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며 살아갑니다.
漁父辭(어부사)를 읽고서..
요즘 세상사는 것이 녹록지 않다고 한다. 정부가 하는 일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성처럼 찬성과 반대가 부딪치고 사람들의 마음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옳으니, 잘못되었느니 하는 것은 공허한 공방일 뿐이다. 무슨 일을 하던지 그 일에 대해서 관점이 다르고 느끼는 바가 서로 다르기에 항상 충돌을 예견하고 있지만 좀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피부로 직접 느껴본다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잘 정돈되었던 가치가 어느 날 산산조각 부서지게 된다면 인생만큼이나 중요한 자기만의 가치에도 그 분야를 등지고 멀리 떠나버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어부사에 나오는 굴원도 그랬듯이 질투하는 사람들의 모함으로 조국을 떠나 방랑하는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면서도 자신의 소신이 옳았다는 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나도 그에 비교되지는 않지만 굴원의 그것처럼 혼란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어제는 갑자기 시작한 문인화 공모전 준비가 막바지에 있어서 동아리방에 나갔다. 일주일에 한두 번 동아리방에 공부하러 가는 날이기도 해서다.
먼저 나오신 분들과 평소처럼 인사를 나누고 내 자리에서 붓 말이를 풀었다.
물통과 접시를 준비하고 먹물을 조금 따랐다.
반지 화선지를 탁상 위에 펼치고 말없이 첫 번째로 그어보는 것이 난(蘭) 잎이다.
벌써 수년이 지났으므로 그래도 자신감이 조금 있는 것은 난을 치는 것일 게다.
난(蘭) 치는 수준을 어느 정도 인정받아 매화 그리기에 돌입한 지도 벌써 한 해가 지나간 것 같은데 매화는 아직도 선생님의 마음에 안 들뿐더러 나도 계속 종이만 버리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과정이고 인내의 시간들일 것이다.
공모전이 시작되면 왠지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대범하지 못함은 오랫동안 서예를 배우면서 그랬듯이 공모전작품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조급함 때문이기도 했다.
작품 제출기한이 다가오면 초조함도 있고 더 잘해보려는 욕심도 생겨서 잘 안 되기 일쑤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대체로 한 달 전에는 공모전 작품을 마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다. 그림은 좀 다르다. 평상시 연습처럼 그리고 그렸던 것 중에서 택일하기 때문이다. 동아리방에서는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미리 체본을 받고 수없이 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서 마무리한 한 장의 작품을 골라 제출한다. 최소한 2개월 전부터 준비하여야 한 장 정도 나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화실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거칠 수가 없다. 대체로 취미반이기 때문에 몰두해서 작품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정말 열심히 공모전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문인화동아리에서도 이번 공모전 제출자를 선정하고 작품을 준비해서 제출하도록 하였다. 이날 아침 나를 당황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동안 비슷한 사례들이 관행처럼 행해지는 일들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늘 문화계의 묵시적인 관행처럼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전부를 완성하지 않은 작품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좀처럼 내가 나를 설득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당황했지만 가끔은 선생님의 도움이 가미된다는 것으로 알고 어찌하여 공모전에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내 의지와는 달리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한 마음이 점점 무겁게 다가왔다.
그날 그 상황에서는 어쩔 줄 모르고 지도하는 대로 그렇게 해서 제출했다.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번 공모전에서 우리 동아리방에서 좀 더 큰 상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마음이 불편하고 오후 내내 찜찜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
그다음 날 아침이 되어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다. 구차한 변명 같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 정의롭지 못한 일로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더니 관계자는 이러한 일이 관행이고 전통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나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동아리 공동체의 질서와 내부의 암묵적인 관행에 도전하기에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껏 내가 좋아하는 일에 소신껏 임하고 바른 행실로 덕을 키우고 예로써 예능을 가까이하고 싶었다. 실력이라야 별반 다를 게 없겠지만 어느 위치에 이르기까지는 반드시 세월을 녹여내야 하는 노력과 인내가 함께 할 때 결과로 보여지는 것이라 믿었기에 단 순간에 커다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에 부닥치니 수많은 갈등과 부끄러움으로 남는 것 같았다.
