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갈 기회
고요와 적막감이 바람에 휩쓸리듯 나를 덮쳐오면 괜스레 우울감이 생기기도 한다.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바람은 있는데 정보도 부족하고 소외감도 커져만 간다.
단순한 삶을 살아가려고 진즉부터 마음 다잡아온 세월들이 무색하기만 하다.
다만 어느 한 곳에 쏠림 없는 조화로운 생활을 하고 싶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수많은 경쟁과 비교하여 상실감을 겪으면서 생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내가 속해 살아가는 사회환경에서 존재감 없는 노화된 인간으로서 삶은 지배자의 권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복잡함을 떠나 자연스럽게 자유를 누리는 건강과 넉넉한 아량이라 생각해 본다.
일을 해야만 하는 노인과 일을 통해서 삶의 기쁨을 키워가는 노인의 삶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매사에 허리 굽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의 가치보다는 지배자의 가치를 충족시키는 삶에 모든 것을 걸어놓는다.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은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진정한 자유로움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습관처럼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나를 이처럼 힘들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육체적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신적인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현재 충족되지 못한 삶에서 일 것이다.
키가 크고 우거진 나무 그늘에서도 햇볕은 내려오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평안을 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든지 쓸모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얻기 위해 젊은 날을 숨 가쁘게 살아왔다.
눈치껏 살아가도 되건만 나는 진심을 다하려고 했다.
진심을 다해도 상처를 받을 때는 심장이 오그라지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의무기한을 다 하고 홀가분해졌다고 느낄 때 나는 또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습관적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생의 끝은 나의 영역이 아니기에 무엇인가 보람된 일에 나서고 싶지만 부족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시점에서 작아져 버린 자존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은 갑자기 찾아온 뇌 손상으로 깊은 좌절감에서 조금씩 기운을 차려가고 있는 친구를 만나고 왔다.
그는 매사에 당당했고 자신감이 충만한 친구였다.
퇴직을 하고 일을 더하고 싶다고 다니던 회사에서 근무연장을 하여 보람되이 일을 하고 있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맨 밑으로 내려가 일을 하겠다는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꼈기에 밥 한번 사주고 싶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맛집으로 인정받은 식당에서 갈비탕을 같이 먹었다.
그는 나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어진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런 며칠 후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몸의 이상을 느껴서 바로 가까운 종합병원에 가서 응급으로 진료를 받고 정밀 검사를 한 결과 악성 뇌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땅이 꺼지는 상실감에서 괴로워했고 의료대란이 생겨 어려운 수술은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운이 좋게도 수술 일정을 잡고 신속하게 치료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고 되돌릴 수 없는 길에서 절망의 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디 세상살이가 단순하게만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된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아이들도 다 출가시키기 전인데 이제는 아내도 생활전선에 내 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 친구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회복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한 결과 다행히도 일상생활 정도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언어는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나 행동거지는 약간의 부자유스러움이 남아있었다.
그 친구와 한 달에 한 번은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석 달째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단순한 생활밖에는 할 수 없음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내게 다가오는 자유의 시간들을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단지 먹고사는 문제에 모든 것을 양보하고 만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마음먹은 대로 관계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요원한 일이 아니기를 바람도 꿈일 수 있다.
나는 퇴직 이후에는 정말 단순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 원했다.
누구나 나름대로 자기의 길을 계획하고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바라는 대로 순탄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한다.
다른 친구들은 퇴직 이후에도 소일거리라도 하면서 일정한 소득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문을 두들기며 자기의 존재감을 이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몰두하면서 지내고 싶었다.
오랫동안 집중해 온 서예와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싶은 욕구도 있었지만 단순한 생활이 될 수 없었기에 나름 배우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아는 길도 물어 간다는 심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스킬을 배워가고 있다.
올해는 영화를 보면서 문학으로 살펴 이해하는 영화 인문학을 수강하게 되었고 어렵다는 고전 인문학과 와인에 대한 수강도 하게 되었다.
몇 년째 전주시 근교를 돌면서 식물과 자연을 배우는 숲 생태학습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을 찍어서 작품으로 변화시켜보기도 하고 캘리그래피로 감성을 표현해 보기도 했다.
탁구를 시작한 지 4개월이 되었고 고고장구를 배우려고 하고 있다.
남들도 하는 일이기에 나는 단순한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짬이 나면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을 찾기도 하고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를 탐방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에 편백나무 숲길을 한 시간씩 걸으며 자연이 베풀어 주는 맑은 공기와 변화하는 순간들을 마음껏 즐기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길이기에 선명하게 나 있는 반질거리는 길 위를 걸으며 누군가와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갖게 된다.
단순한 삶보다는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여름은 오랜 세월에 빛이 바랜 나에게도 비춰주니 생명력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
간간이 내리는 여름 장맛비에 시원한 바람이 불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나는 한 여인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전에 내 부모님의 아들이고 가족 간에 연결되는 삼촌이고 고모부이고 이모부이기도 한다.
또한 조카이고 손자가 되기도 하고 오빠이고 형이고 동생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포지션에서 조화롭게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할아버지가 되어보니 하나씩 포지션이 바뀌고 있다.
어제까지 많은 비가 내렸다. 장마가 일찍 왔다는 방송을 보면서 벌써 절기가 하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채워지지 않은 갈증은 많은 비가 내려 천을 넘치게 되어도 채울 수 없는 탐욕과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남의 생활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순한 생활보다는 조화로움에 다가가고 싶은 것이 나의 인생의 바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의 영역에 들어선 나의 인생을 어떻게 영위해 나갈 것인가 깊은 고민에 들어서 보게 된다.
단순한 생활이 어쩌면 가장 조화로운 생활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는 듯하다.
그리고 살아서 숨 쉴 수 있을 때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나은 조화로움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