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김밥이다!
늘 그렇듯 나는 김밥꽁지에 먼저 젓가락이 간다.
남들은 두툼한 가운데 토막부터 젓가락을 대지만
나는 아니다.
사실 김밥꽁지라고 해서 더 맛있는 것도 아니고
모양도 더 보기 싫지만
내겐 김밥꽁지가 꽃같다.
막 씨를 터뜨리기 직전의, 가장 화려함을 뽐내는 꽃같다.
그런데
단지 화려하거나 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김밥꽁지는 나같다.
늘 잘하고 싶은데도 여전히 불안에 떠는 불완전한 모습때문인가?
삐쭉삐쭉 삐져나온 재료들이 내 감정을 닮아서인가?
듬성듬성 빠진 재료들이 내 지성과 비슷해서인가?
나는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늘 감정 때문에 상황을 오판한다. 과거에 풀지 못한 채 내 안에 쌓인 감정들이 현실에 그대로 튀어나와 내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나의 지성도 여기저기 구멍난 채로 감정에 매번 패배해 버리니 나는 책을 읽고 그 지성을 메워야 할 필요성을 아주 많이 느끼는, 불.완.전.한 사람이다. 이렇게 내가 나를 규정하니 마치 김밥꽁지가 나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김밥꽁지처럼 나를 가장 최고라 여기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씨를 떨구는 활짝 핀 꽃처럼 나만의 창조를 세상에 뿌리기 직전은 아닐까?
그리고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꽁지부터 젓가락질하는 내가 불완전하다면
가운데 통통한 김밥에 먼저 젓가락질하는 이는 완전한 사람인가?
아닐 것이다.
완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조건 잘하는 사람도
뭐든지 잘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밥꽁지도 김밥이다.
불완전한 나도 완전한 나다.
김밥꽁지가 없으면 김밥의 완성체가 되지 않는다.
불완전한 내가 없으면 나의 완성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밥에는 반드시 김밥꽁지가 있기 마련이듯
완전한 내가 되려면 반드시 불완전한 내가 필요한 것이다.
불완전한 나를 끌어안고 완전을 향해서 가야겠다.
불완전한 영혼이 교육을 받거나 준비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 열등한 성질이 갖는 모순이 오래 지속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주).
중요한 것은 불완전한 지금 내 모습에 한탄할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내게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열등으로 날 내버려두어 위험을 예고받은 인생을 살 것인가, 교육을 통해 열등을 우등한 성질로 이끌 것인가?
나는 김밥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러니 단지 맛있는 꽁지의 위안으로 지금 내 모습을 자위하면 안될 것이다. 최근 나도 모르게 독서에 이끌렸다. 어쩌면 불완전함을 채우기 위한 의도되지 않은 흐름이었을지 모르겠다. 책을 읽음에도 여전히 불완전한 모습이 많다. 불완전한 나를 계속 드러내고, 드러냄으로 그 속에 알지 못했던 웅크리던 내가 계속 드러나도 이 모든 과정이 완전으로 가는 과정이니 지금은 이렇게 계속 책과 함께 하면서 나를 발견하고 드러내고 또 받아들여야겠다. 그렇게 화려한 꽁지가 자랑스럽게 접시 위에서 자신을 뽐내듯 나도 나만의 인생위에서 ‘나답게’ 살아야겠다.
(주)올더스헉슬리의 저서, 영원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