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에서 존중과 배려로
어느새 직장에서 관리자로써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한 지 4년째를 맞이했다. 그동안 뒤돌아보면 얼마나 피동적이고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현장사업소 관리자로써 회사의 권한을 위임받아 사장님을 대신하여 현장관리 및 직원 인사평가와 조직원을 이끌어 해가는 리더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가끔 나 자신에게 “당신은 리더입니까?”“관리자입니까?”라고 묻게 된다. 리더와 관리자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리더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임파워먼트가 있기 때문이다.
임파워먼트(Empowerment, 권능감)를 직역하면 ‘권리 강화’ 혹은 ‘권한 위임’이란 뜻으로, 조직원 자신들이 조직에 많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권력 및 능력 등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권력을 위임하거나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권력을 맛보게 해 준다는 뜻으로 이해하게 된다.
어느 커피 전문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다. 임마누엘모임 형제들하고 모이는 모임이 있어서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렀다. 한분은 커피를 이미 마셨다며 안 마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주문을 받는 직원이 인원수에 맞게 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둘러보니 메뉴판에 “음료는 사람 숫자대로 주문하셔야 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문을 받는 종업원에게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담담하되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들은 나름 소개받아 찾아온 가게인데 매장은 텅텅 비어있었는데도, 그녀의 태도는 까칠했고 눈빛은 완강했다.
“어, 커피 값 아끼려고 그러는 게 아닌데.” 우리들은 모두 그녀의 쌀쌀맞은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는 게 되었다. 커피를 사기로 한 사람이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그냥 사람숫자대로 차를 주문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알바인 게 분명한 젊은 아르바이트생과 벌어질 수도 있었던 갈등을 평화롭게 마무리 지은 셈이다. 그러나 이후 우리들은 다신 그 가게를 찾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가게에 대해 부정적인 입소문마저 내고 다녔다. 그 가게는 커피 한 잔 더 팔려다가 미래의 수백, 수천 잔 판매 기회를 놓친 셈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녀는 주인에게서 받은 알바 교육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한 모범생이다. 다만 고지식한 게 문제였다. 물론 고지식한 직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채 근무 매뉴얼을 너무 단순하게 제시한 주인도 문제다. 자기들의 영업이익에만 포커스를 맞춘 상사의 지시에만 잘 따르는 고지식한 직원이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는 하는 것일까. 직원에게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려고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업무에 대한 적극성과 창의성도 그런 재량권이 있을 때에 발휘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인 일 음료를 강요하는 것도 일상에서 어떤 문제를 낳고 있는지 짐작은 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조직을 위해서 많은 주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권력, 힘, 능력 등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한 확신은 우리 직장인들에게는 엄청난 권한으로 생각된다. 우리 직장인들에게는 스스로 능력과 의지를 키워가는 일이 공식적 권한을 사실상 위임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의 어떤 의사결정과정에 깊이 참여토록 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체험토록 하는 일들이 전제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임파워먼트의 개념은 조직 내 권력의 분배보다는 자주적이며 책임 있는 권한의 증대 또는 창의적인 문제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임파워먼트의 성공적 실천전략으로는 첫 번째 정보의 공개이다.
조직원이 필요한 정보를 선점하여 얻었을 때 조직원은 임파워먼트를 높게 느낄 것이다. 즉 자신이 그만큼 정보력이 뛰어나고, 정보를 얻을 만큼의 관계의 폭이 넓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그럼으로써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이고 조직원에게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시키고 싶어 한다. 한해계획표만 봐도 알 수 있는 목표달성이나 성과, 장려금 따위 등의 조금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는 정보를 중요한 기밀인양 조직원들에게 비공개하는 것은 그들의 자긍심마저 감소시킬 것이다.
두 번째로는 신뢰이다.
직원들이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자랑스럽게 긍지를 느끼는 정보가 흐지부지 해 져버렸다면 이 또한 망신거리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여 얻어낸 정보이지만 실현되지 않았다면 그 의미마저 무의미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자 다른 부분에 참여하고 활동하며 얻은 정보는 서로 공유하며 신뢰성 있는 정보로 공유될 때 임파워먼트뿐만 아니라, 조직원들에게 일에 대한 재미도 유발하고 가치도 증대시킬 것이다. 즉 임파워먼트는 신뢰 수준에서 커진다는 개념으로 이해해 본다.
세 번째로 적극적인 참여활동 유도이다.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발전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제안받았을 때 임파워먼트를 높게 느낄 것이다. 이는 참여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권한을 위임할 필요성이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 스스로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자세로 주인의식을 갖고 조직의 부정적인 문화나 관습도 개선해 나가려고 시도할 때 자긍심과 자부심은 더욱 조직 안에서 단단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꽤 영향력이 있는, 또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믿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네 번째로 존중과 동시에 배려이다.
존중함에는 당연히 신뢰가 따른다. 그 신뢰가 얼마나 조직원 한 사람에게 큰 힘과 책임을 강조해 주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배려에 대해서도 조직원이 부담감도 느낄 수 있지만, 그만큼 대단하고 중요한 일을 부여받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 임파워먼트의 향상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이 때문에 조직원들은 조직에 주인의식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고 충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직원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위임해 주는 걸 가리켜 임파워먼트(empowerment)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힘 실어주기, 권리 강화, 권한 위임, 권한 위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 자신의 판단에 의해 행동을 취하거나 통제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조직생활의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임파워먼트를 위선적·사기적 용도로 써먹는 것 못지않게 임파워먼트를 겁내거나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수시로 들르는 다른 찻집에도 메뉴판에 언제부터인가 사람숫자대로 주문하라고 쓰여 안내되고 있다. 재량권도 없고 창의성이나 자율성도 없는 통제 안에 갇힌 우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어쩜 오늘도 임파워먼트 하고 전혀 다른 통제적 권리를 위임받아 살아가고 맡겨진 조직원을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언젠가부터 일을 실제로 수행하는 관리자들의 판단력과 역량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비관적인 조직원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은 본사에 현장에서 이뤄지는 인사권한을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답은 “권한을 줬어도 사용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정말 조직 구성원들에게 권한을 넘겨줄 용의가 있는지 먼저 묻고 싶었다. 말로는 조직원들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깨너머로 그들을 계속 감시하고, 그들이 해야 할 결정을 대신해준다면 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겠죠. 임파워먼트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디스임파워먼트(disempowerment, 무력화, 권한 박탈)’를 일삼으면서 무슨 혁신과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