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다가왔다.
사랑할 수 있어서 감사
요 며칠을 책을 읽고 있다. 독일의 문학가 괴테의 소설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갑자기 읽고 싶었다. 베르테르와 샤를로테의 사랑을 통해서 베르테르의 감성을 자극한 로테의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었을까? 그냥 태생적 미모와 친절함이 베르테르의 영혼까지 태우게 되었는지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끝내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이미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었던 로테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 베르테르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로테에 대한 절망적인 사랑을 순수함에서 집착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사회적 통념과 현실의 벽에서 실의에 빠진 베르테르의 인생에서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결국 떠나지 못했다. 내가 했던 사랑을 추억해 보고는 떠나보냈던 사랑을 잊지 못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로테는 알베르트라는 남편이 있었기에 그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베르테르는 로테옆을 떠나지 못하고 언제나 친절하고 다정한 친구로만 남아 있으면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에 가슴앓이를 했다. 사랑의 고통은 더 이상 만나지 말라는 남편의 충고를 들은 로테는 베르테르와에게 만남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게 되면서 베르테르는 삶의 의욕마저 잃게되었다. 결국에 로테의 손으로 건네진 총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괴테는 베르테르를 통해서 봉건적 사회에 대한 저항과 사랑과 인간의 감성에 호소해 보는 절절한 고뇌를 느끼게 했다. 자신에 감성에 충실하게 표현해 내었다는 것에서 아주 오래된 이 소설에서 일부분 공감을 하게 된다. 왜 무슨 일로 나한테 오래전에 읽었던 고전소설이 다가왔을까 생각해 본다. 한때 사랑에 절망하고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나의 감정은 나만의 이기적인 욕망의 그것이었을까. 젊은 베르테르가 샤를로테에게서 받은 감정은 로테에게 향한 일방적인 찐 사랑이었다. 로테는 항상 친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그처럼 사랑받는 여인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 했지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무너뜨리고 대려올 수 없었다. 사회적 윤리를 중시했던 시절에 베르테르는 더욱더 로테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모든 것을 건 도박 같은 시도에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새로운 사랑을 통해 사회적 통념을 깨 드리려고 했던 시도는 있었으나 아무도 이루지는 못했다. 애절한 사랑의 도전은 오늘날에도 세월을 넘어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요즘 사랑은 나이는 물론 출신성분이나 빈부 귀천을 떠나 자유분방함에 있다. 하지만 잠시 느낌을 통해 쉽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은 참고 인내하며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하는 깊은 사랑이 아니라 금방 쉽게 식어버리는 한나절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다. 사회적 윤리나 도덕적 봉건사회의 엄격했던 사랑과 결혼은 자기 인생에 더욱 중요함을 느끼게 되고 짧은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한순간 마음을 빼앗긴 폭발적인 사랑의 감정을 일생을 통해 지속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언제 내게로 왔다가 언제 어디로 떠나가 버릴지라도 미련은 갖지 않는다는 것이 요즘의 사랑하는 형태이다. 하루 종일 그 사람을 기다리게 되고 그 사람의 와이셔츠와 양말까지도, 팬티와 넥타이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함께 관심거리이고 전부를 함께 올인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서로에게 진실했던 기억들은 추억이라 여기고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지움도 너무나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고 영원까지 한속이 되어야 했던 봉건시대의 사랑도 2세기가 흐른 요즘에 와서 절절한 사랑은 변천사를 통해 깨어진 유리잔처럼 쉽게 치워버리는 경솔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연을 핑계로 만나고 헤어짐이 휴지로 코를 푸는 별것 아닌 일처럼 치부하고 서로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듯 샤워하는 느낌으로 돌아서는 가벼운 사랑을 보면서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에서 그 슬픔의 깊이를 깊이 되새겨 본다. 쾌락의 육체적 행위와 몸짓이 몇 번의 사랑을 나누고나서 서로에게 멀어져 가는 시간의 질서 속에 지워져 버릴 수도 있구나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편안한 숨을 쉬며 잠들어 있던 육체적 사랑은 마음과 정신까지도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과감한 결정을 빨리 내려 버리는 성급한 연인들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조금은 천박하거나 싫어하는 행동도 용납하게 된다. 사람이 사랑을 한다는 것이 예전이나 지금에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떠나고 버리는 것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와 미래에 꾸려질 가족과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되어가는 길에 남녀의 사랑은 현실감에서 일체감을 찾지 못할 때 더욱 과감해진다. 딸린 아이들이 있고 홀로 경제적 독립이 안 되는 현실이 한때 뜨거웠던 순간들을 무심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 언제 또 올 줄 모르는 연인을 위해 새 옷을 사고 화장을 하고 거울 앞에 서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행복해하던 순간이 그 사람이 떠나게 되면 방구석 어디엔가 팽개쳐 저 있을 것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욕망을 품게 되었다면 어떠한 아름다운 치장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에서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랑한다는 것이 이처럼 쉽게 하고 쉽게 끝내버리는 책장 넘기듯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내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주의를 하게 된다. 사랑에는 끊임없이 주의를 끌어야 하고 관심과 추근거림이 있어야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평범한 이야기로 서로에게 관심을 끌게 된다면 섬세한 신경으로 조심스러운 스킨십이 이루어지게 된다. 마치 사랑은 아무렇지 않은 양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가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받게 되면 그 사람의 머릿속에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움도 생긴다. 