를 담고 있는 병풍이 뒤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여기 앉아 계시던 분은 저 의자에 앉아 하루하루 어떤 생각을 하며 보내셨을까 불편해 보이는데… 뭔가 격식을 갖추고 있어야 할 자리인 만큼 본연의 모습을 어느 누군가에게 보여주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나처럼 버스비와 지하철비를 두 번 낼만큼 어리숙한 모습도 나의 일부인 것처럼 모든 일에 신경을 꼰두세울 필요가 없는 자기만의 방이 따로 있으셨을까 하는 염려 어린 상상이 들고. ..

상상의 날개를 지나 발길 닿는 곳으로 천천히 걷다 다른 쪽으로 시선이 멈춰졌다.


적힌 글자는 용덕문, 뭔가 위엄이 느껴지는 용자가 적혀있어 지나갈 때에도 조심스래 문을 통과해 본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문은 제왕의 덕을 의미하는 곳이라는 데 새겨진 글자부터 당시의 위엄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런 문과는 대조적으로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아치형의 문(유현문)은 국왕의 위엄보다 평상시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담아 둥글게 만드신 건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뭔가 덕수궁하고 맞지 않는 듯한 현대식 느낌의 문이랄까 …

이 문을 지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이 있었다는 걸 알고 너무 아쉬워 다시 가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었지만…

다 똑똑하면 재미없으니 나라도 살짝은 나사가 빠질 때도 있는 사람으로 남아도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다시 가는 걸 포기했다.


특히 이 문은 고종이 막내딸인 덕혜옹주와 여기를 오고 가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 딸에게만큼은 인자한 눈빛과 사랑스럽게 딸을 바라보기 위한 장소가 필요하듯,

문 하나에도 의미와 진심을 담아 만든 흔적들이 보인다.


문을 지나 뒷 자태을 보여주는 건물이 궁금해져 뒤로 다시 걸어가다가

뭔가 신식 건물처럼 느껴지는 석어당을 만났는데 여기는 왠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과 . .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비밀을 숨긴 건물같은 느낌이 있다. . 비가 오지만 우산을 잠시 내려놓고 각도를 다르게 해가며 사진 속에 그 느낌을 담아 보려 애써 본다.

거기에 더해 덕수궁

중간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중화전의 천장에는 왕과 신하들의 말씀이 오고 가는 공간에만 있을 법한 금빛 용 두 마리가 서로를 상대하듯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고 왕의 말씀을 떠 받들도록 그 자리 또한 7마리의 용들이 왕을 지켜며 위엄을 드러낸다.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오래된 나무들과 물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을 건너는 이야기들로 여기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순간순간 들리는 밖의 고성과 옆에 자리한 덕수궁 석조전과 현대미술관이 중화전의 배경처럼 느껴지는 건. .

몇 백 년을 건너는 수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진 이 공간이 오래된 것들만이 품어내는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오래된 것일수록 가치를 매길 수 없듯 조상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문화재이기에 . .그들의 숨결로 이곳이 빛나는 것처럼 말이다.


덕수궁을 이렇게 두고 가기 아쉬워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관에 들러 보기로 했다.

80년 광복을 기념하는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는 입장권을 보며 어떤 느낌일까 살짝 궁금증과 기대를 안고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선 입구는 “향수, 고향을 그리다”라는 문구로 시작하고 좋아하는 정지용시인과 윤동주 시인의 시가 정면에 마주한다.

많은 시구 중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라는 시구가 바로 앞에 박히듯 눈에 들어온다.

방문한 날이 추석연휴 민족대이동이 있는 큰 명절이라 다들 고향에 내려가기 위한 차편을 구하고 가족들을 만나러 가기 바쁜 데 고향이라는 말이 지금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이 시구가 아리도록 마음에 들어찼다.


이번에 나는 일정이 있어 추석에 내려가지 못하고 연휴를 보내고 있는데 80년 전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마음으로 고향을 그리워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고향이라는 말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일상이 주는 힘듦을 잊기 위해 찾게 되는 공간이면서

이전의 천진한 낭만과 생활이 있는, 가족들과 공간을 함께했다는 것만으로 따뜻한 힘을 발휘하는 곳이다.

. 그곳에서 만난 정겨운 이웃들과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와 강아지, 음매 하는 큰 소들 … 어릴 때를 생각하면 이런 배경이 눈앞을 스쳐가는데. . .

전시관에 자리한 그림들은 고향이 고향이 아닌 빼앗긴 땅으로, 이전의 정겨움을 상실한 공간이면서 사람들의 표정 또한 어딘가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힘없는 눈빛이다. 자기만의 색을 잃어버린 색감들, 보이는 것들은 모두 흙빛이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 맞이한 고향은 다시 전쟁으로 채워지고…빛을 잊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전의 푸르른 초원을 그리워하는 그림과 글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같은 하늘 안에 살아가며 느끼는 같은 민족이라는 끈끈한 이어짐은 고향이라는 단어 한 마디에.. 동네 어귀를 그려놓은 그림만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요즘은 설이나 추석 때만 찾아가는 고향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듯….. 고향을 빼앗기고 전쟁으로 유랑의 세월을 보내도 그리움에 사무치는 고향이 있어 살아내실 수 있지 않았을까

고향이라는 말이 더 아리게 느껴지는 추석 연휴 첫날에 광복 80년 기념 전시관에 올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그들에게 마음으로 전해드리고 싶다.

글을 쓰는 현재도 그 마음의 여운이 남아 있는 것처럼….

지금의 마음을 글로 남기고 싶어 주위 카페를 빠르게 검색해 광화문 앞 카페까지 걸어올 만큼

조용한 공간에서 조상들의 숨결을 느낀 덕수궁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광복만을 기다리신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담아내고 싶어 부지런히 이곳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많은 말들을 뱉어내지 못하더라도 아리게 새겨지는 마음의 울림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느끼는 아픔이듯이….

작은 물줄기가 세월이 지나도 흘러 흘러 어느새 바다에 다다르듯 아픔도 흘러 흘러 큰 바다에 이르러 희석되기를 소망한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보고 계실 이웃들을 위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