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리 아빠가 되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by 남재 이진주

2025년 5월 27일 화요일, 음력으로는 5월 1일이다.

연두연두하던 풀잎들이 초록초록해졌다. 햇볕은 따가워졌고 나무들은 그늘을 더 넓게 만들고 있다. 하얗고 노란 꽃들이 지고 매혹적인 빨간 장미와 우아한 작약꽃이 온통 만발한 오월이 짙어가고 있다.

찌찌찌, 찌~~~~ 찌으찌. 새들의 울음소리가 숲 속을 채워가고 있는 신록의 계절을 맞고 있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음산한 숲 속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천변에는 윤기 나는 하얀 꽁지머리 깃털을 뽐내고 있는 쇠백로 한 마리가 물속을 유심히 바라보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금 늦은 듯한데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물 위에 지느러미가 올라온 줄도 모르는지 힘겹게 낮은 천을 오르고 있다.

자갈이 쌓인 모래톱에는 텃새가 된 오리 부부가 햇살을 받으며 깃털을 고르고 있다.

황금빛 금계국이 유난히도 맑은 노랑으로 피어있고 전주천변에 토착화된 등갈퀴나물꽃이 남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있어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이렇게 평화스럽고 좋은 날에 매주 화요일에 실시하는 숲 생태학습 현장 수업이 있는 날이다.

오늘은 집 근처 서일공원에서 모여서 전주천에 자생하는 생태에 대해 공부하기로 했다.

오전 열시에 모이기로 했으나 조금 일찍 공원에 도착하니 선생님과 몇몇 학동들이 모여 있었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선생님께서 쑥개떡을 준비해 오신다. 음료와 아직 기름기 흐르는 쑥개떡 하나를 받아 들고 벤치에 앉아서 학동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공원 숲길에서 어미오리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새끼오리를 데리고 화장실 쪽 안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보기 어려운 광경이라 얼른 다가가 보았다. 분명 금방 알에서 깬 듯한 어린 오리새끼 들이었다. 아마도 가까운 전주천으로 향하는 듯했다.

조금만 다가가면 되는데 공원 울타리가 새끼들이 넘기에는 너무 높았다.

어미오리는 새끼 오리들을 뒤따르게 하고 이곳저곳으로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바로 옆은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어서 더더욱 위험천만 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오리엄마는 사람들을 개의치 않은 듯 계속 새끼들이 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순간 나는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박스하나를 구해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새끼오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길을 막으며 새끼오리를 박스에 담았다. 몇 마리인지 세어보지도 못했다. 워낙 상황이 급한 터라 일단 보이는 대로 새끼들을 모두 박스에 담았다. 어미오리가 당황할까 봐 조심스럽게 어미를 관찰하며 천변으로 무단횡단하여 신속하게 새끼들을 수풀 근처에 내려놓았다. 어미오리는 당황하지 않고 날아오더니 새끼들을 데리고 수풀사이를 지나 전주천에 무탈하게 입수하였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내가 오리가족을 이소 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니, 티브이에서나 보았던 “동물농장”에서 방송되었던 도심에서 오리가족의 이소를 돕는 시끌벅적한 그런 광경이었다.

두근거렸던 한순간 새끼오리를 한 마리씩 직접 손으로 안아 담았던 그 느낌은 세상에서 최고의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는 감촉이었다. 아마도 나만이 느껴보는 최고의 감촉이었을 것이다.

오리가족 모두를 무사히 전주천에 이소 시키고 오리네 가족사진을 찍어서 돌아왔다.

모든 학동들이 나더러 “오리아빠”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박수를 치며 응원해 주었다.

괜스레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때였다. “여기도 한 마리 있어요. 나무에서 떨어졌는지 꼼짝도 않아요.” 다급한 목소리에 달려가보니 나무 밑 수풀사이에 새끼 한 마리가 기운 없이 앉아 있었다. 마음이 더 다급했다. 방금 오리가족을 물가에 데려다 주었는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지? 우선 다른 생각할 틈이 없었다.

