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떨어지는 노인의 고민

소외감이 크게 느껴지는 날

by 남재 이진주

사람이 가진 욕망중에 가장 큰 것이 “명예에 대한 욕심”이라고 한다.

흔히들 말하기를 인간은 세 가지 욕망에 이끌려 일생을 살아간다고 한다.

돈과 명예와 사랑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돈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사랑에는 아픔으로 승화시킬 수 있으나 자기 이름 석자에 걸린 명예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바로 “명예”임에는 틀림없다.

어쩌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게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되기도 한다.

논어(論語)에는 “人不知而不溫(인불지이불온)이면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아니하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고 추켜 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매사에 내가 좀 더 우월해지고 싶고 남들이 나를 알아봐 주고 앞세워 주면 우쭐해지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존재감 없음이 가장 슬픈 일이고 배제되고 소외감을 느낄 때 비참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찌 세상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쉬울 수만은 없겠으나 타고난 부와 권세가 있어야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경제사회에서는 불가불의 가치일 것이다.

신분이라는 제도는 없어졌으나 우리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는 뿌리 깊은 냉정하고 잔혹하게 신분서열이 적용되고 있으매 늘상 평가되고 차별하는 성향이 남아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위계층의 권력을 갖기 위한 탐욕을 버리지 못하게 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거나 다방면으로 방법을 찾아 돈과 명예를 좇아 살아가게 된다.

우리들의 대부분 아버지는 가난한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대를 이어 살아온 신분 계급은 언제나 저급한 하층계급이었다. 그러면서도 사람 된 도리를 벗어나지 않았고 탐욕으로 점철되지는 않았다. 힘들고 고단할때도 순수와 열정으로 충실한 인간의 도리를 더욱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일생을 살았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탐욕스러운 작자들이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명예를 거머쥐려고 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은 일생을 망치기도 하고 하나뿐인 목숨도 잃게 되기도 했다.

순자(荀子)에서 나오는 도명불여도화(盜名不如盜貨)라는 말이 있다.

(명예를 훔치는 것은 돈을 훔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다)

곧 명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려야 인생을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올해 들어 유난히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적용하여 민족적 의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결국 자기들도 그 당시 지배층의 생각을 닮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도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민중의 것이 아닌 지배층의 것이었으니 인간의 속성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권세를 잡은 손은 원한과 피를 묻히고 결국에는 원망과 탄원의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이 탐하는 명예는 남의 담을 넘어서 목숨을 걸고 지켜온 마지막 보루마저 훔쳐가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마치게 된 “알기 쉬운 와인이야기”라는 수업을 들었었다.

와인은 철저한 계급이고 신분이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그 자리에는 부와 명예를 갖추신 분들이 더러 있었고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퇴직 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어쩜 하층계급에 낮은 신분을 가진 하층민이었다. 값비싼 와인을 접할 기회가 적었었던 나는 수업시간 내내 불편한 자리였음을 고백하게 된다. 내가 살아왔던 환경과 목표로 했던 모든 것들은 그들과의 차별성을 느끼게 했고 결국 아무런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수업을 마치고 난 후 스스로 자괴감에 부끄럽기가 한이 없었다.

사람은 세상에서 빛나는 별처럼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명예와 돈이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돈과 명예는 부가적으로 사랑을 가져다줄 것이고 빛나는 삶에 폼 잡고 살아가며 째를 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속물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가 사는 지구상의 모든 삶에는 명예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명예를 훔치는 잘못된 탐욕에서 벗어남으로 모두가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 한 번씩은 자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심코 던져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처럼 세상을 살다 보면 예상치 않았던 일에서 부끄러움과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어쩌면 인생은 자기 자신만의 삶이고 스스로 겸양하고 인간 된 도리를 다하며 몸을 낮추고 섬기는 가치를 추구해야 함에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가장 큰 가치인 돈과 명예와 사랑으로 인한 근심과 걱정을 안고 평생을 부자연스럽게 살아가기도 한다.

눈을 뜨면 마음을 출렁이게 하는 인생의 근심들이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근심거리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며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인가를 근심해 볼 것이다.

정작 안 해도 될 걱정을 하면서 잠 못 이루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이 필요한 시절이다.

글을 쓰다가 한국 최초의 여성 성악가로 유명한 윤심덕의 유명한 일화가 생각이 났다.

일제 강점기에 삶의 고통과 허무함을 노래한다 하여 염세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고 했다. 그녀의 고달팠던 삶과 애절하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하면서 불렀다고 전해지는 “사의 찬미”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났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고 왔느냐/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이 노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곡으로 오래전 어릴 적에 구전으로 흥얼거렸던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에서도 어쩜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시대적 아픔을 담고 있지만 이 노래에서도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에둘러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데올로기 이후 요즘에는 성실함을 멀리하고 오로지 한탕으로 세상의 가치를 소유하려는 잘못된 생각들이 팽배해 있다. 정치권에 줄을 서고 백을 얻기 위해 비굴함을 마다하지 않고 한탕 잘하면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다는 헛된 욕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불성실한 삶은 결국 비참함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요즘 시쳇말로 세상을 가슴 펴고 살려면 첫째로 돈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돈이 없으면 백이라도 있어야 하고 셋째로 돈도 백도 없으면 운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이 평가하는 기준에 못 미치게 됨이 마음을 많이 불편하게 했고 희망적이지도 않았다.

학벌과 스펙이 남보다 우위에 있지 못하고 부와 명예에서 멀리 있는 사람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겉모습으로 판단되고 구분되는 실태가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 사람의 내면의 어떤 인격과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면의 본질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돈과 명예로 화려하게 꾸미면 존중받고 추앙받는 사회의 현실이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면의 충실함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 정직하고 성실함이 인정받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이 들어가는 노인들이 평화로운 시절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실은 우주의 원리이며 인생의 원리이어야 한다.”는 고사를 되새겨 본다.

늙으면 혈기가 쇠하기 때문에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나도 늙게 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가진 것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본능일 수 있다는 것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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