잘했던, 부족하던 더 많은 학습과 노력을 통해 내가 준비한 만족한 작품으로 공모전에 내놓고 싶었는데...
지금껏 관행처럼 여겨지는 방법이 아니고선 절대로 특선 이상을 할 수 없었다. 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10여 년을 서예공모전에 출품하면서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개인이 조직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고 문화계의 관행과 전통을 깨트릴 만한 힘이 없었던 것이다. 특정문하에서 선생님들의 권한과 기능은 상상을 초월하는 묵시적인 것이 있었다. 그런대로 문화계는 흔들림 없이 잘 존재해 왔다. 어느 날 어떤 선생님과 이런 부분에 대해 상담했더니 이 분야에서 활동하려면 “그것도 배워야 할 한 부분이라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어디 서실이나 화실뿐이겠는가? 더 넓게 다른 분야의 문화계의 관행과 전통도 잘은 모르지만 그러한 관행이 있다는 것쯤은 의심하게 된다.
난 그래서 그런 세파와 관행을 멀리하고 굴하지 않고 전혀 다른 길에서 공부했다. 그 힘들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십수 년이다. 몇 번이고 그만두고자 했으나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선배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내가 굴원의 어부사(漁父詞)를 좀 더 일찍 읽고 지혜로움을 깨우쳤다면, 창랑의 물결에 발이라도 씻었을 텐데..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보았자 남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남을 속이고 잇속을 찾아 사는 간신배들이 더욱 출세하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밀 때가 많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주변의 참소와 질투로 인생의 고배를 마신 적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혼탁하든 깨끗하든 그것이 내 인생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저 묵묵히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면 될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관행과 어지럽게도 또 다른 관행을 만들어가는 우리 주변의 작은 조직사회에서부터 혁신과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지만 요즘에는 이런 것을 적폐라고 하며 적폐청산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더불어 사는 공동체, 차별 없는 공정한 플레이, 질서가 지켜지는 배려하는 세상을 소망하게 된다.
굴원은 추방당해 강가에서 노닐며
못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은 수척했다. 어부가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어찌하여 여기에 오시게 되셨습니까?”
굴원이 말하길
“온 세상이 다 혼탁하고 저 혼자만 깨끗합니다. 사람들 모두 취해있으나
저 홀로 깨어있습니다. 그래서 쫓겨났습니다.”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모두 혼탁하다면 어찌 진흙을 휘저어 물결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취해있으면 어찌 술지게미를 먹고 거른 묽은 술을 들이마시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행동하시어 자신을 쫓겨나게 하십니까?”
굴원이 말하길,
“내 듣기로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을 털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턴다 합니다. 어찌 깨끗한 몸으로 사물의 더러움을 입을 수 있습니까?”
"차라리 상강물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 묻히겠습니다.
어찌 고결한 몸에 세속의 먼지를 묻힐 수 있겠습니까?"
어부는 살짝 미소를 짓고 노를 저어가며 노래하길,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을 수 있네.”
어부는 물러가고 더는 말을 같이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정말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입니다. 혹시라도 세상 살다 힘들고 험한 일 당하시거나 마음 상한 일 만나시거든 이 어부사 한 번 읽어보십시오. 조금은 위로와 안심이 될 것입니다.
義를 접어두고 利만 쫒는 요즈음 문화계와 정치인들, 그리고 소수집단들 등등.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이 뜻 바뀌고 저 뜻 바뀌고 어찌해서 그럽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옛날 漁父는 이리 말하겠죠.
"그야 큰 세력에 그냥 휩쓸려 가는 거야. 그래야 그대 一身이 편안해...."
굴원의 굳은 지조가 그리운 오늘날입니다. 정치인들 대다수가 선비였고 詩人이고 文學人이었던 그 옛날이 부럽고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