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공인된 노인이다.

긍정과 감사로 살아가는 지혜

by 남재 이진주

2025년 6월 1일 일요일 아침이다. 핸드폰에 제일 먼저 도착한 메시지가 “2025년 6월 1일부터 연령초과로 헌혈 참여가 불가능함을 알려 드립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라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안내 문자였다.

다음으로 도착한 알림톡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65번째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진주 님은 2025년 대장암 검진 대상자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내가 만 나이로 65세가 되어 국가기관에서 노인에게 보내는 친절한 안내문자를 받게 되었다.

오늘부터는 교통 할인 특혜도 받게 된고 의료혜택도 받게 된다.

어느새 내가 이렇게 노인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하고 긴장이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왔음에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당연한 것처럼 즐기고 경쟁하며 때론 두려움 없이 살아왔다.

정년퇴직을 하고 자연과 함께 하며 여행을 하며 식도락을 즐기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연인으로 살고 싶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넓은 아량을 베풀고 용서와 배려를 서슴없이 하면서 멋있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살아가는 일에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어도 마음 다치지 않고 모르는 척 넘어갈 줄도 아는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었다.

내손에 없는 것을 찾아 낮이나 밤이나 헤매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나도 세상에서 그나마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늘 도사리고 있었다.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들과의 관계에 더욱 힘쓰고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살아가면서 수시로 변화하는 자연환경과 인간관계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감성적인 노인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디게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려고 사랑과 낭만적인 삶도 염두에 두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노년의 삶은 우리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영역임을 알아서 절제와 감사로 섬김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나름 다짐을 하기도 했다.

매일매일 철저한 자기 관리를 게으르게 하지 않고 마음에는 행복이라는 꽃바구니를 안고 노인냄새 풍기지 않고 주변사람들과 다정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적 같은 노년의 삶을 누리는 것은 분명 은혜이며 사랑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세월만큼이나 탄력 없는 얼굴 피부를 보면서 석양에 서서 갈길 먼 노인의 숨가쁜 모습에 마음이 서린다.

며칠 전 우리 아버지 회갑잔치를 했던 비디오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가 대전에 살면서 30대 중반에 일가친척들을 모시고 조촐하게나마 잔치연을 해 드렸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그 나이를 훨씬 넘기고 아버지의 삶에 대해 회상해 볼 때 아마도 우리 아버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내게도 어느새 손주가 다섯이나 생겼다. 첫 손주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니 금방 아이들이 성장하여 커 나갈 것이다.

내 나이 올해로 65세, 6월이 생월달이니 정부에서 인정하는 노인의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노인이 되면 받게 되는 기초연금도 신청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더욱이 내가 태어난 날이 음력 윤달 6월 1일이었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올해 6월 윤달이 들어서 내 생애 세 번째의 진짜 생일을 맞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살이가 참으로 만만치 않았고 때론 많이 어렵고 힘들었다고 회상해 본다.


우리가 청소년기에는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부를 첫 번째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산업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생활정도가 나아지고 제법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었다.

나는 조그마한 섬마을에서 태어나 육지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이후로 일찍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남보다 강한 독립성을 키우게 되었다.

앞이 캄캄 안 보이지만 체계적인 인생 계획도 없이 성실하게만 살면 된다는 신념으로 어쩌면 순진무구한 삶을 살아왔다.

좀 더 영악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되지 못해서 남보다 더딘 걸음을 하였다.

좀처럼 좋아지지 않은 경제적 형편과 갖추지 못한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 때문에 쓰라린 세월에 눈물을 삼키기도 했었다.

나는 나름 운이 좋아서 보람 있는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두 딸을 낳아 무난하게 성장시키고 출가를 시켰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찔한 순간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음이다.

못난 나를 한평생 곁에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믿어준 아내가 내 인생의 대부분을 지탱해 주었다.

나는 아내의 고마움을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나이가 드니 변화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고 집에서도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결국 사회초년병처럼 소외감을 느끼게 되면서 스스로 나약하게 되어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어쩌다 공원 벤치에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노인분들을 보면서 장차 내 모습이라 생각하니 서글픈 감정이 밀려오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는 운동도 달라진다.

젊었을 때처럼 과격한 운동을 못하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파크골프는 날로 늘어나는 노인 세대들에게 적합한 운동이라고 한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게이트 볼 운동이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에서 노인들을 위한 운동 시설을 곳곳에 많이 만들어 놓고 관리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신체적인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나기도 한다. 나는 작년 일 년을 거의 걷지 못할 정도의 허리협착증세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이들어 생기는 퇴행성질환이라는 데서 서글픔과 상실감이 밀려 왔다.

단 한 번도 노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련의 고통이 너무나 힘들게 겪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1만 보 걷기를 하고 들어 왔다. 나는 나름 노년의 삶에 활력을 잃지 않으려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꾸준하게 신체활동을 해야만 하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요양원에서 아직 건강하게 계시는 어머니를 부양하면서 92세이신 어머니 나이만큼만 살고 싶다는 소망도 잊지는 않는다.

아직도 친구들은 돈을 벌겠다고 일거리를 찾아 나서고 일을 함으로 신체활동과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하려고 한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나는 생각이 다를 뿐이다.

노인이 되었다는 것은 어쩜 정글의 수사자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젊은 수사자는 암컷들과 새끼들 무리를 이끌고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에서 힘찬 포효와 당당하고 늠름한 위엄을 자랑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전성시대를 갈무리하는 수사자는 갈기가 무겁게 느껴지며 점점 무리에서 배척당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게 된다.

결국 암사자와 젊은 수컷들이 무리를 장악하고 암사자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본다.

무리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난 수사자는 점점 기력을 잃어가며 결국에는 파리 한 마리 쫓을 기운도 없이 하이에나에게 물려 죽게 되는 처참함을 생생하게 보게 되었다. 이런 수사자의 최후처럼 우리 남자들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리에서 소외되고 존재감 마저 상실되어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꼴이라고 생각하니 서글픔이 밀려온다.

요즘 일부 카페나 체육시설에서 “노 실버(시니어) 존”을 선언한 곳도 있다고 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노인공경이나 경로사상은 퇴색된 지 오래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과 표현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되 되지만 인생살이가 어찌 자연의 순환기능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모든 만물들은 스스로 정해진 기한이 있기에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시골에 사는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안타까운 그의 일생을 돌아보니 남일 같지가 않았다.

그토록 성실했던 친구가 노인이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 버렸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

“아프지 말고 삽시다.”가 노인들의 인사라고 한다.

수많은 사고와 질병이 도사리고 있고 내 뜻이 아닌 남의 요구에 따라야 하는 피동적인 삶은 끝나지 않았기에 노인은 오늘도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언제 신의 부름에 운명을 다 할지는 모르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들에 감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보람된 가치를 남겨두고 가야 할 것이라 다짐해 본다.

아직도 못 이룰 것에 대한 미련만 남아 있다면 서슴없이 내어버릴 것을 또 다짐하게 된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경험하며 얻은 결론은 긍정의 노력과 활기찬 행동을 이어가며, 목표의식에 대한 결단력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생명에서는 경쟁을 일삼는 탐욕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평화를 얻으며 작은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하는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유명가수의 노래가사에서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고 했다.

남자의 일생을 노래한 "바램"이라는 노래 가사에서 마음에 작은 위로를 느끼게 한다.

'어르신,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먼저 다가오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둔감해지고 느려지는 내 모습에서 노인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 세월무상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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