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는 의미

걸으면서 배우는 지혜

by 남재 이진주

비가 세차게 내린다.

바람도 제법 불어서 나뭇잎이 휘어져 뿌리친다.

잘 만들어진 건지산 데크길은 비가 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빗속을 걷는 낭만이 있다.

장마가 일찍 찾아왔다고 하는데 요즘 내리는 비는 매우 국지적이다.

불과 얼마 멀지 않은 곳에는 비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편백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건강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초점을 잃은 듯한 얼굴로 부자연스럽게 보호자의 팔을 의지해 걷는 사람도, 휠체어에 타고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알 수는 없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뻐~꾹, 뻐~꾹, 때늦은 듯한 뻐꾸기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숫 비둘기 구애하는 꾸우욱 꾹꾹 목 쉰소리는 산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다.

또 이렇게 습한 날씨에는 산모기가 극성이다. 잠시만 움직임이 적으면 순식간에 한 빵 쏘이고 만다.

이쁘지도 않은 직박구리 녀석은 방정맞게 나대고 있다.

아침에 아내를 출근길에 태워다 주고 매일 이곳 건지산에 와서 1시간 조금 넘게 산책을 한다.

그늘이 있고 편백나무가 내어 뿜는 피톤치드가 가득해서 산책하기에는 최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년에 심하게 아팠던 허리 때문에 매일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다.

매일 걷다 보니 허리도 많이 좋아졌고 통증도 사라졌다. 그런 이유에 하나 더 이 데크길의 끝에는 통창으로 숲을 담아놓은 숲 속 작은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다. 걷다가 쉬고 싶을 때는 잠시 들어가서 책 한 권 뽑아 들고 짧은 시간에 몇 장 읽다가 오기도 하니 너무 행복한 도서관이다.

오늘은 피천득 님의 에세이 중에서 한 대목 담아왔다.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감성이 더욱 풍성해지는 나의 노년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나뭇잎처럼 단단함이 없어졌나 본다.

그토록 단호하고 강한 멘털의 소유자였던 내가 빗방울 하나에도 흔들이는 나뭇잎이 되어버렸다.

데크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도 무슨 사연인들 가지고 살아가겠지만 자연의 변화에서 자기의 나약한 존재감을 인지하고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에는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얼굴 햇빛가리개를 하고 벙거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착용하면 도무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혹시 아는 사람일 수도 있으나 상대가 그냥 지나가면 모르는 사람이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바삐 걷는 사람도 어디가 아픈 듯 겨우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도 있다.

나이 드신 모습으로 안짱다리를 부자연스럽게 걷는 사람도, 맨발 걷기에 열심인 사람도 모두가 건강을 찾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벤치에 앉아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도 오늘 아침 비가 갠 길에서 만나는 모습들이다.

마사토길은 금세 빗물이 스며들어서 질꺽거리지는 않아서 걷기에는 참 좋다.

비가 더 오려는 지 작은 개미떼가 긴 줄을 이어 바쁘게 이동하는 모습도 보았다.

건지산에서 자주 만나는 검은 청설모는 사람에게서 먹이를 구하려고 사람이 있는 곳에 거리낌 없이 다가오기도 한다. 아마도 누가 먹을 것을 주는가 본다.


자연은 자리를 움직이지 않은 나무들과 움직이는 동물들과 곤충들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 모든 사물들에게는 자기만의 세상이 따로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한다.

살다가 보면, 아니, 걷다가 보면 어제 본 사람이 오늘은 없고 다른 사람이 보이곤 한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별 다를 게 없다.

지난 금요일에 안타까운 부고를 받았다.

신안의 작은 섬 옥도에 사시는 고모부님이 돌아가셨다고 부고를 받았다.

올해 80세가 되셔서 그나마 호상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의 수명이 보통 80세 중반까지 살 수 있기에 가족 친척들에게는 안타까운 슬픈 소식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막내 고모님이셨기에 고모부님(작숙)을 보내드리는 일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매년 추석을 앞두고 고향에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하러 가게 되면 언제나 다정하게 반겨주시고 격의 없이 대해 주시던 좋으신 분이셨다.

우리들 온다고 달포 전부터 통발에서 건진 꽃게며 새우, 운저리, 낙지 등 해산물을 준비해 두었다가 내어주시기도 했다.

일 년에 단 한번 받아보게 된 시골 밥상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모부님의 수고와 고모님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낙지 연포탕은 나에게 특별한 맞춤 음식이기도 했다.

집옆 텃밭에는 고추를 심고 윗 밭에는 콩을 심고 밭두둑에는 무화과와 감나무가 심겨 있어서 최고의 부식거리이기도 했다.

집 왼쪽 담장 옆에는 작은 방죽이 하나 있는데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은 생명의 샘이기도 했다. 아무리 가뭄이 와도 그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물걱정은 안 하셨다. 여름휴가 때 고모집에 가서 그 샘물로 샤워를 하면 얼음물처럼 차가워서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다.

마당앞에 동백나무는 오래전 내가 층층으로 다듬어 놓아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고 커다란 나무가 되어있다.

많은 추억을 남겨주시고 먼길을 가신 작숙(고모부)은 이제 뵐 수가 없다.

특히 우리 사촌들의 모임에 단골이 되셔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던 분이시다. 노래하시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셨던 작숙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도 찾아온 지인들과 노래방에 가셨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건강에 적신호가 와서 치료를 받으시면서 지내왔으나 최근에 모습이 야위고 숨이 많이 가쁘기도 하셨다고 했다. 폐가 나빠서 가끔씩 찾아오는 호흡곤란 때는 산소호흡기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럭저럭 그래도 움직이시면서 지내셨는데 며칠 전에 찾아온 지인들과 같이 돌아다니시면서 무리를 하신 듯하다고 했다.

갑자기 호흡하기가 힘들어져서 쓰려지셨고 섬에서 응급 경비정을 타고 가까운 육지 안좌에서 119로 목포 병원에 도착했으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는데 그것이 마지막 길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고 나를 볼 때마다 “우리 처가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진주 조카여!”하시며 “내가 장가는 잘 들었어.”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고모와 결혼 초에는 우리 집안과 고모에게 별로였다는 예기를 들은 적도 있었지만 그만큼 우리 집안에 거는 기대가 많으셨으리라 생각한다.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가 버리신 우리 자숙이 오늘은 많이 그리워진다. 이제 홀로 남아 허전하고 우울함에 부닥칠 우리 고모님을 생각하면서 잘 지내시길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우리 사친회 형제들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좋으신 고모부님(이모부님)을 항상 추억해 보면서 그분의 따뜻한 마음을 닮고 싶다고 다짐해 본다.

옥도 고모부님은 오랜 세월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셨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쩜 세상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 것이다.

태어나서 수많은 경쟁과 풍파를 겪으며 생존경쟁에 나서야 하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덧없는 인생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지..

숨 가쁘게 뛰지 않아도, 서둘거나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는 길인데 사람들은 무엇을 찾으려고 그리 바삐 걷고, 뛰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건지산 숲길을 걸으며 만보 이만보가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인생길을 걷고 있고 그 끝에는 세상과 이별하는 곳이라는 것을 잊고 걷고 있는 것이다.

많이 걷는다고 그 끝이 가까이 있는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 같은 거리의 길이 있을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의미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정해진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누구와도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없는 나만의 인생길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나는 오늘도 건강하겠다고, 오래 살아보겠다고 숲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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