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얼른 당장 집근처 *살림으로 달려간다. 주섬주섬 고춧가루, 메주가루, 소금부터 장바구니에 담는다. 앗, 내가 원하는 조청이 없다. 이럴 때 난감하다. 당연하게 있을 줄 알았던 무언가가 없을 때 나는 아.줌.마.답게 호들갑에 카운터로 뛰어가며 소리친다.
“**조청없어요?” 카운터의 직원은 조청의 위치를 알려준다. 차분하게 라벨에 적힌 성분표를 본다.
‘어라!? 이게 더 좋은 조청이네!!’
값은 조금 비싸지만 훨씬 좋은 것을 득템했다. 역시 현실은 계획에서 빗나간다. 계획대로 안된다는 것은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이다. 계획보다 더 잘 될 때가 훨씬 많다. 그러고 보니 내 계획은 필요가 없다. 인간의 머리가 때로는 결코 이성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은 듯 하다. ‘다른 동물들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늘 시선을 땅에다 박고 다니는 데 반해 머리가 하늘로 솟아 있어서 별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는(주1)’ 인간. 나도 인간인데 내 머리는 소용없을 때가 많다.
여하튼, 올해는 넘어갈까 갈팡질팡대다가 그래도 이 말이 듣고 싶어서 겨울이 가기 전에 서둘러본다.
“우와~ 미쳤다! 그걸 왜 담궈? 사 먹어!”
“뭐라고? 직접 담궈 먹는다구?”
“요즘에도 환*이 엄마같은 사람이 있나? 천연기념물이다!”
나는 20여년 전 결혼하고부터 매년 고추장, 된장, 간장은 손수 담는다. 남편과 나의 서로 다른 입맛을 절충시키느라 김장도 매년 손수 한다. 뒤늦게서야 알았지만 난 친정과 시댁이 모두 다 이렇게 직접 만들기에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내게 당연한 것이 남들에겐 특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눈에 특별해 보이는 것도 상대에게는 당연한 것이겠지!
특별하다는 것은 무언가 하나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남들보다 더 높은 경지까지 끌어올린 결과일 것이다. 그 결과가 지속되면 ‘당연’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100점 맞는 놈이 100점까지 끌어올리게 공부를 한 결과 그 녀석은 100점 맞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결국, 모든 ‘특별’함은 없던 힘이 축적되어 ‘당연’이 될 수밖에 없다.
특별=당연.
말도 안되는 모순이 진리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메주콩을 찧을 때, 메주를 띄울 때, 배추를 절일 때, 고추장를 버무릴때 항상 옆에서 심부름을 했다. 내겐 너무 친숙하고 당연한 놀이감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시 엄마 나이’가 된 ‘엄마로서의 나’는 ‘엄마보다’ 더 쉽게 고추장과 된장, 간장, 김장을 담근다.
이 모든 것을 손수 하는 이유 가운데 또 하나가 있다면 명인이나 장인으로 불리는 명장들이 만드는, 방부제없는 것들을 구입하고 싶은데 너무 비싸다. 그 값을 치르느니 직접 담가먹는 것이 내게는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자, 이런 이유로, 직접 담그는 것일 뿐인데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게 특별한 무언가가 또 있을까? 없다. 아니, 못 찾겠다. 아이들에게는 늘 특별한 자기만의 색을 찾아주고 싶어 안달난 엄마인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대접을 해주지 못했다. 사실 나는 특별하지 않다고, 아니,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봐도 없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근다는 ‘말도 안되는’ 이 습관 하나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다면,
혹시 모르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특별함을 내가 또 지니고 있는지?
혹시 찾아내지 않을까?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을지?
혹시 나도 모르게 드러나지 않을까? 남들에게 특별해 보이는 그것을 흉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 특별하다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내가 된장, 고추장을 매년 담그면 특별해지듯이 내가 지금 원하는 그것을 찾아서 매일, 또는 매달, 매년 지속하면 내 특별함은 또 당연하게 되는 것이지. 어떤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은 힘의 정도를 표현(주2)’하는 것이니 지금 찾지 못하더라도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위해 매일 힘을 축적한다면 나의 특별함을 찾게 되고 또 특별함은 당연한 삶이 되겠지.
무용수가 높이 뛰어 날기 위해서 매일매일 비약을 하고 넘어지고 또 비약하고 넘어지듯이 어느 순간 무용수는 더 높이 비약했지만 넘어지지 않고 그대로 사뿐히 보행을 하는 그 순간, 그에게 비약은 보행이 되는 ‘당연’한 몸짓이 되는 것이다.
무용수가 최대한 높이 뛰기 위해 매일 수십, 수백번 하늘을 향해 뛰어 오른다. 뛰어오르다 넘어지고 또 뛰어도 넘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용수는 사뿐히 땅에 발을 딛고 보행을 이어간다. 비약이 보행이 된 것이다. 타인에게 특별한 비약이 자신에겐 당연한 보행이 되는. 어쩌면 내가 특별해지는 모든 과정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그것들처럼 앞으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매일 쉬지 않고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날 가로막던, 하다가 멈추고, 난 안되나보다 포기했던 그 마음이 앞으로의 내 시간에는 근처도 얼씬하지 못하게 해야겠다. 지금까지 포기했던 많은 것들도 특별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는데 나의 마음이 그것을 훼방놓은 것이었음을 깨달은 지금, 나는 내 마음을 구속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장을 담그는 '당연’한 일이 남들이 보기에는 특별하다면, 나는 이미 내 안에 ‘나만의 특별함’을 만들어낼 능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 이제 그것들을 묵묵히 해나가면 반드시 해낸 양만큼 축척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포기’라는 말은 김장철에 배추셀 때만 사용하기로 하겠다.
나는 나를 기르기로 했다.
‘그냥 하면 돼!!’ 나만의 특별함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주1> 오비디우스 저서, 변신이야기
주2> 찰스해낼 저서, 마음 먹은 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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