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노인
오늘 아침에도 아내는 정돈되지 않은 식탁에 내가 즐겨 먹는 계란 한 개와 슬라이스치즈 한 장, 우유 한 컵과 두유 한잔을 이끌리듯 내어놓았다. 토마토 한 개를 사등분하여 약간의 꿀을 뿌려 놓고 초대하지 않은 식탁처럼 말없이 앉아서 생존을 위한 의식처럼 꾸역꾸역 목구멍에 밀어 넣는다. 어느 때보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어야 하는 데 언제부터인가 애완동물 밥 주는 식이 되어버렸다. 이 사람은 과연 나를 남편으로서 존중해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차마 아무것도 안 해 줄 듯 심통을 부릴 때도 있지만 나는 가끔 서글픈 생각에 잠기곤 한다. 아침에 사과 한쪽에 모닝빵 하나와 삶은 계란과 우유 한잔으로 샐러드를 겸하여 깔끔하게 정돈된 식사를 하고 싶다. 아내는 오늘 아침에도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처럼 하여도 내어 놓기는 한다. 부부가 사는 법은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는 각도가 커지는듯하다.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 만날 수 있는 부부가 아니라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늘어나는 기이 현상이 생겨 나고 있다.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 부부는 서로에게서 올바른 답을 구하려 하기보다는 담너머 남의 집 안마당을 들여다 보는 현상이다. 예전에 우리 세대는 남자가 혼자서 경제활동을 했고 여자는 아이들 키우며 집안일을 도맡아 해 왔기에 전업주부라고 했다. 점점 여자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나고 남자보다 많은 수익을 얻게 된 여자들의 위상을 하늘을 찌른다. 집안일도 서로 분담하여야 하고 아이들 육아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별다른 일은 아이다. 요즘 세대에서야 당연시하겠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은 남성 우월주의의 유산일 것이다. 나는 이미 아이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 아이들의 현명한 삶의 방식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집안일에 매여 있던 여자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식사를 위해 이른 시간에 집에 와야 한다는 개념도 무너진 지 오래다. 특히 나이 들어 퇴직하고 집에서 주로 생활하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먹을 것을 챙겨 먹어야 한다. 퇴직을 하고 나니 아내의 첫 일성이 "이제부터 점심식사는 알아서 해결하세요."였다. 그래서 요즘 남자들에게 필수적인 것은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 맛있는 요리를 해서 아내와 가족들에게 제공해야 그나마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 부모들 세대에서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크게 오산일 것이다. 어떻든 요즘에는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요리에 자신이 없어도 사다가 끓여서 먹게끔 만들어진 요리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집 문앞에 까지 배달되는 모든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 참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다. 평생직장을 다니면서 밖에서 주로 식사를 하던 남자들이 집에서 밥을 달라고 할 수 없으니 간편한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어쩌다 친구들이 밥 먹자고 불러주면 제일 반갑다. 얼마 전에는 아내에게 도시락을 싸 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보온도시락에 계란 프라이 하나 얹어서 김치와 노란소세지를 반찬으로 담아서 내어 주었다. 나는 퇴직을 하고 도서관에 집필실을 얻어서 나오면서 혼밥족이 되어버렸다. 나는 지금까지 혼밥 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누구라도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어야 소화도 잘되고 음식맛을 느끼기도 했다. 혼자서 먹는 밥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맛을 느낄 수 없는 더부룩함을 뿌리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점차로 가족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존재감 미미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두 딸도 결혼하여 아이들을 키우며 맞벌이를 하고 있기에 나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외면을 받게 되었다. 퇴직 이후 얼마동안은 후배직원들이 불러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냈으나 점차 그들과의 만남도 줄어들고 소식을 전하는 것도 뜸해졌다. 존재감 뿜뿜 하던 잘 나가던 시절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집 나갔다 돌아온 탕자 같은 나는 반겨주지 않은 가족들에게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 남단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육지에 상륙하여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꺼먼 가슴으로 주름살 깊이 파인 노인이 되어 버렸다. 나는 가끔 노인을 노인(NO 人)이라고 한다. 곧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패기 있고 피부탄탄하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고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고독한 사나이가 외로운 길을 간다.”라고 팔에 문신을 하고 다니던 선배가 생각났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용 연한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버려지는 소외감을 어떻게 받아 들려야 하는지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사람도 각자의 운명에 생명의 연한이 있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지만 죽음도 옛날처럼 슬픈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초상이 나면 온 동네 이웃 할 것 없이 지나가던 길손도 함께 슬퍼해 주고 오랫동안 웃음기를 잃은 채 살았었다. 하지만 요즘은 죽으면 바로 화장터로 가서 재를 만들고 한 줌의 재는 항아리에 담아서 추모관에 모셔 놓고 무심한 세월 속에 잊히는 인생을 어찌 애달프다 아니하겠는가.
내가 살아있음은 내가 지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고 그곳에 속해있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점차 가족들의 관심은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존재감은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점점 작아지는 내 모습은 쓸쓸하게 발밑으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흩날리는 낙엽이 되어간다. 그렇다 칠지라도 아파서 병실에 누워있지 말아야 할 텐데 라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내가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날마다 내면의 평화를 위해 마음 다듬기를 의식적으로 해오고 있다. 오늘도 나는 존재감 없는 쓸쓸한 영혼을 달래기 위해 퉁명스러운 아내를 두고 도서관에 왔다. 작가실 옆방에 있는 젊은 작가가 내려놓은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한잔 담아서 내방으로 들어왔다.
가을비가 창문에 흘러 내린다. 들판에 곡식들은 거두어들이고 아직 몇 개 남아있는 높은 가지에 빨간 홍시는 까치밥 하라고 남겨두었나 본다. 텅 비어가는 들판에는 하얀 지푸라기덩이가 코끼리 똥처럼 놓여있다. 가을이 가면 추운 겨울의 기억이 미끄러지듯 도랑에 담긴다.
나이가 들수록 걱정거리도 늘어나는가 본다. 이것이 스트레스 일 것이고 스트레스는 작은 반응으로 시작해서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어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삼키려 한다. 걱정거리가 생기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위협이 없음에도 노인이 되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 또는 기대하는 것이 도전을 받게 된다. 실질적인 위협이 아님에도 외로움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상상의 산물이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도 반응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생각할 기회도 얻기 전에 반응하게 되어 피할 수 없는 고독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세대는 미래를 위한 준비에 많은 관심을 두고 검소함을 덕목으로 잘 살아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추구하는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일상적인 감정이 도를 넘어서 온몸을 흔드는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외로운 사내가 고독한 길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줄 도 모르고 그림자 지워지는 저녁노을에서 힘없이 돌아서는 안타까운 삶의 뒤안길을 바라보게 된다. 슬픔을 넘어 더 깊은 마음의 수렁에 누워버리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픈 곳은 하나씩 늘어나고 내 몸하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밤잠도 못 자고 한숨은 길어만 지는 어쩔 수 없음에 처하게 된다. 나 홀로 생각만 깊어지고 판단력은 떨어지고 쉽게 마음까지 주어버리는 피동적인 노인이 되어 버렸다. 후회와 눈물이 없는 나의 남은 날들을 위해서 걱정 없이 지내는 날이 많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중요하게 생각되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누구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쇄약 해진 노인의 길에서 방향을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