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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相思花)

아내는 잎이었고, 나는 꽃이다.

by 이광주

그리움을 찾아 함양 상림공원을 찾았다. 애절한 그리움 탓일까?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화창한 햇빛 따라 피는 꽃도 아니고, 그늘에 가려 홀로 피어나 화려한 꽃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상사화를 보러 온 길이다.

이곳은 처음 와본 곳도 아니고,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웃으며 걸었던 낯익은 가을 길이다. 그땐 화려한 단풍에 반해 상사화란 존재를 귀하게 여기 지도, 꽃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내려오는 길, 차창에 부딪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다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상림공원에서 낙엽 밟으며 읊던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이 생각났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오늘은 낙엽도 없고, 아내도 없다. 화려한 상사화가 나에게 뭔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함께 있었다면 “아! 예쁘다. 여긴 더 화려하네, 사진 한 장 찍어봐요.”라며 좋아했을 텐데…!

상사화는 내 처지를 닮은 듯하다.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는 슬픔 사연의 상징 탓일까? 이른 봄이면 싱싱함을 자랑하다 여름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가을이면 먼저 간 것을 그리워하며 꽃대만 외롭게 올라와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 만날 그날을 기다리는 듯하여 가슴이 뭉클하다.


상사화라면 아내는 잎이었고, 나는 꽃이다.


아내는 젊고 활력이 넘쳤다. 고운 피부 탓일까? 이순 후반인데도 지천명 조금 넘은 나이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랬던 아내는 싱싱했던 상사화잎이 미쳐 꽃도 보지 못한 채 사라지듯 여름이 오기 전에 떠났다.

남아있는 나에게 아내는 상사화의 튼실한 꽃대처럼 솟아나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자며 그리움만 남겨 놓았다. 나는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 아내를 기다려야 한다. 한 해 두 해 기다려 지상에서 만날 수 없다면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 만날 수 있는 그날까지 싱싱한 꽃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런 날을 예견이라도 했을까? 아내는 내 복장부터 젊은 스타일로 바꾸기 시작했다. 튼튼한 꽃대로 솟아나려면 건강해야 하고, 마음도 생각도 젊어져야 한다고 했다. 퇴직과 동시 넥타이 맨 꼰대 패션을 과감히 버리고, 총 맞은 청바지부터 라운드 티까지 스타일도 유럽식으로 바꾸었다. 십여 년 적응한 탓에 워싱 데님 팬츠에 체크 남방을 입고 목에 니트류를 살짝 묶는 코디도 자연스럽게 소화하게 되었다.

누가 시들고 꾀죄죄한 꽃을 좋아하겠냐며 집을 나설 땐 코디네이터 역할을 자청하던 아내였다.

아내가 없다고 스타일을 바꿀 순 없다. 아내가 원했던 노년의 젊은 삶을 이어가야 한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라도 끌밋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내에 대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부슬비 내리는 상림숲은 우울했다. 흐린 날씨 탓이라 하기엔 내 마음이 착잡하다. 지천으로 핀 상사화가 아무리 화려해도 눈길 주기가 싫었다. 숲 속 어딘가에 아내 홀로 사진 찍어 달라며 나를 부르는 것 같은 환상이 들어서다. 어울리려 단체 사진 한 컷으로 대신하고 함께 걸었던 길을 따라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아내와 함께 읊었던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 대신 ‘안예은’이 부른 〈상사화〉 노랫말이 생각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랑이 왜 이리 아픈가요? 고운 얼굴 한 번 못 보고서 이리 보낼 수 없는데. 하얀 손 한 번 못 잡고서 이리 보낼 순 없는데…!”

착잡한 마음을 털어버리려 앞서 걸어보기도 하고, 큰소리로 실없는 말도 늘어놓는다. 조금은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그제야 상사화, 숙근사루비아, 족두리꽃, 솔잎 금개국 수많은 꽃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지금의 나를 인정해야 한다.


상사화의 화려한 꽃이 나에게 무얼 말했을까? 만날 수 없다고, 돌아오지 않을 시들어 사라진 잎을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튼실하게 꽃대를 올려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 당당하게 보여주리라.


상사화에서 내 삶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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