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살아온 삶에 잊고 살아온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빨리빨리”
이런 말과 함께 산 지 육십오 년은 족히 넘었다. 어딘가에 빨리빨리 디엔에이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이유는 모른다. 아홉 식구 틈에서 배고픔을 나눈 탓인지, 삶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빨리를 입에 달고, 귀에 딱지가 안도록 듣고 살았다. 언제부턴가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급하게 이곳저곳 스치는 여행보다 한 곳에 머물며 천천히 공원을 산책하고,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느림의 삶을 살고 싶었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을 가려면 넓은 사거리를 건너야 한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 바뀌길 기다리다 옆 사람을 힐끔 훔쳐봤다. 무엇이 급한지! 그들의 표정에 조급함이 역력하다. 당장 뛰어 건널 듯하고, 누군가는 잔걸음을 총총거리기도 한다. 그들에게도 빨리빨리 디엔에이가 있나 보다.
덩달아 나까지 조급해진다. 억지로 눌려있던 빨리 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언제 바뀔까! 조그만 엘이디 전구가 촘촘히 박힌 빨강 신호등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지루하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단거리 육상선수같이 초조하다. 심장 초시계도 작동한다. 뛰어나갈 듯 발끝에 힘이 주어진다. 하나같이 신호등 앞에만 서면 선착순 마감 세일에 가려는 사람처럼 조급해진다.
이번엔 느린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보기로 했다. 몇 분 내 건너라는 규정도 없던 터라 마음 놓고 천천히 걷기로 했다.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는 조급한 마음부터 여유를 가져보기로 했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뀜과 동시에 시선을 아스팔트 바닥으로 옮겼다. 녹색 신호등 동그라미 잔상이 지워지고 평면 흑색 캔버스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주 선명한 흰색 줄무늬가 카펫처럼 깔려있다. 천천히 발을 옮겼다. 검은색 바탕과 흰색 줄무늬는 감촉도 달랐다. 검은 바탕은 거칠고 단단한 반면 흰색 줄무늬는 매끄러워 질감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질감뿐만 아니라 명도 차이도 또렷하다. 솜씨 좋은 이가 그려 놓은 듯 흰색 줄무늬의 폭과 길이가 가지런하다. 무심코 빠르게 건널 땐 느끼지 못했던 흑백의 조화다. 느리게 건너며 좀 더 낮은 자세로 흰색 줄무늬를 살폈다. 빨리 건널 땐 흰색으로만 보였는데 천천히 걸으며 살펴보니 다른 무늬가 보였다. 꼼꼼히 훑어보자 흰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로 그린 그림이 보였다.
흰 바탕에 틈을 내고 홈을 파서 만든 미술작품이다. 상하좌우로 굵고, 가느다란 여러 개의 틈을 내어 다양한 형태로 배치했다. 어떤 건 길고 짧게, 어떤 건 상하좌우로 배치했다.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홈을 파서 표현한 다면적 무늬도 있다. 그것들을 선과 점, 면으로 연결하여 기하학적 추상화를 그려 놓았다. 추상적으로 변형된 본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세월의 무게를, 아귀다툼의 질주를, 시끄러운 세상사를 추상화로 표현한 건 아닐까! 상상의 깊이가 더해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줄무늬를 살펴봤다. 산수화를 추상화로 표현한 듯 여러 개의 높고 낮은 산의 높낮이만을 톱니처럼 연결해 놓은 무늬도 있고, 나뭇잎은 과감히 생략하고 가지를 좌우로 펼치고, 꺾고, 구부려 표현한 그림도 있다. ‘피에르 몬드리안’의 추상화〈회색 나무〉같기도 하고,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물〉이란 작품이 연상되기도 한다. 한 발 건널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눈에 들어와 추상화 전시회에 온 듯하다. 때론 충동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즉흥적으로 그려 넣은 서정적 추상화가 보이고. 또 다른 바탕엔 수많은 홈을 만들어 그린 단색의‘점묘화’도 보인다. 횡단보도 끝부분에는 미완성 작품도 보인다. 덜 퇴색된 흰 바탕에는 이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려는 듯하다. 줄무늬는 가늘고 불분명하다. 연작을 위한 스케치를 한 것 같은 흐릿한 무늬는 어떤 작품을 그려낼지…. 기하학적 무늬를 그려낼까, 아니면 전혀 생소한 추상화를 그려낼까! 상상의 추상화를 마음으로 그려본다.
오랜 세월 중량감에 눌리고, 속도에 저항하며 뜨거운 열기와 추위가 만들어낸 시간의 작품들이다. 제작 연대도 작가도 없는 자연 현상적 추상화를 볼 수 있는 건 느림의 선물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 가로수가 빠르게 달아난다. 가로수 지나가듯 빠르게 살아온 삶을 돌아봤다. 인생의 아름다운 추상화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오진 않았는지….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태주 시인의 《사는 일》이란 시를 흥얼거려 본다.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서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차창으로 바라볼 땐 가로수만 보였는데. 내려서 돌아보니 플라타너스도 보이고, 은행나무도 보였다. 급하게 만 살아온 삶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