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났다 모났어
예전에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렀다.
나무 위키에 의하면, 동방예의지국의 뜻은 동쪽에 있는 예의(禮儀)에 밝은 나라이며,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示), 듣지도(聽), 말하지도(言), 움직이지도(動) 말라' 했던, 공자조차도 조선의 '예'를 배울 수 있다면 뗏목이라도 띄워 조선에 건너오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던 우리나라를 보면 동방예의지국이 옛말이 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낯선 풍경을 접할 때가 있다.
나이 30세가 다된 자식이 엄마에게 "엄마, 밥 먹었어?" 라고 경어는 실종된 채 예사말을 친구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친근함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꼰대의 입장에서 보면 나이의 성숙도에 어울리는 말투가 아닌 미숙한 모습으로 보인다. 이처럼 예의는 말투와 몸가짐을 의미한다.
부모자식간에도 이왕이면 존댓말을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자녀에게는 인성교육이나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
부부간에도 존댓말을 쓰면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
부부 간의 존댓말은 감정의 완충지대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녔던 두번째 태권도장의 관장님이 존댓말을 가르친 후 지금도 부모에게 경어를 쓰고 있다.
습관의 계기 즉, 동기를 만들어주는 주변의 어른이 중요하다.
사용하는 말투도 중요하다.
말투란 말하는 방식이나 태도로 말 사용 습관을 의미한다.
누구는 말버릇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말그릇이라고도 한다.
배려없는 말투는 그 사람의 인성과 인생을 보여준다.
매사를 가르치려고드는 말투는 자신의 우월감 과시를 보여준다.
지시적이거나 강압적인 말투는 그 사람의 양육 과정을 보여준다.
지배적이고 예단하는 말투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멀게 한다.
판매자와 고객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00브랜드 이불이 너무 좋아서 더 사러 갔는데 미리 확인하지 않고 가서 그 브랜드가 있냐는 질문에
"10년전부터 안들어왔어요"라며 이런 수준 높은 곳에서 뭐 그런 브랜드를 찾냐는 경멸의 표정과 말투로 응수하였다.
그렇게 느낀 것은 나의 자격지심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작년 유명백화점에서 샀는데 감촉이 좋아서
추가로 구매하러 온 것인데 그냥 해당 브랜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필요하게 부정적 감정을 전이시킨다.
여기에 외모지상주의나 경제력 평가도 경계해야 한다.
몸뻬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물건을 사러가면 거들떠 보지 않던 직원이
다음에 옷을 차려 입고 가면 태도가 돌변하여 엄청 친절하게 대한다.
지난번에 상품을 여러개 샀고 얼마 금액 정도 샀던 사람인데 그 물건 다시 사려고 왔는데 기억나시냐고 하면
그 정도 사는 분들이 하도 많아서 기억 못한다고 잘라 말한다.
직원에 대한 친근함의 표현과 고객이 구입했던 상품을 유추해 내도록 하는 과정이 금전의 기준으로 무시된다.
말을 어법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주어가 사물인데 "커피가 나오셨어요.", "주문하신 상품이 준비되셨어요" 등이다.
도대체 누구한테 경어를 쓰는건지 의문이 든다.
어쩌다 한글은 이렇게 파괴되었을까.
남녀(노)소 없이 전화 예절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10살 적은 교수는 내가 전화할 때마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면 인사 없이 늘 곧장 '말씀하세요'라고 한다.
대학생에게 전화하면 내가 전화할 때마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면 인사 없이 '네'라며 어른에게 인사를 받는다.
음식을 먹을 때 어른이 먼저 한 입 뜬 다음에 먹는 MZ도, α도 드물다. 그냥 음식이 오면 먼저 먹는다.
물건을 주고받을 때도 한손으로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외국인들 중 예의가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도 점점 예의가 없어지고 있다.
유교문화에 나도 모르게 젖은 탓일까.
요즘은 뭐가 맞고 틀리는지 분간이 안된다.
어른을 모시고 살지 않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고,
인생의 좌표가 되는 어른다운 어른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 시대가 된 것도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기본은 예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중(respect)을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