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겨울은 뽈래기가 많이 나는 철이었나보다.
연탄구이로 먹고, 김장김치를 담그실 때 무와 새끼 뽈래기를 넣어서 무김치를 담궜다.
저녁에 석쇠위에 연탄불에 4마리씩 일렬로 줄 서서 돌려 가면서 굽는다.
그 옆을 지키면서 군침을 흘리고 쳐다본다.
겨울밥상에 연탄구이 뽈래기와 할머니표 시원하고 커다란 무김치가 올라온다.
커다란 김치를 젓가락에 콕 꽂아서 밥한번 무한번 번갈아 가면서 먹는다.
중간중간 뽈래기 구이도 먹는다.
4총사가 옹기종기 밥상 머리에 둘러앉아서 밥을 먹는다. 서로 먹으려고 머리싸움을 한다.
할머니는 항상 뽈래기대가리를 잡수셨다. 대가리가 더 고소하고 맛있다고 나는 할머니옆으로 가서 생선눈알을 빼먹는다. 생선 먹을 줄 안다고 할머니가 칭찬을 하신다.
어릴 때는 비교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어린 눈에 비친 할머니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나는할머니가 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주1)했다.
그렇게 나도 할머니가 하시던 행동 그대로 지금까지 생선 대가리는 내 차지가 되어 있다. 어려서 할머니가 드시는 걸 보고, 옆에서 먹고 커서 그런지 나도 생선 대가리가 맛있다. 하지만 한번씩 대접받는 느낌으로 생선 몸통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할머니도 그러지 않으셨을까 내 기억에 뽈래기 가격은 기억 나지 않지만 고등어는 700원이었다. 그때의 물가를 생각하면 비싼 것이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우리를 위해 대가리를 드셨을 듯 싶다.
GOD의 ‘어머님께’ 노래가 생각이 난다.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그렇게 후회하고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눈물도 흘리고
할머니의 손맛, 뽈래기 무김치는 유치원 다닐 때 내 도시락 단골 반찬이었다. 하얀 밥이랑 새콤한 무김치는 찰떡 궁합이다. 엄마가 싸준 예쁜 도시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맛나게 먹었다.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가 침침한 눈으로 반찬 걱정을 하시며 싸주신 걸 알기에 고마움이 먼저였다.
어떤 부친이 아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밖에 자식의 애정을 받을 수 없다면, 그는 참 가련한 인물입니다. 이런 것도 애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 도덕과 그의 능력으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착하고 행세가 점잖아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풍부한 물질은 불탄 재에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광을 받던 인물들의 유해와 유물까지도 경위와 숭배를 받는 것은 늘 있는 일입니다. 노년이 되어 아무리 노쇠하고 썩은 냄새가 나더라도, 젋었을 때 영광을 받고 지낸 인물은 그 아이들에게 존경받지 않는 일이 없으며, 그는 그들의 마음을 이치에 맞게 의무를 지키도록 지도한 것이고, 궁하거나 필요에 못 이겨서, 또는 강제와 억압으로 존경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주2)
할머니가 주신 사랑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느껴지는 무한한 사랑이다. '사랑해 줄께'와 같은 조건있는 그런 사랑이 아니었다. 경상도분답게 무뚝뚝하셨다. 하지만 할머니의 행동에서 ‘나는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전해졌다. 절에서 손주들 먹이려고 손수건에 싸서 오신 강정이며 떡, 엄마를 대신한 유치원도시락, 처진 젖가슴을 내어주신 것도 모든 것이 사랑의 표현이었고, 지금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나의 '몸짓'이나 '느낌'으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나중에 '고난'이나 '시련'이 왔을 때 사랑 받은 생각을 하면서 ‘이겨낼 줄 아는 아이’로 성장을 시키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할머니는 '내리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손주를 키우는 것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시간을 손주들에게 태우셨을 것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용돈도 많이 드리고 맛난것도 많이 사드렸을텐데..
아니, 어쩜 손주사위와 증손자를 더 반가워 했을수도..
한번씩 할머니 사랑이 그리워 울컥할때는 하늘을 보고 중얼거린다.
"할머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 살고 있습니다."
주1> M.스캇 펙저, 아직도 가야 할 길.
원문 : 어릴 때는 비교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어린 눈에 비친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가 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2> 몽테뉴 저, 에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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