어쩌다가 혼자 있는 시간에는 다른 사랑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되어 은밀한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누군가에 들키게 되었을 때는 행실이 단정치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겠지만 나름 만족감을 찾으려는 시도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한 사람을 미친 듯이 사랑을 하게 된다거나 누군가와 아주 깊은 관계에 빠져 있다거나 한 번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쉽게 털어놓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쉽게 생각하고 상대에게 숨김없이 고백을 했다가 공감은 커녕 비난을 받게 되어 후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은 숨기며 하게 되고 이별의 순간도 그렇기에 자기만의 아픔이고 스스로 이겨 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서로 사귀면서 함께 공유했던 즐거운 시간들은 내 마음으로 열정에 빠져 겪어야 했던 영화 같은 순간들에서 자기 합리화에 더욱 정당화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사랑하면서 가지게 된 감정은 알베르트가 눈치챌 만큼 넘치는 열정이었으나 사회적인 통념을 무너 뜨릴 수 없었기에 로테의 전부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가 사랑하는 방식은 죽을 만큼 깊고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인 방법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서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랑하는 방식이 그때와는 다르지만 진정한 사랑, 사랑 때문에 목숨 거는 사랑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친구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젊어서 그렇게 열정적이지는 않았지만 사랑한다고 결혼을 했다. 그들은 아이하나를 얻게 되었고 얼마가지 않아서 헤어졌다는 예기를 들었다.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아이하나였다. 친구는 아이를 위해 양육비를 보내야 했고 결국 여자는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한답시고 또 다른 놈을 만나는지 모른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아이가 자라면서 집안 대소사나 기념일에 한 번씩 보는 듯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얼마 전에 군대에서 재대를 했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여자를 만나러 갔다고 했다. 아이 때문이라고 서두를 장식 했지만 아무런 사랑의 흔적이 없는 남남이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인생과 영혼과 호흡까지도 정녕 따로 떼어 놀 수 없는 로테를 사랑한 베르테르의 일편단심이어야 한다는 것이 사랑의 진실인 것이다.
오늘 점심을 먹고 시장 모퉁이 위치 좋은 곳에서 오랫동안 카페를 하고 있는 70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분이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친구가 자기가 자주 가는 카페라면서 나를 인도했다. 이곳 카페는 늘 한가했고 새끼를 밴듯 비만한 숫고양이가 주인인양 의자에 누워서 주인양반의 심심한 시간을 서로 채워주는 지난날의 길고양이였다는 묘생이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뿐인 시간이 길어지게 느끼는 때가 자주 있었다. 유심히 창문 쪽을 쳐다보니 “임대” “권리금 없음”이라는 종이가 턱 붙어 있었다. “사장님, 왜 가게를 내놓으셨습니까?” 주인장의 반응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오지를 않아, 유지비도 안 되는 소득으로 계속 문을 열 수가 없잖아요?” “더군다나 젊은 손님들은 들어왔다가 나를 보고는 나가버리곤 하지요. 그럴 땐 많이 속이 상하곤 해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관점이 있었다. 나는 저 연세에 지금까지 커피를 만들고 있다면 아주 베테랑급의 고급커피를 먹을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젊은이들은 나이 많이 드신 분이 만드는 커피를 왠지 못 미더웠을 것 같은 생각이다. 이곳은 그야말로 노포이기에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을 법했다. 잠깐 사장님의 관심을 끄는 얘기를 했더니 주로 오시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요즘 나이 드신 분들의 사랑 찾아 떠도는 이야기를 했다. 이곳 시장근처에도 춤추는 콜라텍이 있다고 했다. 어떤 80 노객은 춤을 추면서 파트너를 만났고 그녀와 사랑에 빠져사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는 이야기였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만나 애인으로 발전하면서 즐거운 시간에 늙었다는 생각마저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돈이 많은 상대가 인기가 좋다고 했다. 이곳 카페 주인도 나이는 있지만 남성으로서의 성적 감응은 충분한 테크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해 주었다. 부부가 사랑하고 나이 들어 성적 활동이 현저히 떨어진 이후의 삶에서도 다른 이성을 만나면 육체적 사랑이라는 눈을 뜨게 되고 성적 반응이 되살아 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곳 카페에는 그렇듯 나이 드신 분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춤추고 밥 먹고 맥주 한잔하고 들르는 곳이라고 했다. 인생살이에서 가장 큰 활력소는 사랑이라는 범주에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고 했다. 성적인 욕망이나 감정이 배제된 서로의 영혼과 정신을 존중하고 아끼는 플라토닉 사랑은 아주 엤날 고전에서나 찾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 되었다. 로맨틱한 사랑도 오래된 영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사이에서는 성적 매력이나 육체적 욕망을 채우려는 단순한 열정 같은 사랑에 치우쳐 있음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의 감정에 충실하고 도덕적 책임과 윤리의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순간의 감정에 온통 몰입하여 자기의 마음을 끄는 이성을 만나면 지난한 과정을 겪지 않는다. 외형적으로 느껴지는 이끌림에 대부분의 것을 버리고 정당화에 몰입하게 된다. 항상 내 눈에 마음을 빼앗긴 연인은 그냥 좋아했던 사람으로 쉽게 떠나보낼 수 있는 강심장들이 있다. 죽을 만큼 사랑했다고 할지라도 자기 목숨을 거는 사랑은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요즘 방송매체에서 보여주는 젊은 이들의 어느 곳에 특정되지 않는 참 쉽고도 어려운 사랑법을 보여주고 있다. 마음껏 사랑을 누리고 또 다른 사랑을 찾는 유목민처럼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결론 지을 수 없는 현실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에서 배치되는 사랑법을 시대를 초월해서 깊은 고뇌에 잠기게 하였다. 즐겨마시던 커피믹스의 향이 더욱 애정과 사랑과 진실에서 위로가 되는 오후를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