얼른 새끼오리를 가볍게 손으로 감싸들고 방금 새끼들을 내려놓은 천변 수풀로 갔다. 하지만 오리가족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거침없이 위험한 아무런 생각도 없이 키보다 더 큰 갈대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가에 다다를 때까지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예상치 않은 난관에 부딪치며 도랑에 발이 빠지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며 새끼오리 가족 상봉만을 생각하며 물가에 도착했으나 오리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오리는 헤엄을 칠 수 있다는 생각에 새끼오리를 물에 놓아주었는데 “이를 어쩌나?” 새끼오리는 꿈쩍도 안 했고 낙엽처럼 떠 있기만 했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다시 새끼오리를 건져 들고 주변을 살펴보면서 오리가족을 찾아보았다. “찾았다!”건너편 쪽 그늘 밑에 오리가족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어떻게든 어미 오리가 볼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상류 쪽으로 이동했다. 흘러가는 물 위에 새끼 오리를 띄어 물길에 흘려보내려고 해서다.

새끼 오리는 움직이지 않았고 물 위에 떠서 흘러 내려갔다. 다행인지 천운인지 물길이 어미오리와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굽어 흘렀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새끼를 발견한 오리어미는 새끼들을 데리고 다가오더니 무리에 합류시켰다. 죽을 것만 같았던 새끼오리 여덟 번째는 금새 생생하게 기운을 돋아 무리를 따라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며 눈물겨운 오리 가족의 상봉을 보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모든 동물의 세계가 그러겠지만 오늘 직접 경험하고 보게 된 어미 오리의 모정은 눈물겨운 생생한 감동을 주는 현장이었다.

신발은 도랑에 빠지고 바지도 온통 풀물이 들고 진흙물에 더럽혀져 있었고 팔과 얼굴에는 긁힌 자국이 쓰라리고 있었다. 다행히 집이 가까웠던 터라 집에 와서 신발을 갈아 신고 바지도 갈아입고 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수업은 계속 진행되었으며 나도 자연스럽게 합류하여 수업 광경 사진도 찍고 식물의 이름도 적어 보면서 평소처럼 생태학습에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더위가 오면서 그늘이 있는 곳으로 수업 장소를 선정하시는 선생님의 배려와 학동들의 재잘거리는 소통의 시간은 그렇게 마치게 되었다.

다음에는 남고산성으로 정하고 단체 사진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아참, 아까 그 오리 가족은 잘 있을까? 궁금했다. 모두들 다음에 보자는 인사와 나를 오리아빠로 다시 한번 각인하면서 천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잠시 오리가족을 찾느라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천변으로 오셨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직 안 가셨어요?.” 했더니 뜻밖의 말을 전했다.

새끼 오리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서 혼자 있다가 까치 여러마리가 공격하는 것이 발견되어서 어떤 분이 구해서 물가에 놓아주고 가셨다고 했다.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새끼오리를 놓아주었다는 곳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찌~~ 익, 찌~~ 익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벌써 한참이 지났다는데 아직도 혼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는 천적들이 나타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어서 걱정은 더욱 되었으나 새끼 오리는 보이지 않았다. 천변 돌다리를 올라서며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다 보니 저 멀리서 어미오리가 새끼들을 달고 물길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와!. 세상에 이런 일이!”감탄이었다. 새끼의 소리를 어디에서부터 들었는지 어미 오리는 새끼들을 뒤따르게 하면서 빠른 속도로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오면서도 사람이 있는 것을 두려워지 않았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드디어 아홉 번째 새끼와 영화 같은 상봉을 하게 된 어미와 형제들은 바라보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저렇게 연약하고 작은 생명도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오리아빠는 보이지 않아서 속상했지만 어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좋을까? 순탄치 않은 적의 공격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모래톱 근처에서 평화로운 듯 햇살을 즐기던 오리 두 마리가 물길을 따라 내려오는 오리 가족을 향해서 다가서더니 영역을 지키려는지 공격을 시작했다. 어미 오리는 입을 벌리고 긴장하더니 새끼들을 두고 상대 오리와 날개를 부딪히며 치열한 방어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나는 몰랐다. 오리가 오리를 공격하는 모습은 티브에서 방송되는 동물의 세계에서나 볼듯한 광경이었다. 집요하게 다가와서 공격하기를 반복하는 그 오리 부부가 정말로 미웠다. 나는 돌멩이를 들뻔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 겨우 안정을 되찾고 그늘이 있는 수풀 사이로 몸을 숨기는 오리 가족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 수풀 사이에 또 다른 천적이나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까? 오늘 나와 인연을 맺은 오리 가족 10마리는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잘 보내고 우리들의 터전인 전주천을 지켜 줄 수 있을까. 걱정과 염려가 물밀듯 밀려왔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눈물겨운 모성애와 무조건 어미만을 따르는 새끼들의 순수함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인간세상보다 더 험난한 그들만의 삶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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